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입법 첫걸음 뗐다…투자자 보호 중심 1단계 법안 마련
가상자산 정의·불공정거래 규제…피해자 집단소송 길 열어
향후 발행·공시 등 시장질서 규제 보완해 2단계 입법
(서울=연합뉴스) 박대한 기자 = 그동안의 가상자산 시장 규제 공백을 메우기 위한 이른바 가상자산법이 국회 첫 문턱을 넘었다.
자금세탁방지에만 초점을 맞춘 현행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과 달리 가상자산법은 가상자산의 정의부터 이용자 자산 보호, 불공정거래 규제 및 처벌, 감독 및 검사 등 가상자산과 관련된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국회는 우선 투자자 보호를 위한 필수사항을 중심으로 1단계 입법을 추진한 뒤 향후 국제기준에 맞춰 가상자산 발생과 공시 등에 관한 2단계 입법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가상자산 범위에 CBDC 제외…일정 이상 자산 콜드월렛 보관 의무화
26일 정치권 및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법안소위)는 전날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이날 법안소위가 의결한 가상자산법은 그동안 국회 계류 중이던 가상자산 규율체계 관련 18개 법안 중 투자자 보호와 관련한 핵심 내용을 추려서 담았다.
법안은 우선 특금법과 마찬가지로 가상화폐가 아닌 가상자산 용어를 사용하면서 '가상자산'을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전자적으로 거래 또는 이전될 수 있는 전자적 증표(그에 관한 일체의 권리 포함)'로 정의했다.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는 디지털 형태의 법화(화폐)이므로 가상자산에서 제외했다.
가상자산업계는 그동안 가상자산을 미래의 '화폐'라고 주장했지만, 현행 법제는 물론 정부 역시 가상자산은 법화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에 따라 법안은 '한국은행법'에 따라 한은이 발행하는 전자적 형태의 화폐 및 그와 관련된 서비스는 가상자산 범위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법안은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를 위해 가상자산의 매매와 중개, 영업행위와 관련한 예치금을 사업자 고유재산과 분리해 예치 또는 신탁하도록 했다.
가상자산사업자가 이용자 자산을 보관하는 경우 이용자의 주소 및 성명, 가상자산 종류 및 수량, 전자지갑주소 등을 기재한 명부를 작성·비치하도록 하고, 사업자의 자기 소유 가상자산과 이용자의 가상자산을 분리해 보관하도록 했다.
특히 이용자 가상자산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 이상의 가상자산을 인터넷과 분리된 콜드월렛에 보관해 해킹 등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핫월렛은 온라인에 연결된 가상화폐 지갑으로 보안 수준이 낮은 반면, 콜드월렛은 인터넷과 차단된 가상화폐 지갑인 만큼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은 특징을 갖고 있다.
법안은 또 해킹이나 전산장애 등 사고에 따른 책임 이행을 위해 가상자산사업자가 보험 또는 공제 가입, 준비금 적립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했다.
가상자산사업자는 거래 내용을 추적·검색하거나 내용 오류를 확인 및 정정할 수 있도록 거래 기록을 거래관계 종료 후부터 15년간 보존해야 한다.
불공정거래 시 처벌조항 마련…집단소송 길도 열어
법안은 또 불공정거래를 규제하고 이상거래에 대한 감시 및 신고의무를 사업자에게 부과했다.
우선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행위, 시세조종 행위, 부정거래 행위 등을 불공정거래 행위로 규정했다.
불공정거래행위가 적발되면 금융위원회가 위반행위로 얻은 이익 또는 이로 회피한 손실액의 2배 상당 내지 50억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1년 이상의 유기징역, 위반행위로 얻은 이익 또는 회피한 손실액의 3배 이상 5배 이하 벌금을 부과하는 벌칙 조항도 마련했다.
가상자산사업자는 또 자기 발행 또는 특수관계인 발행 가상자산을 사고팔거나 거래하는 것이 금지된다. 이는 현행 특금법에서도 규정된 내용이다.
법안에는 또 가상자산사업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이용자의 가상자산 입금 및 출금을 차단하지 못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손해를 배상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가상자산의 가격이나 거래량이 비정상적으로 변동하는지를 사업자가 상시 감시하고 이용자 보호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법안은 가상자산 매매 또는 거래 과정에서 다수의 피해가 발생한 경우 손해배상청구소송(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집단소송 요건이나 절차 등은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을 준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가상자산사업자의 감독 및 검사권을 금융위원회에 부여하되, 구체적인 검사방법과 절차, 결과 조치기준 등을 금융위가 고시하도록 했다.
특히 가상자산사업자의 법 위반 사실 발견 시 시정명령이나 경고, 주의, 영업정지 등의 조치와 함께 수사기관에 통보하거나 고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금융감독원의 검사권은 법률에 명시하지 않았다.
금감원은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업무 등을 수행하는데 가상자산시장이나 사업자는 금융시장이나 금융기관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했다.
별도로 법안은 한국은행이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해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담았다.
다만 법안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가상자산 거래와 관련해 통화신용 정책의 수행, 금융안정 및 지급결제제도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로 한정했다.
자본시장법에서도 금융회사의 통화신용정책과 관련되는 업무에 대해 한은의 자료제출요구권을 명시한 점을 참조했다.
법안은 가상자산시장 및 사업자에 대한 정책, 제도 관련 자문을 위해 금융위원회가 가상자산 관련 위원회를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1단계 입법은 투자자 보호 중심…2단계서 시장질서 규제 보완
이날 법안소위를 통과한 법안은 향후 정무위 전체 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될 예정이다.
다만 이번 가상자산법은 1단계 입법으로 향후 2단계 입법이 뒤따를 예정이다.
앞서 정무위는 가상자산 규제 공백을 감안해 우선 투자자 보호를 위한 필수사항을 중심으로 입법을 추진한 뒤 향후 발행·공시 등 시장질서 규제를 보완한 2단계 입법에 나서기로 했다.
법안소위는 또 금융당국에 가상자산 규율과 관련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부대의견을 함께 채택했다.
구체적으로 금융위가 가상자산사업자의 가상자산 발행 및 유통에 따른 이해상충 문제, 스테이블 코인(증권형 토큰, 유틸리티 토큰 등 포함)에 대한 규율 체계, 가상자산평가업이나 자문업·공시업 관련 규율 체계, 가상자산 유통량·발행량에 대한 통일된 기준, 가상자산사업자의 공시 및 내부통제 의무 부과 등에 대한 입법의견이나 대책을 마련해 국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국회 정무위 소속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은 "그동안 가상자산 투자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규제 장치도 없어 급증하는 가상자산 관련 사건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면서 "가상자산 규제 마련의 과도기인 만큼 시장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투자자 보호를 가장 우선으로 하고, 이후 시장의 발전을 위한 2단계 입법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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