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흑인 슈퍼스타’ 해리 벨라폰테 별세

오경민 기자 2023. 4. 2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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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벨라폰테. 경향신문 자료사진.

가수·배우이자 흑인인권 활동가였던 해리 벨라폰테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1950년대 흑인으로서는 드물게 대중문화계 정상에 오른 인물이다. 향년 96세.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벨라폰테는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울혈성심부전으로 사망했다.

그는 1927년 뉴욕 할렘에서 자메이카 이민자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 해군으로 참전했다. 뉴욕으로 돌아와 건물 수위 보조로 일하며 연기 수업을 들었다. 연기학교 수업료를 벌기 위해 뉴욕 재즈클럽 무대에 올랐을 때 레코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RCA 레코드사와 계약한 그는 자메이카 노동요 ‘더 바나나 보트송’ 등의 곡을 담은 앨범 <칼립소>로 전 세계의 호응을 얻었다. 1956년 발매된 <칼립소>는 31주간 빌보드 앨범 차트 1위 자리를 지켰으며 1년 안에 100만장 이상이 팔린 최초의 솔로 아티스트 앨범에 등극했다.

그는 이후 영화와 브로드웨이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영화 <아일랜드 인 더 선>에서는 백인 농장주의 딸을 만나는 흑인 노동운동가 역할을 맡았다. NYT는 루이 암스트롱이나 엘라 피츠제럴드가 그보다 앞서 미국 사회에서 인기를 끌긴 했지만 벨라폰테만큼 ‘슈퍼스타’는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연이나 주연급 역할로 성공을 거둔 흑인은 그가 최초라고 썼다.

그는 흑인 민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연예 활동 초반부터 마틴 루서 킹 목사와 가깝게 지내며 인종분리를 반대하는 단체를 후원하고 흑인 활동가들의 보석금을 지불했다. 그는 흑인 배우가 노동자 계급이나 하층 계급으로 주로 캐스팅되던 시기에, ‘흑인을 비하하는 역할’이라며 뮤지컬 주연 자리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빈곤, 아파르트헤이트 등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캠페인에 참여했다. 2016년 대선 직전에는 NYT에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 후보에게 투표하지 말라는 글을 싣기도 하는 등 꾸준하게 정치적 입장을 밝혀왔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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