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특별법' 만든다던데...멈추지 않는 피해자들, 왜?

오문영 기자 2023. 4. 2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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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전세사기·깡통전세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전세기 피해자 배소현씨가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26일 국회를 찾았다. 이들은 정부·여당이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음에도 오히려 피해자들의 불안은 여전하다고 호소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정부 대책에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우선매수권과 저리 대출을 골자로 하는 정부의 특별법이 다양한 피해 유형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정부·여당과 피해자 간 부족한 소통이다. 피해자들은 면담 요청이 모두 거절당하고 있다며 언론 보도를 통해서만 추상적인 수준의 대책을 전해 듣고 있다고 했다.

한편 정부는 피해를 모두 국가가 보전할 경우 사기 범죄를 국가가 조장하는 셈이 될 수 있다며 추가적인 대책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국회 앞 모인 피해자들…"돌려막기에 급급한 방안이 전부"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특별법 제정 총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책위 소속 피해자들과 참여연대, 민달팽이유니온 등 시민사회단체 11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의 손에는 '보증금 채권 공공 매입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내용의 피켓이 쥐어져 있었다.

발언자로 나선 피해자들은 정부에서 추진 중인 대책이 얼마나 많은 피해자에게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가장 큰 문제는 보증금 회수가 요원하다는 점이다. 이들은 캠코 등 공공기관이 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입한 뒤 회수하도록 하는 방안이 특별법에 최종적으로 담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에서 발의한 특별법에 담긴 내용이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인 박순남씨는 "생업을 포기하고 대책을 촉구하며 거리로 나온 지 1년 가까이 됐지만, 나온 대책은 극소수 피해자에만 해당하는 긴급 거주지원과 또다시 대출을 내어줄 테니 전세를 가라는 것뿐이었다"며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해서는 피해 금액을 온전히 회수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중간중간 울음을 참으며 사전에 적어온 글들을 천천히 읽어나갔다.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와 시민사회대책위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사진=뉴스1


안상미 대책위원장도 "보증금반환 채권매입 방안이 빠질 것으로 예상되는 정부·여당 특별법은 경매가 진행되지 않은 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서 불안한 상태에 있을 대다수 피해자를 나 몰라라 하는 것"이라며 "당장 1000여 세대에 피해를 주고 돌연 숨진 빌라왕 김모씨의 피해자들은 선순위 당해세와 상속 문제가 있어 채권매입을 통하지 않으면 해결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정부·여당이 피해자들과 소통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대책위에서 활동하는 이연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 "대책위에서는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면담을 요청했으나 공식 거부당했고, 특별법으로 전세사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우리 요구를 거부해왔다"며 "그러더니 갑자기 입장을 선회해서 특별법을 발의한다고 하는데 아직도 저희는 어떤 이야기도 직접 전해 듣지 못했다"고 했다.

정부 대책에…심상정 "아직도 멀었다" 조오섭 "근본 해결책 아냐"
정부·여당에 앞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한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했다. 이들은 실질적인 피해자 구제를 위해서는 보다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 의원은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찔끔 대책으로 아직도 멀었다"며 "전세사기가 전방위적으로 확산할 것을 고려한다면 다양한 피해사례의 10분의 1 정도밖에 포괄하지 못한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캠코를 통한 보증금 채권 매입, 소급 적용 등을 제안했다. 심 의원이 이달 3일 발의한 '임대보증금 미반환주택 임차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안'에 담긴 내용이다.

심 의원은 "채권매입은 피해자가 일부 보증금을 회수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정부가 채권을 매입해서 피해자가 개별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경매와 소송 절차를 단축해 피해자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방법이라 꼭 필요하다"며 "또 9월부터 피해지원센터 운영됐음을 고려해 9월 이후 센터 신고된 경우에 대한 소급 적용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깡통전세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스1


조 의원도 전세사기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채권매입기관이 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입하는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지난달 30일 대표로 발의한 '주택임차인의 보증금 회수 및 주거안정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을 소개하며 "정부·여당이 혈세 낭비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반대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전문 채권매입기관이 적절한 평가를 통해 매입한 뒤 경매나 공매를 통해 다시 환수하는 것으로 국가 세금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전세사기 사태에 정부의 책임이 있는 만큼, 정부가 피해 회복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도 말했다. 조 의원은 "임차인의 계약상 부주의는 대체로 경미한 반면, 임대인과 중개인이 꾸민 악질적 집단 사기로 인한 피해가 대부분"이라며 "무분별하게 대출과 보증을 확대하고 악성 임대인 관리를 부실하게 하는 등 정부 책임도 있다"고 했다.

한편 정부는 보증금 반환 채권을 공공이 매입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5일 서울 강서구 전세피해지원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사기 피해를 국가가 떠안는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기 범죄를 국가가 조장하는 결과가 된다"며 "보증금을 반환받고 싶은 절박한 마음은 알겠지만, 실질적 만회 방안은 다른 정책을 통해 해야 한다"고 정부가 피해를 보전하는 방안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오문영 기자 omy072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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