"사기 공포에 보험 든 전세만 찾아"… 30만 임대사업자 '날벼락'

김유신 기자(trust@mk.co.kr) 2023. 4. 2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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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구 수유동 빌라 밀집지역 가보니
내달부터 보험 가입요건 강화
안심 전세매물 하늘의 별따기
신축빌라 분양은 포기하고
모든 가구 월세로 돌리기도
보증금 한번에 내줄 돈 없어
임대사업자 "대출 풀어달라"
전세사기 대책으로 다음달부터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이 강화되면서 빌라 전·월세시장의 혼선이 커지고 있다. 특히 서울 강북·도봉구, 평택시, 수원시 팔달구 등 전세가율이 높은 지역의 임대사업자는 파산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사진은 강북구 수유동의 빌라촌 전경. 김유신 기자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한 전세 매물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보증보험 가입이 안 된다고 하니 세입자들도 선뜻 계약에 나서기를 꺼린다."

'전세사기' 우려와 보증보험 가입 요건 강화 여파로 빌라(다세대주택) 전·월세시장의 혼선이 커지고 있다. 신축 빌라를 중심으로 전세사기 피해가 확산되며 수요자들은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한 매물을 구해줄 것을 공인중개사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오는 5월부터 보증보험제도 변화로 전세가를 낮추지 않으면 가입이 어려워 현장에서는 수요자들 눈높이에 맞는 매물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지난 26일 방문한 서울 강북구 수유동 빌라 밀집 지역. 이곳은 서울 외곽에 위치하지만 상대적으로 전세가가 저렴하고, 역까지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갖춰 전세 계약이 잘 이뤄지는 지역이다. 하지만 최근엔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 전세를 찾는 수요가 줄어든 데다 5월부터는 보증보험 가입마저 어려워져 거래가 사실상 막혔다는 게 인근 공인중개사들의 전언이다. 이 일대에서 5년 이상 일을 해온 공인중개사 A씨는 "강북구에는 전세사기 사태의 발단이 된 신축 빌라가 많지 않은데도 빌라 전세가 위험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퍼지다 보니 수요가 뚝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보험 가입 요건이 5월부터 강화되는 점도 빌라 전·월세 거래가 막힌 이유 중 하나다. 정부는 보증보험이 무자본 갭투자에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5월부터 가입 기준을 전세가율 100%에서 90%로 강화하기로 했다. 전세가율을 산정하기 위한 기준도 올해 초 공시가의 150%에서 140%로 낮아졌다. 결과적으로 보증 한도가 공시가의 150%에서 126%로 강화된 셈이다. 예를 들어 공시가가 1억원인 주택의 경우 기존에는 전세보증금 1억5000만원까지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1억2600만원까지만 가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7일부터는 2023년 공시가격이 적용된다. 정부가 공동주택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으로 낮추며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전년 대비 평균 18.61% 감소하게 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수도권 빌라의 공시가는 평균 6% 하락할 전망이다. 공시가 하락과 보증보험 가입 요건 강화로 빌라 전·월세시장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체 집토스에 따르면 오는 5월부터 내년 4월까지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수도권 빌라 매물 9만6385건 중 66%인 5만9476건이 동일 보증금으로는 보증보험 가입이 불가능하다. 정부는 갱신계약의 경우 강화된 보증보험 요건을 내년부터 적용하기로 했지만, 혼선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빌라의 경우 기존에도 전세가율이 높아 신규 전세계약 체결 시 보증금을 낮추지 않으면 보증보험 가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부동산원 부동산테크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서울 도봉구(85.2%)·강북구(84.9%), 수원시 팔달구(95.1%), 경기도 평택시(100.4%)의 최근 3개월 연립·다세대주택의 전세가율이 높았다. 팔달구의 공인중개사 B씨는 "공시가 하락 여파로 빌라는 물론이고, 아파트도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한 전세 매물 찾기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축 빌라의 경우 상황이 더 심각하다. 강북구는 신축 빌라가 다른 지역보다 많은 편은 아니지만 빌라 분양을 알리는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올해 1월 준공한 이 일대 한 신축 빌라는 신규 분양 계약을 한 건도 진행하지 못했다. 이곳 분양업체 관계자는 "공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이 올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며 "건물주와 전 가구를 분양 대신 월세로 전환한 뒤 건물을 통매각하는 방향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대사업자들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주택을 다수 보유한 임대사업자들의 경우 보증보험 가입을 위해 임대 주택의 보증금을 한꺼번에 낮춰야만 해 자금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수도권 소재 빌라 10채를 매입임대주택으로 등록해 다년간 임대사업을 해온 김 모씨(45)는 "공시가 하락과 보증보험 가입 요건 강화는 빌라를 강제로 역전세화시키는 것"이라며 "정부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로 대출도 막아놔 이 상태라면 임대인들의 연쇄 파산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전국임대인연합회는 임대보증금 반환 목적의 대출 규제 완화와 임대사업자 자진말소 허용 등을 국토부에 요청한 상태다. 국토부 관계자는 "관련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보증보험 가입 요건이 강화돼 세입자를 구하기가 어려워지며 기존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못 돌려받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임대인들에게 전세보증금 반환 목적으로 신용대출을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유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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