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까지 띄운 尹대통령 넷플릭스 투자, 과연 성과인가
'4년간 3조3000억' 유치…기존 투자 연 8000억 추산
글로벌 OTT 넷플릭스와 한국 산업계 현안 언급 없어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최고경영자(CEO)를 만난 이후 넷플릭스가 한국에 4년간 25억 달러, 약 3조3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상당수 언론이 윤 대통령의 '투자 유치' 성과를 전하고 있는데, 그간 넷플릭스가 한국 투자를 확대해 온 추세와 큰 차이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윤 대통령은 미국 현지에서 24일 글로벌기업 최고 경영진 접견을 가진 뒤 서랜도스 대표의 투자 결정을 알렸다. 이 자리에서 서랜도스 대표는 “넷플릭스가 이번에 25억 달러를 한국에 투자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서 앞으로 4년간 한국 드라마, 영화 그리고 리얼리티쇼의 창작을 도울 것”이라며 “이 금액은 저희가 한국에 진출한 2016년부터 작년까지 투자한 총금액의 2배에 달하는 액수”라고 밝혔다. 넷플릭스는 이날 투자 관련 설명과 넷플릭스의 리더십 면면, K-콘텐츠 수출전략 등 5건의 홍보 보도자료를 냈다.
이튿날인 26일 주요 매체들은 윤 대통령의 투자유치 성과를 띄웠다. 국민일보는 1면 머리에 배치한 <尹, 방미 이틀 만에 6조 투자유치 성과> 기사에서 대통령실 관계자가 “넷플릭스 쪽에 먼저 제안했다”면서 “(윤 대통령과 서랜도스 CEO가)중간에 편지도 주고 받았고, 사전에 대통령 내외와 넷플릭스 최고 경영진 사이에 어느 정도 교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서울신문 <넷플릭스와 편지 교환하며 교감 '3조원 투자 유치' 석 달 공들였다>, 세계일보 <尹·넷플릭스 CEO 3개월 막후 조율 성과 K콘텐츠 '날개'>, 머니투데이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 尹, 넷플릭스 '3.3조원' 투자 유치>를 비롯한 다수 매체가 성과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경향신문은 “즉 지난해 추세만 유지해도 4년간 3조2000억 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지기 때문에 대통령실의 이번 투자 합의는 그리 새로운 것이 없다는 반박도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도 “이번 투자 규모는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전하는 한편 “최근 광폭 행보를 보이는 김건희 여사가 현안과 관련해 보고까지 받는다는 것은 눈에 띄는 대목”이라고 짚었다.
'4년간 3조3000억' 유치…기존 투자도 연 1조가량
윤 대통령 접견 후 넷플릭스의 투자 발표는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의 파격 성과일까, '새로운 것이 없는' 투자 발표일까.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에 투자를 늘려온 추세에 비춰보면 놀라울 수준은 아니라는 판단이 가능하다.
넷플릭스는 최근 연 평균 7000~8000억 원가량의 투자 계획을 밝혀왔다. 2021년 11월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은 한국 기자들을 만나 “2015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 콘텐츠에 7700억 원을 투자했다. 올 한 해에만 약 55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22년 1월 강동한 넷플릭스 한국콘텐츠총괄VP는 비대면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에서 15개 오리지널을 발표한 작년에만 5000억 원을 투자했다”며 “올해는 25개를 발표하는 만큼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올해 넷플릭스는 약 28개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공개할 예정이다.
이처럼 넷플릭스의 공식 발표에 근거해 추산하면 2021~2023년의 연간 투자규모는 연평균적으로 최소 7100억 원에서 7800억 원가량이다. 한국 콘텐츠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는 추세를 감안하면 4년간 3조3000억 원 투자가 자연스럽다는 시각도 무리하지 않은 셈이다.
글로벌 OTT 넷플릭스와 한국 산업계 현안 언급 없어
한국 대통령이 넷플릭스 CEO를 만난 자리가 '투자유치 홍보의 장'으로 끝난 데 대한 아쉬움도 나온다.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가진 글로벌 OTT 플랫폼 CEO와 국내 산업계가 연관된 현안에 대해 일국 대통령으로서 메시지를 던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재상영 분배금' '창작자 권리 보장' 문제다. 한국과 달리 미국, 유럽·남미권 일부 국가에선 해당 국가 넷플릭스로 서비스되는 콘텐츠 창작자에게 이를 지급하고 있다. 넷플릭스 투자 콘텐츠의 IP 독점 기간을 3년으로 제한한 프랑스처럼, 창작자 권리를 보장하는 방안을 확대해가야 한다는 논의도 지속되고 있다.
국내의 한 OTT 연구자는 “대통령이 넷플릭스가 한국 투자로 인해 글로벌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에 상응하는 일정 정도의 배려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실질적으로 국내 산업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참모진이 챙기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망 이용료 논란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검토해 달라는 이야기를 대통령이 했다면 그만큼 힘이 실렸을 것”이라고 했다. SK브로드밴드(SKB)는 2019년부터 현재까지 넷플릭스의 망 사용료 지급을 두고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김건희 여사는 무슨 자격으로 '보고' 받았나 논란도
김건희 여사 역할에 대한 보도들도 눈에 띈다. “대규모 투자를 타진하는 과정에서 문화 콘텐츠에 관심이 있는 김건희 여사도 역할을 했다는 설명”(서울신문), “윤 대통령뿐 아니라 김건희 여사가 투자 유치에 적극 관여했다는 설명”(세계일보), “전날 넷플릭스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약속받은 배경엔 김건희 여사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한국일보) 등의 대통령실 설명을 전한 대목이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가 벨라 바자리아 넷플릭스 최고콘텐츠책임자(CCO)를 만났다며 “한국 콘텐츠 제작 및 한국 문화의 해외 홍보 활성화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별도 브리핑했다. 미국 현지 취재진에게 대통령실 관계자는 김 여사 역할에 대해 “콘텐츠에 관심이 많았던 영부인에게도 보고드린 적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법적 지위 없는 대통령 배우자가 의전 성격의 행사 참여를 넘어 보고를 받고 관여하고 있다는 의혹을 부른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은 25일 이를 “국정개입”이라 비판했다. 박수현 전 청와대 소통수석은 26일 MBC라디오(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김건희 여사가 개인적으로 그런 문제에 관심이 특별히 있을 수 있어서 이례적으로 보고를 했을 수는 있다고 본다”면서도 “마치 김건희 여사가 국정 전반에 (관여한다는) 오해를 더 강화시킬 수 있는 표현”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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