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감기약’ 다시 유통…국내외 약물 안전성 논란
전 세계 어린이 300명 이상을 사망에 이르게 한 독성물질을 함유한 기침시럽이 다시 유통돼 세계보건기구(WHO)가 경고를 발령했다. 국내에서도 동아제약 챔프시럽 등 4월 중에만 9가지가 넘는 제품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강제 회수 명령을 받는 등 안전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WHO는 25일(현지시간) 태평양 마셜제도 공화국에서 승인‧판매된 기침·가래시럽에서 허용치 이상의 에틸렌글리콜(EG)과 다이에틸렌글리콜(EDG)을 확인했다며 ‘의료제품경고(Medical Product Alert)’를 발령했다.
마셜제도 공화국에서 문제가 된 제품은 구아이페네신(Guaifenesin) 성분으로 가래와 기침증상 완화에 사용되는 거담제다. 제품명은 ‘GUAIFENESIN SYRUP TG SYRUP’으로 제품의 명시된 제조업체는 ‘QP PHARMACHEM LTD(인도 펀자브주 소재)’이고 판매‧마케팅업체는 ‘TRILLIUM PHARMA(인도 하야나주 소재)’다.
에틸렌글리콜과 다이에틸렌글리콜은 자동차 부동액으로 널리 사용되는 화학물질로 식용 사용이 금지돼 있다. 그러나 단맛이 나는 특성을 악용해 일부 해외 제약사에서 기침시럽 등에 부적절하게 첨가하고 있다.
특히 2022년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감비아,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전 세계 7개국에서 300명이 넘는 어린이가 목숨을 잃은 사망사건의 원인으로 이들 물질이 꼽히기도 했다.
당시 WHO는 주로 5세 이하의 아동이 기침시럽을 먹고 급성 신장질환으로 숨지는 사례가 이어졌다는 점을 확인하고, 에틸렌글리콜 등을 기준치 이상으로 함유한 인도와 인도네시아 제약사의 기침·가래시럽 8개 제품에 대한 의료제품경고를 발령했다.
WHO 관계자는 당시 “문제의 시럽에는 산업용 용제와 부동액으로 사용되는 유독성 화학물질이 함유돼 있어 소량만 먹어도 치명적일 수 있고 의약품에서 절대 발견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도 의약품과 의약외품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식약처 의약품통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4월 중 강제 회수·폐기 명령을 받은 제품은 총 9가지(26일 기준)다. 확인된 회수사유는 ▲유리조각 혼입 ▲과산화물가 부적합(산성부패) ▲사용이 금지(제한)된 원료사용 ▲미생물(진균) 과다검출에 따른 품질부적합 등이다.
대표적으로 근육이완제로 사용되는 이연제약의 ‘베카론주(베쿠로늄브롬화물)’ 일부 제품에서는 유리조각 혼입이 확인돼 회수명령을 받았으며, 고지혈증 치료에 사용되는 건일제약의 ‘오마코미니연질캡슐’ 일부 제품은 시판 후 안정성 시험에서 과산화물가 부적합으로 회수명령이 이뤄졌다.
건일제약에서 위탁생산한 삼진제약의 ‘오엠지미니연질캡슐’도 같은 이유로 회수명령을 받았다.
동아제약 ‘챔프시럽(아세트아미노펜)’은 식약처가 갈변(산화작용으로 점차 갈색으로 변하는 현상) 논란이 발생한 시중 유통제품을 직접 검사한 후, 일부 제품들에서 곰팡이와 효모균과 같은 ‘진균’이 기준치 이상 검출돼 ‘품질부적합’에 따른 회수명령을 발령했다.
이후 식약처는 26일 ‘챔프시럽(아세트아미노펜)’ 품목의 제조‧판매를 잠정 중지시키고, 의‧약사와 소비자에게는 해당 제품의 사용을 중지하거나 다른 대체 의약품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내용의 의약품 안전성 속보를 배포했다.
잠정 제조·판매·사용 중지 조치는 동아제약의 제조‧품질 관리의 적절성이 확인될 때까지 유지된다. 다만 아세트아미노펜 단일성분이 아닌 다른 성분의 챔프시럽은 계속 판매될 수 있다는 게 동아제약 측의 설명이다.
부산광역시약사회는 동아제약 챔프시럽 사태에 대해 “챔프시럽의 갈변 민원은 1월부터 이달 초까지 맘카페 등을 통해 꾸준히 제기되고 있었다”며 “동아제약은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거나, 그 심각성을 인지했으나 자발적 회수라는 최소한의 조치만으로 어물쩍 대충 넘어가 보려 함으로써 국민과 약국가(街)를 심각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한 중대한 과오를 범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식약처는 이번 동아제약 챔프시럽 갈변현상에 대해 일부 제품 성상변화와 관련한 행정처분에만 그치지 말아야 한다”며 “GMP(우수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 위반까지 모든 상황을 고려한 강력한 행정처분을 내림으로써 국내 제약사 등에서 동일 사안이 재발하지 않도록 일벌백계의 교훈으로 삼아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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