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알람을 연주한 거장이 말했다…“오르간은 뭐든 할 수 있어”
2017년 8월3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선 카카오톡 알림 소리가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휴대전화를 끄지 않은 민폐 관객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올리비에 라트리(61)가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는 소리였다. 당시 라트리는 공연 전에 관객들로부터 좋아하는 멜로디를 적은 쪽지를 받아 무대에서 즉흥 연주를 펼쳤다. 그가 뽑은 쪽지에는 ‘애국가’와 ‘카카오톡 알림음’이 적혀 있었다. 애국가를 연주할 때는 관객이 함께 노래를 합창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세계 최고의 오르가니스트’로 불리는 올리비에 라트리가 6년 만에 한국을 찾아 오는 5월1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다양한 오르간 음악을 들려준다. 라트리는 26일 서면 인터뷰에서 “음악의 세계는 정말 넓어서 한 가지 레퍼토리만 계속 연주하는 건 상상할 수 없다”며 “평생을 바쳐도 모든 것을 연주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하지 않았던 것을 탐구하려 최선을 다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라트리는 바그너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중 1막 서곡, 리스트 ‘두 개의 전설 - 새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 발췌곡, 프랑크 ‘오르간을 위한 영웅적 소품’, 비도르 오르간 교향곡 5번을 선곡했다. 특히 ‘동물의 사육제’ 발췌곡은 라트리의 부인인 오르가니스트 이신영이 편곡했다. 라트리는 “편곡이 상당히 훌륭해서 제가 직접 연주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라트리는 “저는 프로그램을 구상할 때 관객, 오르간, 그리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찾으려 노력한다”며 “이번에 연주되는 모든 작곡가들은 마치 ‘음악 대가족’처럼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저는 오르간 전통이 뿌리 깊은 프랑스 출신이에요. 프랑스 음악의 홍보대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프랑크, 생상스, 비도르 음악을 선택했죠. 바그너와 리스트는 세 프랑스 작곡가에게 영향을 끼쳤어요.”
오르간은 웅장하고 신비한 음향을 가졌지만 대중에게 익숙한 악기는 아니다. 라트리는 “제가 오르간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재다능함”이라며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르간은 독주회, 오케스트라, 합창단뿐 아니라 록, 힙합, 댄스와의 크로스오버 공연에도 사용할 수 있는 복합적인 악기죠. 소리가 정말 넓고 다채로워서 들을 때면 언제나 압도돼요. 저는 오르간의 미래를 정말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라트리는 1985년 23세 때 노트르담 대성당 역사상 최연소로 상임 오르가니스트가 됐고, 38년이 지난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9년 노트르담 대성당에 불이 나는 참사가 있었지만 오르간은 기적적으로 망가지지 않았다. “제가 (후대에) 어떻게 기억될지는 신경 쓰지 않아요. 교회에서 연주하든 콘서트를 열든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이 중요하죠. 노트르담은 제 마음뿐 아니라 모든 프랑스 사람, 어쩌면 세계 모든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 같아요. 그 건물의 힘은 정말 감동적이에요. 수세기 동안 사람들이 기도했기 때문일까요.”
라트리는 ‘이번에도 즉흥 연주를 기대해도 되겠느냐’는 질문에 “어떻게 연주할지 두고 보시라”고 대답했다. “즉흥 연주는 매번 큰 도전이지만 관객의 기억 속에만 남아요. ‘그 자리에서’ 작곡되며 마지막 음이 끝나면 즉시 사라지죠. 근사하다고 생각해요.”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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