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에게 능동적인 노력 요구하는 '듣고 보니 그럴싸', 그게 가능할까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듣'고 '보'고 '잡'담하기)] JTBC <듣고 보니 그럴싸>는 근래 쏟아져 나온 스토리텔링 예능 중 가장 도전적인 프로그램이다. 영화감독 장항준, 배우 서현철과 박하선, 크리에이터 문상훈, 성우 김보민, 개그맨 이은지 등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들을 라디오 드라마 형식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지난달 15일 시작해 6회 정도 진행된 현재 시청률은 아직 낮지만 자신들의 새로운 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라디오 드라마 형식이라는 의미는 출연자들이 소리를 통해 시청자들이 스토리를 상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출연자들이 마이크 앞에서 동작 연기는 최소화한 상태로 펼치는 대사 연기와, 폴리 아티스트가 만들어내는 각종 효과음으로 상상력을 자극해 장면들을 상기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런 시도가 과감한 이유는 영상으로 정보를 습득하는데 시청자들이 익숙한 TV에서 소리로 정보를 전달해보고자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듣고 보니 그럴싸>도 간간이 자료화면 같은 영상을 보조적으로 사용하지만 다른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에 비해 비중이 훨씬 작다.
스토리텔링 예능의 상징이 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경우를 보면 스토리를 지인과의 잡담 같은 구술 위주로 전달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자료나 재현 화면을 많이 사용한다. 이는 다른 일반적인 스토리텔링 예능도 비슷하다.
<듣고 보니 그럴싸>는 스토리텔링 예능이 인기를 끌면서 비슷한 패턴이 범람하자 차별화를 시도하기 위해 이런 포맷을 택한 듯하다. 구술하는 방식의 예능들을 대중이 좋아한다면 상상력을 더 자극하는 대사 연기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려는 의도였을 듯싶다. 과거 라디오 드라마가 큰 인기를 누렸던 점을 참고해 스토리텔링 예능에 복고의 바람을 기대했을 수도 있다.
<듣고 보니 그럴싸>는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를 떠올리게 한다. 이 영화는 라디오 드라마 생방송 부스 안에서 벌어지는 출연자, 방송 관계자들 간의 티키타카 해프닝을 몰아치듯 보여주는 내용으로 코미디 영화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듣고 보니 그럴싸>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의 흥겨움과 재미가 더해진 스토리텔링 예능을 시도한 듯하다. 출연자들의 구성만 봐도 서현철, 문상훈, 김보민, 이은지 등 대사 연기와 예능에 필요한 개그가 동시에 가능한 멤버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듣고 보니 그럴싸>는 갈수록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같은 코믹한 상황은 줄여나가고 있다. 첫 회에서는 대사 연기 도중 간간이 개그를 섞기도 했지만 이후 우스갯소리는 오프닝 단체 토크와 장항준의 진행 부분 정도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대부분 진지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스토리텔링 예능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사건들을 주로 소재로 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웃음을 섞기에는 피해자의 비극적인 상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뿐더러 시청자들이 불편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방영된 6회에서는 다소 가볍게, 정부의 보안 문제에 대한 해프닝을 다뤘고 코믹한 설정도 간간이 가미됐다. 하지만 첫 회를 제외하면 <듣고 보니 그럴싸>는 전반적으로는 비장한 분위기로 갈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 소재로 많이 채택됐다.
<듣고 보니 그럴싸>는 새로운 시도에 나섰고, 방송을 해나가면서 변화도 주고 있지만 시청률이 1%를 넘기는데 애를 먹는 상황이다. 아직 몇 회 지나지 않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적어도 <듣고 보니 그럴싸>가 택한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방식에 시청자들이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듣고 보니 그럴싸>가 추구하는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방식은 시청자들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꼬꼬무> 등 다른 스토리텔링은 시청하는데 집중력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고 편하게 따라갈 수 있다. 하지만 <듣고 보니 그럴싸>는 집중해서 대사 연기를 듣고 머릿속에 그 상황을 그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시청자는 어느 순간 흘러간 이야기로부터 많이 벗어나 있게 돼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듣고 보니 그럴싸>는 고정 출연자는 물론 매회 게스트로 방문하는 배우들도 연기가 뛰어난 신스틸러들이 많아 대사 연기로 제한돼있는 상황 속에서도 감동적인 좋은 연기를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런 맥락에서 <듣고 보니 그럴싸>는 어떤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작품은 감상자가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 어떤 능동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 <꼬꼬무> 등 다른 스토리텔링 예능은 술자리 토크처럼 부담 없이 즐기면 되도록 다가온다. <듣고 보니 그럴싸>가 안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황은 현재의 시청자들이 TV를 대하는 태도를 잘 설명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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