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누굴 얼마나 도와주나…형평성·역차별 문제 고개
전세 피해만 세금으로?…사기-미반환 구분도 난제
LH매입임대 활용에 예산 분배·입주 기준도 문제
정부가 27일 전세사기 특별법안 발의와 관련 대책 발표를 예고했다. 일각에서는 피해자 지원의 형평성이나 기존 취약 계층과의 역차별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지원할 대상을 정하는 것부터가 난제다. 전세보증금 피해가 벌어진 양상이 저마다 다른 탓이다. 또 정부 예산을 전세사기 피해 지원에 쓸 경우 기존 취약 계층의 불만이 터져 나올 가능성도 있다. 사회적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을 만한 '묘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가가 전세보증금 지원?…형평성 우려에 '손사래'
국토교통부 등 정부 관계 부처와 여당은 27일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할 예정이다. 또 정부는 같은 날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방안도 함께 내놓을 계획이다. ▶관련 기사: 다급해진 국회, 전세대책 특별법 이달 중 처리하나(4월 26일)
전세사기 피해가 갈수록 확산하면서 여론이 악화하자 정치권의 움직임이 분주해지는 모습이다. 여야는 내달 1일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다음날 전체 회의를 열어 법안을 의결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여야는 전세사기 피해 대책을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인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지원 방식과 기준을 단기간에 합의해 힘을 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책을 내놓은 뒤에도 지원의 형평성이나 지속성, 역차별 문제 등이 논란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여야가 가장 큰 이견을 보이는 것은 전세보증금 회수 방식이다. 야당은 정부가 보증금을 먼저 세입자에게 돌려주고, 경매 등을 통해 추후에 회수하는 식의 '선 지원 후 구상' 방안을 앞세우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사인 간의 거래나 범죄집단의 사기로 인한 피해를 세금으로 무작정 보상할 경우 국민들의 불만이 커질 수 있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이 경우 보이스피싱 등의 피해액을 국가가 보전해야 한다는 논리도 가능해진다. 다른 형태의 피해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와 관련 "안타깝고 도와주고 싶어도 안 되는 것은 선을 넘으면 안 된다"며 지속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치고 있다.
정부는 대신 피해자에게 경매 시 우선매수권을 주거나, 매입을 원하지 않을 경우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대신 사들여 저렴하게 임차해 주는 방안을 마련했다.
피해 기준은?…LH매입임대 형평성 문제도
여야가 지원 방식에 대한 이견을 좁히더라도 지원 대상의 기준을 정하는 것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우선 이미 경매 절차를 거쳐 낙찰된 피해자들이 지원 대상에서 빠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는 일단 이런 피해자들을 위한 대책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원 장관도 "경매가 이미 끝난 피해자들이 (지원 대상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언급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밝히지 않았다.
아울러 '전세사기 피해'의 정의를 규정하는 것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전세 피해 사례에는 조직적인 사기 범죄로 인한 피해도 있지만, 역전세로 인한 보증금 미반환 사례도 얽혀 있다. 일괄적인 기준으로 이를 건건이 구분하기가 어려울 거라는 지적이다.
특히 기준을 모호하게 할 경우 전세계약 관련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수 있고, 정부 보상을 노린 또 다른 형태의 범죄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일부 명확한 조직적인 사기를 제외한 다른 피해 사례들의 경우 과연 사기로 볼 것인지 아닌지가 애매한 경우가 많다"며 "이런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보증금 반환' 등 정책의 실효성만 높이려다 보면 형평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LH가 피해 주택을 매입해 임대하는 방안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우선 LH 매입임대 기준을 피해자에게 기존대로 적용할지 여부가 관심사다. LH 매입임대주택은 기존에 지어진 주택을 사들인 뒤 무주택 청년이나 신혼부부, 취약계층 등에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임대하는 사업이다.
이런 기준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혜택을 받는 피해자 수가 적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기준을 완화하면 기존 매입임대주택 신청자와 대기자들과의 형평성 논란을 키울 수 있다.
송 대표는 "LH가 한정된 예산으로 지역마다 예정한 매입 물량이 있는데, 전세사기 지역에 예산이 먼저 쓰일 경우 다른 지역이나 기존 수요자들의 불만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MD비즈니스학과 교수)는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 대책을 내놓으면서도 주거 취약계층의 복지에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며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 만한 묘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원식 (setisou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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