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아닌 권고인데 뭐하러 지켜요?”… 헛바퀴 도는 ‘친환경차 구매 목표제’
제출 기업 적어 산업부 4월 말로 2개월 연장
이행 결과 공표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불가
지난달 뒤늦게 ‘미이행 기업 공개’ 법안 발의
정부가 친환경차 보급 활성화를 위해 국내 대기업과 렌터카·택시·버스·화물차 사업자 등을 대상으로 작년부터 시행 중인 ‘환경친화적 자동차 구매 목표제’가 기업의 비협조로 1년 만에 난항을 겪고 있다. 정부는 대상 기업에 지난해 친환경차 구매 실적을 올해 2월까지 제출하라고 했지만, 제출 기한을 지키지 않은 업체가 상당수였다. 정부는 할 수 없이 제출 기한을 이달 말까지 2개월 연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친환경차 구매 목표제가 권고 수준의 제도라 기업이 할당량을 지키지 않아도 정부로선 제재할 방법이 없어서 생긴 일이다. 정부가 미이행 기업 명단을 공표할 법적 근거도 없다. 제도 실효성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잇따르자 국회는 최근 기업별 친환경차 구매 실적 결과를 공표할 수 있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 구매 실적 낸 기업 적어…제출 기한 2월서 4월로 연장
26일 정부·재계 등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환경친화적 자동차 구매 목표제를 처음 시행하면서 2022년 친환경차 구매 실적을 2023년 2월 말까지 정부에 제출하도록 했다. 정부는 대상 기업이 성적표를 다 제출하면 올해 3월 중 운영위원회를 꾸려 업체별 실적을 검토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지난 2월까지 이행 실적을 제출한 기업은 많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산업부는 제출 기한을 4월 28일까지 2개월 연장한다고 통보했다. 3월에 개최하려던 운영위원회도 두 달 미뤄 5월 중 열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기업들이 이달 안에는 (구매 실적을) 제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친환경차 구매 목표제는 문재인 정부가 2021년 7월 27일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친환경자동차법)’ 개정안을 공포하면서 시작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자산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의 계열사에 속하는 2612개 기업(2021년 기준)은 2022년부터 업무용 차량을 살 때 ‘친환경차 22%, 전기차·수소차 13%’ 비중을 지켜야 한다는 게 이 제도의 핵심이다.
가령 구매 목표제 대상 업체인 A사가 올해 차량 100대를 살 계획이라면 일단 13대는 무조건 전기차·수소차를 구매하고, 나머지 9대는 전기차·수소차나 하이브리드차 가운데 선택해야 하는 식이다. 정부는 대기업뿐 아니라 비교적 규모가 큰 렌터카·택시·버스·화물차 사업자도 친환경차 구매 목표제 대상 기업에 포함했다.
당시 산업부가 규제 시행에 따른 비용 편익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친환경차를 차량 수명만큼 운영할 경우 기업의 실제 금전적 부담은 47억730만원(연간 균등 순비용 기준) 정도가 될 것이라고 예상됐다. 이때 일반 국민이 얻을 수 있는 환경 편익은 186억4000만원으로 계산됐다. 정부가 기업의 비용 부담 가중에도 친환경차 구매 목표제를 도입한 이유다.
◇ ‘친환경차 구매 미이행 기업 공개’ 법안 발의
기업들이 친환경차 구매 실적 제출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건 이 제도가 권고 수준일 뿐 법적 강제성을 지니고 있진 않아서다. 산업부는 작년 3월 친환경차 구매 목표제 대상 기업 명단을 공고하면서 “내년(2023년) 3월 중 업체별 실적 평가 결과를 공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산업부가 기업들의 제도 이행 결과를 공표할 법적 근거는 없는 상황이다.
기업들은 탄소중립이라는 대의(大義)와 정부의 구매 목표제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최근 어려워진 대내외 경영 여건을 고려해 친환경차 도입 스케줄을 짤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한 경제단체의 고위 관계자는 “이미 수년 전부터 재계 트렌드 자체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였고, 친환경 경영 강화에 반대할 기업은 없다”며 “다만 현재 경기 상황이 녹록지 않은 만큼 (친환경차 구매 목표 달성을) 우선순위에 두긴 힘들다”고 했다.
“기업으로선 제도 취지가 재계의 친환경 트렌드와 맞아 호응할 뿐 정부가 제시한 구매 비율을 반드시 맞출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 등 11명은 지난달 24일 친환경차 구매 미이행 기업 공개를 강제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친환경자동차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 의원 등은 “공공기관은 친환경차 구매 비율을 이행하지 않은 기관 명단을 공표할 수 있는데, 대규모 차량 수요자(기업)는 미이행 기업 명단 공표와 같은 독려 수단이 부재해 제도의 실효성 확보에 한계가 있다”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한편 산업부는 지난 18일 ‘2023년도 환경친화적 자동차 구매 목표제 시행계획’과 친환경차 구매 대상 기업 명단을 공고했다. 직전 사업연도 말 현재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31조 제1항에 따른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속하는 기업 2897곳이 친환경차 구매 대상에 포함됐다. 주요 기업을 보면 SK 계열사가 199개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카카오 127개사, 한화 96개사, GS 95개사, 롯데 91개사, CJ 86개사 등이 따랐다. 삼성·LG·현대차는 각각 63개사·63개사·59개사가 구매 대상에 올랐다.
정부는 기업의 친환경차 구매를 촉진하고자 전체 승용·화물차에 지원하는 전기차 구매 보조금의 최소 10% 이상을 친환경차 구매 목표제 대상 기업에 별도 배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또 산업부 전기차 충전설치보조 사업 대상에 구매 목표제 기업을 추가하고, 사업장 내 전용 충전기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산업부는 “직전 사업연도에 순손실이 발생했거나 경영 악화를 겪는 기업의 경우 친환경차 구매 목표를 2분의 1 범위에서 경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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