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왜 ‘애플’일까?…실리콘밸리의 히피 정신 [미라클레터]
“Stay hungry, Stay foolish”
명언 히피 문화 잡지에서 따오다
히피가 떠난 샌프란시스코로 몰려든
생성형 인공지능 스타트업들
수익 아닌 세상의 변화를 꿈꾸다
그동안 실리콘밸리에서 머물면서 “이런 기업가정신은 어디서 나왔을까”하는 궁금이 컸습니다. 돈? 인재? 날씨? 사실 돈은 뉴욕을 중심으로 한 동부가 더 많겠죠. 또 기술력은 불과 50년 전만 하더라도 오대호 연안의 디트로이트나 시카고가 더 컸을 것 같아요. 실리콘밸리는 사실 날씨가 최고입니다. 쾌적한 지중해성 기후에 사시사철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유명한 스콧 맥켄지의 샌프란시스코라는 노랫말에는 “For those who come to San Francisco, summertime will be a love-in there….”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고요
그리고 이런 날씨는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기업가정신을 잉태한 하나의 정신세계를 만들어냅니다. 바로 1960년대 히피(Hippie) 문화인데요. 오늘은 그동안 정말 정말 한 번쯤은 정리해 드리고 싶었던 실리콘밸리의 기업가정신, 그리고 이를 지배하는 그 세계에 대해 알려드릴까 합니다.
왜냐하면? 헤이즈 밸리는 수많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몰리기 직전까지 반전과 자유를 갈망한 히피들의 성지였어요. 히피는 1960년대 기성의 사회 통념,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의 회복, 자연으로의 귀의 등을 주장하면서 탈사회적으로 행동하는 젊은이를 가리키는 용어인데요. 베트남 전쟁, 존 F. 케네디의 암살, 마틴 루서 킹 암살 등으로 수많은 청년이 좌절했고, 이에 따라 반문화(반체제 문화)가 꿈틀댔습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는 ‘꽃의 아이들‘로 불리는 히피들이 넘쳐났어요. 꽃의 힘인 Peace! 예술가, 지식인, 성적 소수자,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히피들이 자유분방함과 날씨를 찾아 몰려듭니다. 1967년에는 무료로 옷과 음식 물품을 나눠주던 디거스 프리스토어가, 1977년에는 예술가를 위한 숙소인 레드 빅토리안 B&B가 이 일대에 문을 연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지만 히피는 1980년대 들어 서서히 쇠퇴하고 이들이 떠난 자리를 스타트업들이 차지합니다. 이번에는 이들을 지원하는 단체들이 하나둘 생겨납니다. 엔지니어들에게 기금과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 해커파운데이션이 대표적인 곳이고요. 또 트웬티미션, 엠바시, 쉽야드, 노이즈브릿지처럼 청년들에게 사무 공간과 교류의 장, 그리고 숙소까지 제공하는 이른바 해커 하우스들이 줄지어 들어섭니다.
스탠퍼드대와 UC버클리의 컴퓨터사이언스 출신 인재를 영입하기에 제격이기 때문에 이 일대는 서서히 생성형 인공지능의 성지처럼 변신했어요. 벤처캐피탈인 NFX에 따르면, 전 세계 생성형 인공지능 스타트업 579곳 가운데 100여개가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어리어에 있어요. 오픈AI 외에도 대규모 데이터를 요약하는 프라이머, 학습 데이터를 생성하는 스케일AI, 기계학습 모델을 최적화하는 시그옵트, 자동화된 모델을 만들고 있는 데이터로봇, 자율주행 인공지능 스타트업 마이티AI 등.
크게 생각해 보기
제가 며칠 전 출간한 <챗GPT 전쟁: 실리콘밸리는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라는 책에 나온 내용 중 일부였는데요. 유명 인공지능 스타트업이 밀집하다 보니 블룸버그베타의 앰버 양 투자가는 이 일대를 ’세리브랄 밸리(Cerebral Valley)‘라고 별명 붙였습니다. 앞서 샘 올트먼은 오픈AI를 공동창업하면서 비영리스타트업으로 만들었는데요. 히피들이 자유와 반전을 꿈꾸며 사회 운동을 벌였듯이, 오픈AI 역시 비영리를 기치로 인류의 이익을 위해 인공지능을 연구하겠다고 선언이었습니다.
그는 강연 중에 이런 말을 했어요. “히피하면, 신비주의와 펑키함만 떠올리는데요. 사실 우리는 그 운동의 깊은 모호성을 정의해야합니다. 컴퓨터 산업을 일으킨 주인공은 바로 반문화를 일으킨 히피 입니다.”
반도체 산업 위에 히피라는 정신세계가 얽히면서 컴퓨터 산업이 꽃을 피웁니다. 1970년대 스티브 잡스를 포함해 히피의 정신세계를 가진 수많은 청년이 컴퓨터 산업에 속속 뛰어든 것이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전체 지구 카탈로그로 번역되는 Whole Earth Catalog라는 잡지가 있어요. 당시 스탠퍼드대에서 증강연구센터를 이끈 더글러스 엥겔바트라는 교수는 정말 유명한 분인데요. 이분이 만든 유명한 발명품은? 바로 컴퓨터 마우스입니다. 오늘날 마우스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컴퓨터를 할 수 있는 것 역시 이분 덕. 그리고 엥겔바트의 연구실에는 스튜어트 브랜드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브랜드는 히피 문화에 심취한 학생! 그래서 번쩍이는 조명 아래 록 음악을 즐기는 트립 페스티벌을 프로듀싱하고, 1만 명에 달하는 히피들을 초대하기도 한 독특한 이력도 있습니다.
브랜드는 1960년대에 이런 상상을 합니다. 당시에는 인공위성이 처음으로 발명됐을 때인데요. 아직 지구의 사진을 미국 정부가 공개한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지구라는 별의 사진을 직접 본다면? 사람들은 크게 달라질 거야. 지구가 얼마나 작은지, 그리고 우리가 국가가 아닌 왜 지구에 속해있는지 알게 될 거야” 그래서 창간한 것이 Whole Earth Catalog라는 잡지입니다. NASA가 지구 사진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한 일종의 작은 해방 운동이었습니다.
이후 이 잡지는 전문가들로부터 리뷰 형식의 기고를 실었어요. DIY, 캠핑, 텐트, 정원 가꾸기, 컴퓨터 등. 그리고 청년들한테 엄청 인기를 끌어요.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 역시 Whole Earth Catalog의 열렬한 팬이었어요. 잡스는 자라면서 자신이 입양됐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졌고, 정신세계를 깊이 탐구했습니다. 또 실제로 히피들이 운영하는 집단 사과 농장에서 농사도 지었고요. 동양철학을 공부하고자 인도 여행을 떠난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당시 부유한 히피들은 샌프란시스코를 넘어 인도로 가는게 유행이었다고 해요.
이후 그는 선불교에까지 깊이 심취했는데요. 스님이 되려다 캘리포니아에 와 있던 일본의 선승인 고분치노 오토가와를 만나 제자가 됐습니다. 이 스님은 1991년 로렌 파월과 잡스의 결혼식 때 주례를 서기도 했습니다. 애플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사명이 애플 컴퓨터였던 것 역시 이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데요. 사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사과(자연)와 컴퓨터(기술) 이런 뜻? 당시 일부 히피들은 컴퓨터가 발전하면 인간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었어요. 정부의 간섭에서 자유롭고, 정보 격차를 줄일 수 있고, 인간을 보다 평등하게 만드는 세상을 바꾸는 무기였기 때문입니다. 또 애플이 훗날 Focus 집중과 Simplicity 단순함을 강조한 이유 역시 이러한 히피 문화의 영향 때문입니다.
- 크게 생각해 보기
우리말로 하면? 집에서 직접 담근 컴퓨터 클럽? 고돈 프레치와 프레드 무어가 1975년 3월 설립한 이 클럽은 하나의 목적을 갖고 있었어요. “컴퓨터를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도록 하자”입니다. 당시 PC 개발에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히피가 뛰어든 이유는 컴퓨터의 발전이 곧 인간의 해방을 뜻했기 때문입니다.
홈브루 컴퓨터 클럽은 차고에서 처음 동호회를 시작했는데요. 훗날 애플의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은 “첫 번째 미팅 때 주고받은 아이디어와 영감으로 애플I을 발명할 수 있었다”고 회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컴퓨터를 사랑하는 덕진 사람들의 모임 정도밖에 안 됐지만, 약 50년이 흐른 지금 돌이켜 보면 PC 산업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참여자 명단만 보면,
- 애플 컴퓨터: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 크로멤코(주변장치): 해리 갈란드와 로저 멜렌
- 컴퓨터랜드(쇼핑몰): 토드 피셔
- 모로디자인(컴퓨터 액세서리): 조지 모로우
- 바이트숍(애플I을 처음 구매한 판매점): 폴 테렐
- 오스본컴퓨터(컴퓨터 소프트웨어): 애덤 오즈번
- 프로세서테크놀로지(컴퓨터 제조사): 밥 마샤
- 비디오게임의 아버지: 제리 로슨
특히 이들이 미라클레터처럼(?) 매번 보낸 홈브루 컴퓨터 클럽이라는 뉴스레터(실물 편지)는 실리콘밸리 기업가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뉴스레터를 통해 PC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를 엔지니어와 공유했을 뿐 아니라, 논쟁을 주도했습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이들에게 “저작권이나 내시고 취미 활동하시지”라고 적어 편지를 보냈는데요. 이름하여 호비스트들에게 보낸 공개서한! 이로 인해 PC가 어떤 방식으로 개발되어야 하는지 큰 논쟁이 일었습니다. 또 이곳 회원인 바이트숍을 창업한 폴 테렐은 애플 컴퓨터 50대를 구매하기도 했고요.
만약 미술에 조예가 없다면 퍼포먼스를 하거나, 농담하거나, 요리합니다. 이곳의 10대 원칙 중 하나가 ‘금전 거래 금지’이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선 무엇인가를 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한가지입니다. 나의 가치를 입증하고 이를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 아무리 돈이 많은 억만장자더라도 이 곳 만큼은 벌거숭이입니다. 자기 능력을 입증하고, 이를 거래로 교환해야 생존이 가능한 것이죠. 그리고 마지막 날 밤 캠프 한 가운데로 모입니다.
자신들이 만든 조형물을 주최 측이 만든 대형 사람인 맨(Man) 옆에 두고 불을 붙입니다. 그래서 페스티벌 이름이 버닝맨입니다. 인간이 맨손으로 태어난 뒤 무엇인가를 소유한다는 착각 속에 살다가 다시 놓아주는 과정을 불로 정화하는 것인데요. 여기서 ‘맨’은 타인을 의식하는 자아입니다. 우리는 늘 살면서 남을 의식합니다. “이번 달에는 승진을 꼭 해서 동기들 보다 인정을 더 받아야하는데...” “첫째가 대학에 붙어야 어깨 펴고 살 텐데.” 등등.
페스티벌은 이러한 속박을 불태워 버림으로서, 자연에서 태어나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한 인간 그 자체를 마주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빈손, 창조, 교환, 공동체, 생존, 태움이라는 연속되는 과정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 연습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버닝맨을 “인간에 이르는 해방구”라고 불러요. 버닝맨은 빅테크 기업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 구글: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창업 이후 버닝맨에 참여했는데요. 구글 검색 서비스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잠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감을 얻고 돌아갑니다. 구글이 오늘날 기념일 마다 로고가 바뀌는 이른바 ‘구글 두들’을 만들었고요. 또 CEO에 에릭 슈미츠 회장을 선정할 때도 이들 셋이 모두 버닝맨 팬이라 공감대가 컸다고 해요.
- 테슬라: 일론 머스크 CEO는 버닝맨에 참여한 뒤 솔라시티 솔라시티와 하이퍼루프를 구상했어요. 솔라시티는 태양광 에너지를 활용해 배터리를 충전하고, 다시 이를 활용하는 사업! 그리고 하이퍼루프는 에어건 형식 튜브 공력시험장치로 차세대 기차로 꼽히는 이동 수단인데요. 머스크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버닝맨이 곧 실리콘밸리다.”
올해 버닝맨은 8월27일부터 9월4일까지 열리는데요. 코로나 때문에 참여 인원이 크게 줄었다가 올해는 좀 늘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히피들이 만든 반문화의 상징인 버닝맨이 실리콘밸리에서 통하는 이유는 단 하나 아닐까 싶어요. 물건에 대한 비즈니스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창조물에 대한 그 가치를 배우는 것!
하지만 분명한 것은, 히피들이 추구한 기존 체제에 대한 반문화와 각성의 정신, 공동체 의식, 자연 예찬은 실리콘밸리의 기업가정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천연 재료를 사용하고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벤앤제리스 아이스크림을 창업한 벤 코헨, 친환경 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를 설립한 이본 쉬나르의 기업가정신을 보면 무릎을 치게 됩니다. 왜 실리콘밸리 기업가정신 깊숙이 히피 문화가 흐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히피 출신 CEO들은 비즈니스를 단순히 수익의 원천이 아닌,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 그 자체로 생각했는데요. 벤앤제리스 아이스크림을 창업한 벤 코헨은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 “비즈니스는 점진적 변화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가치에 이끌린다면 비즈니스에 비용이 드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에 도움이 됩니다.”
- “Business can be a source of progressive change.”“When you are led by values, it doesn‘t cost your business, it helps your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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