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제작’의 현지화 첫 발...미드 ‘빅 도어 프라이즈’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3. 4. 2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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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드래곤 美 지사 설립 후 첫 결실
손민정 책임PD 등 글로벌담당 서면인터뷰
잠재된 가능성 알려주는 신비로운 기계로
평범했던 마을 주민들 삶 뒤바뀌는 드라마
“K콘텐츠 특유의 캐릭터 중심 서사로 기획”
‘사랑의 불시착’ 현지화 등 20여 작품 진행
애플TV+ ‘운명을 읽는 기계’ 미국 남부의 한 마을, 사람들의 잠재된 가능성을 알려주는 신비로운 기계가 나타나면서 40대 가장이자 고등학교 선생님인 더스티(배우 Chris O‘Dowd)를 비롯해 인물들의 인생이 뒤바뀐다. <사진제공=스튜디오드래곤>
가능성. 마치 운명을 점지해주는 신탁과도 같은 하나의 단어로 내 인생의 잠재력을 알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애플티비+의 오리지널 시리즈 ‘더 빅 도어 프라이즈’(운명을 읽는 기계)는 이런 상상을 풀어낸 10부작 드라마다. 적당히 행복하게 굴러가는 듯 보이던 미국의 한 마을에 돌연 의문의 기계가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작은 오락실 부스처럼 생겼는데, 동전을 넣고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사람마다 다른 단어가 적힌 카드가 나온다. 언뜻 ‘오늘의 운세’와 비슷해보이는 ‘당신 인생의 가능성’(Your Life Potential). 기계가 내뿜는 신비로운 푸른빛에 매료된 사람들은 카드를 받아든 뒤 제각기 선택을 내린다. 막연히 꿨던 꿈을 향한 새로운 길이 열릴 수도, 평탄할 줄만 알았던 일상이 불안과 의심으로 뒤덮일 수도 있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코미디와 철학적 질문, 과학소설(SF) 요소가 살짝씩 곁들여진 보기 편한 가족 드라마다. 골든글로브 수상 작가인 데이비드 웨스트 리드가 M. O. 월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각본을 썼고, 배우 크리스 오다우드가 40대 가장인 주인공 더스티 역할을 맡았다. 영미권 콘텐츠 비평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비평가 평점 94, 일반 관객 평점 80의 호평을 기록 중이다. 매주 1화씩 공개 중이라 다음달 17일에야 시즌1이 종영되는데, 일찍이 ‘가능성’을 인정받아 시즌2 제작 확정됐다.

이 흥미로운 작품은 ‘한국 제작사가 만든 첫 미드’이기도 하다. 한 해 30여 편의 드라마를 쏟아내는 국내 최대 규모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이 2019년 세운 미국 인터내셔널 지사에서 제작해 방영한 첫 작품이어서다. 지난 2021년 SLL도 미국 제작사 ‘윕’(Wiip)을 인수하는 등 우리나라 대형 콘텐츠 제작사의 해외 거점 진출은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있다.

애플TV+ ‘운명을 읽는 기계’ 그럭저럭 평범해보이는 삶을 살아가던 마을 주민들은 신비로운 기계를 통해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잠재력’을 알게 된다. 드라마는 더스티 가족을 중심으로 매 회 주민들 한 명 한 명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는 식으로 전개된다. <사진제공=스튜디오드래곤>
‘더 빅 도어 프라이즈’의 경우 스튜디오드래곤의 모회사 CJ ENM이 현지 제작사 스카이댄스에 지분 투자를 하면서 파트너십을 맺었고, 스카이댄스 측의 협업 제안으로 기획이 시작됐다. 안수정 스튜디오드래곤 글로벌사업담당 부장은 “미주·유럽 지역에서 한국 드라마의 존재감은 약했던 때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했다”면서도 “지금은 ‘K-프리미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변화를 실감한다”라고 했다.

K콘텐츠가 국경을 범람하며 세계적 돌풍을 일으키는 지금, 국내 제작사가 미국 현지화에 나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드라마의 기획·개발에 참여한 스튜디오드래곤 글로벌사업담당 손민정 책임프로듀서와 안수정 부장, 미국 인터내셔널 지사의 하세라 프로듀서에게 서면으로 물었다.

“콘텐츠는 그 속성상 생명이 있습니다. 한 곳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여러 나라, 다양한 과정을 거치면서 또다른 콘텐츠를 낳기도 합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해 유수의 파트너들과 함께 일하는 건 전 세계의 더 많은 시청자에게 통용되는 콘텐츠 만드는 법을 체득하는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수정 부장)

안수정 스튜디오드래곤 글로벌사업담당 부장.
서로 다른 콘텐츠 제작 공식이 만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가능성은 충분히 엿보인다. 특히 북미 시장의 콘텐츠 제작 환경을 체득한 건 큰 성과다. “한국은 제작사가 방송국·플랫폼에 작품 피칭을 하지만 미국은 작가와 감독이 직접 피칭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또 미국은 시즌제로 작품을 준비하기 때문에 서사뿐 아니라 시즌 전체의 핵심 콘셉트와 메시지를 기획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손민정 책임)
손민정 스튜디오드래곤 글로벌사업담당 책임프로듀서.
약 2년에 걸친 기획·제작 과정에서 스튜디오드래곤의 노하우가 녹아든 부분도 있다. 바로 ‘캐릭터 중심 서사’다. 장소와 등장인물 모두 그야말로 미국적이지만, 형식에 있어서 30분 안팎의 매 회차를 한 인물에 집중한 옴니버스로 구성한 건 한국 제작사가 짚어낸 포인트다. 특정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와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의도적인 기획이라는 게 손 책임의 설명이다. 또 “인간이라면 누구나 궁금해 할 보편적 이야기이자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대입하기에도 좋은 포맷”이라고 안 부장이 덧붙였다.

미국 현지화는 K콘텐츠 지식재산권(IP)에 대한 높은 책임성을 유지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인기 드라마 ‘호텔 델루나’ ‘사랑의 불시착’의 현지화 공동 제작을 진행 중이다. 유니버설스튜디오와 ‘설계자들’, CBS 스튜디오와 ‘마스터마인드’ 등도 연내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진행 중인 프로젝트만 20여 개에 달한다.

하세라 스튜디오드래곤 미국 인터내셔널지사 프로듀서.
하 프로듀서는 “원작 작품의 리메이크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오리지널 콘텐츠의 본질을 보호할 수 있다”며 “자칫 문화적 이해력이 부족할 수 있는 이들에게 전적으로 작품을 맡기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했다. 또 “작가와 배우 등 아시아계 미국인 창작자와 아티스트를 육성할 수 있는 기회”라고 의의를 더했다.

안 부장은 “작품의 결과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현지 파트너 제작사를 신중히 물색하고 있다”며 “스펙터클한 규모의 작품은 스카이댄스TV, 캐릭터 드라마·휴먼 장르는 피프스시즌, 스릴러·공포물은 블룸하우스TV와 각각 진행하는 등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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