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화이트 버건디? 캘리포니아 샤르도네도 뒤지지않죠 [와인 이야기]
와인을 얘기할 때 프랑스 '부르고뉴' 하면 레드 와인이 먼저 떠오릅니다. 부르고뉴의 영어식 표기인 '버건디'도 붉은색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제가 어떤 모임에 가서 와인과 관련해 조금 잘난 척을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저는 '화이트 버건디'를 마셔보라고 권유합니다. 화이트 버건디는 부르고뉴에서 생산되는 화이트 와인을 뜻합니다.
화이트 버건디를 추천하는 이유는 실패할 확률이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르고뉴의 레드와인은 영빈티지 와인이라도 그랑 크뤼 레벨로 올라서면 최소 200~300달러는 줘야 살 수 있습니다. 한국으로 오면 이 가격이 두 배로 뜁니다. 맛은 솔직히 천차만별입니다. 숙성이 돼야 '진가'를 발휘하는데 영빈티지 와인은 숙성되기 전이라 '돈이 아깝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물론 더 높은 수준의 와인 전문가라면 그 미묘한 차이에도 돈 쓰는 걸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랑 크뤼 레벨의 부르고뉴 레드 영빈티지 가격이면 같은 그랑 크뤼 레벨의 화이트 버건디 올드 빈티지를 마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값이면 저의 선택은 '화이트 버건디'입니다.
숙성된 샤르도네의 진정한 맛을 느끼려면 그랑 크뤼 레벨의 화이트 버건디 올드 빈티지가 정형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르고뉴 레드 와인이 '피노누아' 단일 품종을 쓰는 것처럼 화이트 버건디는 '샤르도네' 한 가지 품종을 사용합니다.
화이트 버건디에 대해 이렇게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캘리포니아 샤르도네를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신기하게도 캘리포니아 샤르도네는 영빈티지도 맛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고로 저는 캘리포니아 화이트는 '피터 마이클'과 '시부미놀' 샤르도네를 기준 와인으로 삼고 있습니다. 두 와인 모두 복합미와 함께 긴 피니시가 특징입니다.
최근 캘리포니아 센시스 와인스(Senses Wines)에서 생산한 4종류의 2020년 샤르도네를 비교 시음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전에 마셨던 '프리마크 아비' '호나타'와 이번 '센시스' 와인에서 공통적으로 든 생각은 '캘리포니아 와인'의 저력입니다. 일단 소비자 가격대가 영빈티지 기준으로 프랑스 그랑 크뤼 수준에 버금갑니다.
와인 평가자의 개인적인 취향을 떠나서 '집단 지성'이 만든 소비자 가격은 거꾸로 많은 것을 얘기해 줍니다. 비싸다고 꼭 맛있는 와인은 아니지만 수입사들이 소매가로 병당 30만원이 넘는 캘리포니아 와인을 판매한다는 건 그만큼 한국 와인시장의 기반이 탄탄해졌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시음한 캘리포니아 와인들의 공통점이 또 하나 생각났습니다. 시음할 때는 보통 와인을 마시지 않습니다. 와인 잔을 흔들어 향을 깨우고 입안에서 오물오물 돌리며 잠시 맛만 보고 뱉어냅니다. 하지만 맛있는 와인은 저도 모르게 목으로 넘어가 버립니다. 아직 수련이 덜 됐다고 느끼는 순간입니다. '프리마크 아비' '호나타'와 '센시스' 와인은 맛있었고 남김 없이 잔을 비웠습니다.
일전에 프리마크 아비와 호나타 와인은 자세히 소개했으니 이번엔 센시스 와인을 소개하겠습니다.
센시스 와이너리는 2011년 100케이스로 시작해 지금은 4000케이스의 와인을 만드는 비교적 젊은 와인 메이커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소노마 카운티의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러시안 리버 밸리'의 동네 친구인 크리스토퍼 스트리어터, 맥스 티에리엇, 마일스 로런스 브릭스가 만들어 '삼총사 와인'으로 불립니다. 이후 유명 와인메이커인 토머스 리버 브라운이 "너희 땅에서 와인을 만들어보고 싶다"면서 2013년 합류합니다. 삼총사의 '달타냥' 같네요. 토머스 리버 브라운은 로버트 파커 와인 리뷰지에서 25개의 100점 와인을 만들어낸 스타 와인 메이커입니다.
센시스 와이너리가 위치한 러시안 리버 밸리는 와인 산지로 유명한데 기후 조건이 부르고뉴와 유사하다고 합니다. 우선 태평양 해안의 바람과 안개가 포도밭을 시원하게 유지하는데 이런 냉각효과는 와인의 질감을 구조화해서 부드럽게 만든다고 하네요. 포도의 풍미를 성숙하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고 합니다.
센시스 엘 디아블로 샤르도네 2020은 이날 가장 인상적인 와인으로 복합미가 훌륭했고 치우침 없는 부드러움이 장점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마셔도 좋고 6~10년 지나도 더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중을 가장 만족시킬 수 있는 와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센시스 티에리엇 샤르도네는 생산수량이 많지 않아 단골 고객 메일링 리스트에 올라 있어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희귀한 와인인데, 지난해 나라셀라가 와이너리를 직접 방문해 수입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가격대에 비해 살짝 가볍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표적인 화인트 버건디인 '몽라셰(Montrachet)'의 섬세함을 추구한다고 합니다. 센시스의 BA 티에리엇 빈야드는 현재 소노마에서 최고의 프리미엄 와인 빈야드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 외에 소노마 코스트 샤르도네 2020은 산미가 살아 있었고 달달한 꿀향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러시안 리버 밸리 샤르도네 2020은 소노마 코스트에 비해 쌉쌀함이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동시에 힘이 더 넘쳤습니다. 향이 좀 아쉬웠지만 캘리포니아 샤르도네의 특징인 버터리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센시스라는 같은 와인 메이커가 같은 방법으로 같은 해인 2020년에 생산된 샤르도네 포도 품종으로 만든 4종류의 화이트와인을 시음했는데요. 결국 와인이 생산된 포도밭에 따라 맛이 전혀 다른, 각기 개성이 다른 화이트 와인이었습니다. 역시 테루아가 중요한가 봅니다.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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