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발견 성과 뺏겼다던 여성 과학자, 피해자 아닌 협력자였다
미공개 편지와 기사 통해 왓슨, 크릭과 협력 관계 확인
1953년 4월 25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라는 영국의 젊은 과학자 두 명이 쓴 논문 한 편을 실었다.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디옥시리보핵산(DNA)이 이중나선 구조임을 밝힌 이 논문은 사용된 단어가 900개 밖에 안될 정도로 짧았지만 이후 인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생명공학 혁명을 이끈 원동력이 됐다.
네이처는 DNA 논문 발표 70주년을 맞아 왓슨과 크릭 못지 않게 DNA 구조 발견에 공헌한 여성 과학자를 재조명했다. 바로 영국의 여성 화학자인 로잘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 1920~1958)이다. 그동안 프랭클린 박사는 DNA 이중나선 구조를 보여주는 X선 사진을 처음으로 촬영했지만, 그 공을 왓슨과 크릭에게 뺏긴 비운의 과학자로 알려졌다. 이번에 70년 만에 그 이미지가 왜곡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영국 맨체스터대 매튜 코브 교수와 미국 존스홉킨스대 내더니엘 컴포트 교수는 25일(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1953년 작성된 동료의 서신과 잡지에 미발표된 기사 초안 자료를 분석한 결과, 프랭클린 박사가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히는 데 동등하게 기여했으며 다른 발견자와 협력하는 관계였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DNA의 구조를 처음 규명한 사람은 신참 과학자인 왓슨과 크릭으로 알려져 왔다. 두 사람은 두 가닥의 DNA가 두 종류씩 결합하는 염기쌍을 중심으로 나선형으로 꼬여 있다는 획기적인 모델을 생각해냈다. 하지만 당시 DNA 연구는 실제로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모리스 윌킨스와 프랭클린, 미국의 라이너스 폴링이 이끌고 있었다.
프랭클린은 동료 윌킨스와 함께 1952년 DNA의 구조를 담은 X선 회절 사진을 찍었다. ‘51번 사진(Photograph 51)’으로 명명된 이 사진은 DNA가 이중나선 구조라는 사실을 한 눈에 보여줬다. 지금까지는 왓슨과 크릭이 부정한 방법으로 이 X선 사진을 입수해 먼저 발표했다고 알려졌다. 프랭클린 박사의 아이디어를 훔쳤다는 것이다.
DNA 연구의 막장 드라마는 여성 과학자에 대한 차별에서 비롯됐다. 여성이 그렇게 위대한 발견을 했을 리 없다는 세상의 편견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프랭클린 박사가 서른일곱살에 요절해 크릭과 왓슨, 윌킨슨과 달리 노벨상 수상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이런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코브 교수와 컴포트 교수는 네이처지에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편지와 잡지 기사 초안을 살펴본 결과 프랭클린의 역할에 대한 대중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증거를 찾았다고 설명했다. 프랭클린 박사가 도난의 희생자라기보다는 DNA 구조를 밝히는데 협력한 인물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코브 교수는 프랭클린을 희생자로 보는 주장은 지난 1968년 왓슨이 쓴 ‘이중나선’에서 나온 이야기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미 왓슨과 크릭, 프랭클린과 윌킨스팀이 상당 부분 연구 내용을 교류해왔다는 것이다. 이번에 미공개 서신과 기사 초안에서 이를 확인한 것이다.
컴포트 교수와 코브 교수는 폴린 코완이라는 과학자가 1953년 크릭에게 보낸 편지에서 두 팀이 서로 연구 진행 과정을 공유해왔다는 단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편지에는 프랭클린이 자신의 강연에 크릭을 초대했지만 페루츠 교수가 이미 강연 내용보다 훨씬 많은 점을 알고 있으므로 크릭이 굳이 참석할 이유가 없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연구진은 “프랭클린이 일찍부터 페루츠 교수가 크릭과 자신의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런 사실이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코브 교수는 “프랭클린이 당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이유는 DNA 구조에 대한 이 새로운 발견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몰랐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브 교수에 따르면 왓슨과 크릭은 케임브리지대에서 DNA 구조를 이론적으로 구성하는 연구를, 프랭클린은 윌킨스와 함께 DNA 분자를 연구하며 십자가 형태로 보이는 DNA 이중나선을 포착한 상징적인 51번 사진을 촬영했다. 윌킨스는 프랭클린의 제자인 레이먼드 고슬링이 촬영한 이 이미지를 왓슨에게 보여줬다.
당시 맥스 페루츠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프랭클린의 연구를 담은 의학연구위원회(MRC) 보고서를 자신의 제자인 크릭과 공유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 보고서는 DNA의 정확한 구조를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은 자신들의 모델을 확인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DNA 구조 발견의 주역들이 서로 연구 내용을 잘 알고 있었으며, 다른 학자의 성과를 이용해 각자 연구를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코브 교수와 컴포트 교수는 또 1953년 미국 타임지에 기고하려고 작성했지만 결국 게재되지 못한 기사 초안에서도 이를 뒷받침할 근거를 발견했다. 당시 기사를 작성한 조안 브루스는 윌킨스와 프랭클린이 크릭과 왓슨과 독립적으로 일했지만 서로 작업을 확인하거나 공통의 문제를 놓고 서로 연구 내용을 확인하고 때론 경쟁하면서 강하게 연결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실제로 DNA 구조 발견에 대한 업적을 둘러싼 여러 논란에도 프랭클린이 힘들어 했다는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프랭클린은 역시 두 달 뒤인 1953년 6월 영국왕립학회에서 DNA 모형을 전시하고 공동 노력으로 발견한 구조라고 발표했다. 프랭클린은 또 1958년 암으로 투병하는 동안 크릭 부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컴포트 교수는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해볼 때 프랭클린의 연구 결과는 도난 당한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공유한 것에 가깝다”며 “네 사람은 서로 약간의 긴장 관계가 있었지만 DNA 이중나선 구조를 함께 발견한 협력자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이를 두고 세 사람의 관계에 대한 오랜 논란이 사실은 일반 독자에게 이해와 흥미를 더하기 위해 만든 문학적 장치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반면 이번에 발견된 편지와 기사 초안 자료도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을 둘러싼 그간의 논란을 종식시키지는 못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DNA 드라마는 아직 최종회가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혁신 속 혁신’의 저주?… 中 폴더블폰 철수설 나오는 이유는
- [주간코인시황] 美 가상자산 패권 선점… 이더리움 기대되는 이유
- [증시한담] 증권가가 전하는 후일담... “백종원 대표, 그래도 다르긴 합디다”
- [당신의 생각은] 교통혼잡 1위 롯데월드타워 가는 길 ‘10차로→8차로’ 축소 논란
- 중국이 가져온 1.935㎏ 토양 샘플, 달의 비밀을 밝히다
- “GTX 못지 않은 효과”… 철도개통 수혜보는 구리·남양주
- 李 ‘대권가도’ 최대 위기… 434억 반환시 黨도 존립 기로
- 정부효율부 구인 나선 머스크 “주 80시간 근무에 무보수, 초고지능이어야”
- TSMC, 美 공장 ‘미국인 차별’로 고소 당해… 가동 전부터 파열음
- [절세의神] 판례 바뀌어 ‘경정청구’했더니… 양도세 1.6억 돌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