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0 나잇살 근거없다…“60살 이후 기초대사량 감소”
나이 들면 기초대사량 급감한다는 통념 흔들려
20~60살 에너지소비율 나이·성별 큰 영향 없어
매우 높은 확률로 실패한다는 것을 겪어 알고 있지만, 매번 때가 되면 다시금 불타오르는 결심들이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다이어트 결심도 그러합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는 이즈음이 가장 결심이 굳어지는 때이지요.
추운 날씨를 핑계 삼아 덜 움직이며 불어난 군살을 더는 두꺼운 겉옷으로 가릴 수 없는 시기가 다가오니까요. 매년 이맘때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심지어 몇 번은 성공했지만, 날이 갈수록 그 성공률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젠 정말 덜어버릴 수 없는 나잇살이 붙어버린 걸까요?
몸의 중반부만 둥글둥글해지는
개인마다 체질이 다르고 건강상태가 다르기에 한마디로 특정하긴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체중 증감은 입출량의 균형에 따라 이뤄집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체내로 유입되는 칼로리가 소모되는 칼로리보다 많다면, 우리 몸은 남는 칼로리를 지방으로 바꿔 저장하니 전체 중량은 늘어날 수밖에요.
그런데 저뿐 아니라 많은 이가 이구동성으로 푸념하는 것 중 하나가 “나이 드니 신진대사가 떨어져 이전보다 적게 먹는데도 살이 찐다”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때 찌는 살은 등과 배, 옆구리, 팔뚝 등에 집중돼 전반적으로 몸의 중간 부위만 둥글둥글 부풀어오르는 느낌입니다. 나이 들면 신진대사율이 얼마나 떨어지기에 군살이 잘 붙고 잘 빠지지 않는 것일까요?
신진대사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수치가 기초대사량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존재이며, 살아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현상입니다. 심장은 주기적으로 뛰어야 하고, 폐는 숨을 쉬어야 하며, 신장은 끊임없이 혈액을 걸러야 하고, 체온도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에너지는 소모되는데 이를 기초대사량이라고 하지요.
흔히 지방세포보다 근육세포의 에너지 소비율이 더 크기에, 많이 운동해서 근육량이 높은 사람일수록 기초대사율이 더 높아져 이른바 ‘살찌지 않는 몸’이 된다고들 하지만, 실제 기초대사량에서 근육이 차지하는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지 않아 기초대사량이 조금 높아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살찌지 않는 몸이 되는 건 아닙니다.
기초대사량은 한 생명체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양이므로 개인의 신체 조건과 환경 조건에 따라 달라지지만, 이를 대략적으로 구하는 공식은 있습니다. 가장 널리 쓰이는 방법은 1919년 미국의 생리학자 제임스 해리스와 프랜시스 베네딕트가 제시한 ‘해리스-베네딕트 방정식’과, 1990년 마크 미플린과 사키코 세인트 지어가 만들어낸 ‘미플린-세인트 지어 방정식’입니다.
둘 다 성별, 키와 체중, 나이를 변수로 넣고 계산합니다. 일반적으로 해리스-베네딕트 방정식의 계산값보다 미플린-세인트 지어 방정식의 계산값이 조금 적게 나온다는 차이만 있을 뿐, 두 방식의 전제는 동일합니다. 몸무게와 키에 관련된 변수는 더하고, 나이 변수는 빼는 형식으로 됐죠. 그래서 어떤 방정식을 쓰든 키가 크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면 기초대사량이 커지고, 키와 몸무게가 같다면 나이가 많을수록 대사량이 줄어들도록 설계됐습니다.
이런 방식의 기초대사량 계산은 이미 100여 년 전부터 쓰였기에, 나이 들수록 기초대사량이 낮아져 같은 양을 먹어도 살찌기 쉬운 체질이 된다는 건 기본 상식처럼 알려졌습니다.
전세계 29개국 6421명 대상 연구
2021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인생의 모든 과정에서의 하루 에너지 소비량’(Daily energy expenditure through the human life course)이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이 실렸습니다. 논문에 이름이 실린 저자만 무려 90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연구로, 전세계 29개국에서 살아가는 총 6421명의 생후 8일 된 아기부터 95살 노인까지 전 연령대 사람들의 에너지 소비량을 비교분석한 연구였습니다. 조사 대상에서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4 대 6 정도였고요. 사람은 일생 중 언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모할까요?
흔히 일생 중 가장 왕성한 에너지 소모기는 10대 청소년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기의 아이를 설명하는 관용구 중 ‘돌도 씹어 먹을 나이’라는 말이 있듯이 왕성한 식욕과 소화력을 선보이는 때이니까요. 실제로 이 시기 아이는 성인보다 필요 열량이 높습니다. 성장기 아이는 기존 세포를 유지하는 데 더해 새 세포까지 만들어내야 하니 그만큼 필요한 열량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연구 결과 인생에서 가장 에너지 소비율이 높은 시기는 생후 1달~1년의 영아기입니다. 생후 1개월까지 신생아의 에너지 소비율은 성인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그 뒤 급격히 높아져 생후 1년쯤 최고를 기록한 뒤, 이후 20살이 될 때까지 점점 줄어듭니다.
비율로 따지면 20살 성인의 체중 ㎏당 에너지 소비율을 100으로 잡으면, 생후 1년 아기의 에너지 소비율은 147로 약 1.5배 높았습니다. 생후 1년까지 이토록 에너지 소비율이 높은 것은 인간의 일생에서 생후 1년은 키와 몸무게의 비율이 가장 많이 커지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질병관리청은 10년마다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신체 발육 정도를 조사해 발표하는데 가장 최근인 2017년 자료에 따르면, 생후 1개월 아기의 평균 키와 몸무게는 남녀 각각 54.7㎝/4.5㎏, 53.7㎝/4.2㎏인데, 생후 1년이 지나면 75.7㎝/9.6㎏, 74.0㎝/8.9㎏으로 늘어납니다. 단순 비율로만 따져도, 이 사이 키는 1.4배, 몸무게는 2.2배 정도 늘어나니 당연히 많은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겠지요.
나이도 성별도 별다른 변인이 아니다?
영아기의 폭풍 에너지 소모기 이후, 단위체중당 에너지 소비율은 1년이 지날 때마다 약 2.8%씩 떨어지며, 성장기가 끝나는 20살 전후에 안정기로 접어듭니다. 성장기가 끝났으니 에너지 소모율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후입니다. 이렇게 안정기에 접어든 에너지 소비율은 이후 수십 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되다가, 60살 넘어 서서히 떨어져 90살이 되면 에너지 소비율이 20살 때의 74% 정도까지 떨어집니다.
이 결과를 토대로 인간의 일생 전체를 에너지 소비율의 변화로 나눠보면 에너지 소비율이 급속히 느는 제1기(~1살), 증가하던 에너지 소비율이 서서히 떨어지는 제2기(1~20살, 매년 2.8%씩 감소), 에너지 소비율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제3기(20~60살), 서서히 에너지 소비율이 줄어드는 제4기(60살 이후, 매년 0.7%씩 감소) 등 총 4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연구가 알려주는 시사점은 20~60살 성인기에는 기존 통념과 달리 나이 변수가 에너지 소비율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성별 역시 별다른 변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아는 통념과 정면으로 어긋납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20대에 비해 더 푸짐한 체구로 50대를 맞이하며, 나이 들수록 체중을 조절하기 더 어렵고, 여성은 폐경기가 시작되는 50대를 전후로 신진대사율이 급속도로 떨어진다고 알았으니 말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아쉽게도 논문에선 기존 통념에 반하는 결과가 왜 나타났는지 명확히 짚어주지 않습니다. 후속 연구 결과를 기다려야 하겠지만, 이 논문의 제1저자인 미국 듀크대학의 허먼 폰처 박사는 시대 변화를 슬쩍 언급합니다. 해리스와 베네트가 기초대사량을 언급한 지 100년이 넘었다고 말이죠. 물론 그 100년 사이 인간의 몸이 그리 변하진 않았을 겁니다. 폰처 박사는 그때보다 지금 우리는 인체에 대해 알아낸 것이 훨씬 더 많아졌기에, 축적된 지식과 비교해 과거의 사실이 진짜로 맞는지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거겠지요.
정설을 다시 바라봐야 할지도
수천 조각의 ‘직소퍼즐’을 맞추다보면 작은 방석인 줄 알았던 조각이 사실은 커다란 카펫의 귀퉁이였다든가 하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과학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데이터가 쌓이면서 기존엔 정설로 받아들여졌던 일을 새롭게 바라봐야 하는 경우가 있죠. 이때 바뀌는 건 대개 디테일일 뿐, 전체적인 개념은 변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논문에서 알려준 데이터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이 연구에서도 인간이란 일정 기간 성장하고, 일정 기간 이를 유지하며, 이후 쇠해지는 존재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바뀐 건 생체 에너지 소모량의 유지 기간과 쇠퇴 속도입니다. 더군다나 반가운 것은 성장기 이후 이어지는 유지기는 기존에 생각한 것보다는 더 오래 지속되며, 쇠퇴기의 감퇴 속도도 생각보다는 느리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생각보다 더 천천히 늙어가는 존재일지 모른다는 거죠.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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