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라떼스타] 서세원, 영욕의 44년…'토크박스' 전성기부터 충격 폭행사건까지

고재완 2023. 4. 2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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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욕의 세월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코미디언 서세원이 지난 20일 캄보디아 프놈펜 한인 병원에서 링거 주사를 맞다가 사망했다.

코미디 트렌드가 '토크쇼' 형태로 바뀌는 상황에서도 서세원은 인기를 유지했다.

이후 2019년 12월 캄보디아로 이주한 뒤 서세원은 현지에서 거주하며 목회 활동을 하며 호텔, 카지노 등 부동산 사업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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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서세원쇼' 당시 서세원. 스포츠조선DB

[스포츠조선 고재완 기자] 영욕의 세월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코미디언 서세원이 지난 20일 캄보디아 프놈펜 한인 병원에서 링거 주사를 맞다가 사망했다. 여러 풍파를 겪었지만 그가 한국 연예계의 한 시대를 풍미한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다. 그만큼 개그계 뿐만 아니라 영화계 등 연예계 전반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끼쳤던 연예인이 바로 서세원이었다.

1979년 TBC 라디오 개그콘테스트로 데뷔한 고인은 1980~90년대 최고의 사랑을 받으며, '영11', '청춘행진곡',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 당시 최고 인기 프로그램에서 맹활약했고 수많은 유행어까지 만들어냈다.

2001년 KBS2 '서세원쇼'. 스포츠조선DB

코미디 트렌드가 '토크쇼' 형태로 바뀌는 상황에서도 서세원은 인기를 유지했다. 제2의 전성기는 1996년 KBS2 '서세원쇼'를 통해서였다. 각종 연예인들을 섭외해 '토크박스'라는 코너에서 웃음의 순위를 매기는 방식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2001년 영화 '조폭마누라' 제작발표회. 스포츠조선DB

이후 2001년에는 영화 '조폭마누라'를 제작해 흥행에 성공하면서 영화계로 영역을 확장했다. 하지만 후속작 '긴급조치 1호'로 연이어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으면서 영화 제작자로서의 길은 험난해졌다. 이후부터는 꽤 고난의 길을 걸었다. 2003년 연예인 뒷돈 사건에 연루돼 해외 도피했다가 귀국하면서는 입국장에서 병원 침대에 누워 나오는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2003년 연예계 비리 사건에 연루된 서세원은 해외로 도피했다가 수많은 취재진에 둘러쌓인채 침대에 누워 입국했다.(위) 당시 서울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서세원. 스포츠조선DB

이후 2004년에는 영화 '도마 안중근'의 메가폰을 직접 잡으며 재기를 꿈꿨지만 수준 미달의 작품이라는 혹평으로 영화판에서도 멀어졌다.

2004년 영화 '도마 안중근' 제작보고회에서 윤원일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사무총장과 서세원 감독, 주연배우 유호성(왼쪽부터)이 손을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포츠조선DB

2009년에는 주가 조작 및 회사 자금 횡령으로 인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선고를 받았고 KBS EBS SBS에 영구출연정지 처분을 받았다.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고 공중파 복귀를 꾀했지만 실패하자 종편 채널로 눈을 돌렸다. 2013년 채널A 4부작 파일럿 토크쇼 '서세원 남희석의 여러 가지 연구소'를 통해 복귀했으나, 저조한 시청률로 고전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했다.

2013년 채널A 토크쇼 '서세원 남희석의 여러 가지 연구소'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서세원. 스포츠조선DB

그리고 지난 2011년엔 미국의 한 신학 교육기관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뒤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2014년 부인 서정희를 복도에서 폭행한 영상이 공개되며 대중적 지탄을 받았다. 결국 이들은 2015년 이혼했고, 서세원은 2016년 23세 연하 해금 연주자 김모씨와 결혼했고 딸을 낳았다.

이후 2019년 12월 캄보디아로 이주한 뒤 서세원은 현지에서 거주하며 목회 활동을 하며 호텔, 카지노 등 부동산 사업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문화관광부 장관의 제안으로 방송사를 세우기로 했다는 소문까지 나왔다. 하지만 갑작스런 의료사고로 사망함으로써 영욕의 세월을 마감했다.

방송 능력은 '천재'에 가깝다는 소리를 듣던 서세원이었다.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손대는 프로그램마다 대 성공을 거뒀고 콩트 코미디에서 토크 코미디로 트렌드가 넘어가는 대격변의 시기에도 흔들림없이 최고의 자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사업 욕심, 영화 욕심이 그를 범죄의 길로 몰고갔고 결국 해외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말로를 맞았다.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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