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유출 위험·교도소 탈옥까지···남지도 떠나지도 못하는 수단인들
2주째 군벌 간 무력 충돌이 이어지고 있는 수단의 혼란이 갈수록 극심해 지면서 사회가 완전히 붕괴될 위험에 처했다. 각종 바이러스가 보관돼 있는 연구소가 군벌에 장악돼 생물학적 재해 위기에 처한데 이어, 교전으로 인한 혼란을 틈타 다르푸르 대학살의 주범들이 감옥에서 빠져나갔다. 외국인들처럼 탈출도 여의치 않은 수단 주민들은 군벌들이 민간인을 ‘인간 방패’ 삼아 전쟁범죄를 저지를까 두려워하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25일(현지시간) 세계보건기구(WHO) 수단 주재 대표인 니마 사이드 아비드 박사는 “양 군벌 중 한 세력이 수도 하르툼의 중앙공중보건연구소를 장악하고 모든 연구원을 내쫓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극히, 극히 위험하다. 연구소에 홍역, 콜레라, 소아마비 병원체 및 기타 위험한 샘플이 있다. 엄청난 생물학적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해당 연구소는 정부군과 신속지원군(RSF)이 교전을 벌이는 지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지난 15일 양측 충돌이 발생한 이후 하르툼은 전기와 수도 등 기반시설이 제대로 유지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 관리 인력이 쫓겨나고 연구소의 전기가 끊겼다는 것은 “의료적 목적으로 연구소에 보관돼 있던 생물학적 물질들을 적절히 관리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WHO는 밝혔다.
교전으로 인한 혼란을 틈타 감옥에서는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ICC)에 기소된 수단 정치인들이 대거 탈옥했다. 아랍 매체 미들이스트아이(MEE)는 탈옥수들을 인용해 하르툼에 있는 코베르 교도소 주변에서 충돌이 격화된 틈을 타 수감자 수천명이 탈출했다고 보도했다.
BBC 등에 따르면 아흐마드 하룬 전 장관도 이때 탈출에 성공했다. 그는 현지 방송 채널 타이바에 보낸 음성 메시지를 통해 전직 관리들과 함께 교도소에서 빠져나왔다고 확인했다. 하룬은 2019년 쿠데타로 축출된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 정권하에서 내무부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2003년 시작된 다르푸르 대학살을 주도한 혐의로 2007년 ICC에 기소됐다. 다르푸르 학살 당시 강간, 고문 등 각종 범죄가 자행됐으며 민간인 약 30만명이 희생됐다.
코베르 교도소에 5년 째 수감 중이었던 알바시르 전 대통령도 함께 탈출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지만, 정부군은 이날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기 전 알바시르 전 대통령을 교도소에서 하르툼의 군 병원으로 이송했다고 밝혔다. 알바시르 전 대통령 역시 다르푸르 학살로 ICC 수배 대상에 오른 상태다.
정부군과 RSF는 25일부터 72시간 휴전에 합의했으나, 여전히 교전이 일어난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이날도 하르툼 내 대통령궁과 육군본부 인근에서 격렬한 충돌이 관측됐다. 볼케르 페르테스 주수단 유엔 대사는 “양쪽 중 누구도 진지하게 협상할 준비가 돼있지 않다. 휴전은 부분적으로만 이어지고 있다”면서 “이는 각자 상대방을 상대로 군사적 승리를 거둘 수 있으리라 믿는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각국이 수단에서 자국민들을 빼내가자 남아있는 수단인들의 공포는 더욱 커진 상황이다. 현지에선 휴전 기간 외국인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나면 더 큰 유혈사태가 일어나리란 우려가 나온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한 주민은 “왜 전쟁이 나면 세계는 우리를 버리는가. (외세는) 자신들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하르툼 주민은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사용하는 비윤리적인 전쟁 관행이 벌어질까 우려한다. 이것이 외국인 대피 이후 우리의 공포”라고 말했다.
외국인들과 달리 수단 국민들은 떠나지도, 머무르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웃국 이집트로 향하는 버스 요금은 6배가 뛰었으며 대피하는 여정 역시 안전하지 않다. 결국 떠나기로 결정한 하르툼의 한 주민은 “나는 난민이 되고 싶지 않다. 돌아오고 싶다”며 “언제 돌아올지, 내 집이 여전히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고 BBC에 말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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