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이병헌 감독 “‘거지’라는 말 흔히 쓰지만 우리는 홈리스를 모른다”[인터뷰]
특유의 티키타가 대사 등 자제
6명의 서사 균형감 있게 녹여
“거지 같네.”
일상에서 가벼운 욕처럼 쓰이는 말이다. 영화 <드림> 속 대사에서는 그 무게가 다르다. 축구팀 감독 홍대(박서준)가 “그지(거지) 같네”라 한탄하자 홈리스 팀원들은 “뭐 틀린 말은 아니네”라며 웃어 젖힌다. 영화를 만든 이병헌 감독은 24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 ‘거지’라는 단어를 우리가 흔히 쓴다. ‘거지’가 극단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집 없이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그분들에 대해 너무 모르지 않았나. 이 영화는 그분들을 소개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드림>은 갖가지 사연으로 집을 떠났던 이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이 감독은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들은 홈리스들의 사연을 기반으로 환동(김종수), 효봉(고창석), 범수(정승길), 인선(이현우), 문수(양현민), 영진(홍완표) 등 캐릭터들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1997년 외환위기 때 사업이 망했거나, 빚보증을 잘못 섰거나, 건설 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장애를 가지면서 거리로 나왔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이다.
“지금은 홈리스라는 단어를 많이 쓰지만 예전에는 ‘노숙자’라고 했습니다. 노숙자 하면 거리에 누워 있는, 지저분한 이미지를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사실 많은 분들이 시설이나 쪽방 같은 데 계시고, 거리에 있는 분들은 한 5%도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빅이슈를 통해 소개받거나 홈리스 월드컵 대회를 따라가면서 취재한 홈리스들의 사연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어요. 다 비슷했죠. IMF, 빚보증, 건설 현장 사고, 가정불화 같은 것들이요.”
영화에는 그간 상업 극 영화에서 보기 어려웠던 쪽방 등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홈리스를 다루는 낯선 시도인 만큼 영화는 캐스팅과 투자에 어려움을 겪었다. <드림>은 이 감독의 대표작인 <스물>(2014) 이전에 쓴 작품이다. 이 감독은 “편견을 깨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재미없어 보였나 보다.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다는 게 설명이 잘 안돼 캐스팅과 투자에서 부침이 있었다”며 “그래도 지금 작품이 초고와 달라진 것은 크게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말(생각)이 맞는 것 같았다. 손해를 감수해서라도 끝을 봐야겠다(작품을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이 <극한직업>(관객 수 1600만명)으로 큰 사랑을 받은 만큼 관객들은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차기작을 기대했을 수 있다. <드림>은 코미디 요소보다는 감동을 위한 서사 비중이 크다. 이 감독 특유의 ‘티키타카’ 대사의 밀도도 이전 작품보다는 덜하다. 이 감독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을 다루는 만큼 코미디를 얼마만큼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초고에는 코미디가 더 많았지만 스태프들과 회의하며 걷어내는 작업들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어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후반부 이야기가 정해져 있었다. 대회 과정을 그대로 영화로 옮기고 싶었다”며 “이 장면들에서 ‘나의 기교’를 부려서 내가 너무 끼어든 느낌이 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박서준과 아이유가 내세워졌지만 진짜 주인공은 홈리스들이다. 이 감독은 실제 대사 분량까지 조절해가며 홈리스 6명의 이야기를 균형 있게 다루려고 했다. 축구선수이자 홈리스 월드컵팀 감독을 맡은 홍대는 관객과 홈리스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의 엄마도 사기죄 때문에 쫓긴다.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홈리스다. 홍대는 어느 날 쪽방에서 발견된다. ‘잠수를 탄’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홍대는 “왜 잠적하는지 알 것 같다”고 말한다. 이 감독은 “홈리스가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홍대는 울타리 안에 있는, 대신 울타리 중심에서는 밀려난, 울타리 바깥과 가장 가까운 울타리 안 사람이길 바랐다”며 “그가 울타리 바깥 사람들을 만나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터뷰 중 여러 차례 스스로를 ‘우울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코미디 장르를 자주 작업하는 데 대해서도 “ ‘우울감이 있으니 생각이라도 재밌게 해야 하지 않나’ 하는 개인적 이유가 있다”고 했다. 이어 “대단한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진다거나, 시각적으로 예술적인 영화도 중요하지만 그건 더 잘하시는 분들이 하면 된다. 저는 재밌는 걸 좋아하는 종류”라고 했다.
“요즘 장르물이 많잖아요. 편한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좀 했습니다. <드림>이 엄마·아빠뿐 아니라 할머니·할아버지랑 같이 봐도 거슬릴 게 없는 편안한 영화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관객분들이 많이 들면 물론 좋겠지만, 보신 분들이 ‘필요한 영화네’ ‘의미 있는 이야기네’ 하셨으면 합니다.”
이 감독의 다음 작품은 넷플릭스 시리즈 <닭강정>이다. 의문의 기계에 들어갔다가 닭강정으로 변한 딸 민아를 찾는 아빠와 민아 친구의 이야기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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