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옵션급만 셋, 다음 시즌이 더 기대되는 캐롯
올시즌 고양 캐롯의 돌풍은 농구 팬의 뜨거운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얇은 선수층, 아쉬운 밸런스에도 불구하고 김승기 감독의 지휘아래 극한의 스몰볼을 보여줬고 4강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어려운 팀사정과 맞물려 투혼을 발휘하는 선수단의 모습에 ‘감동 캐롯’이라는 말까지 쏟아져나오며 신생팀 이상의 존재감을 과시했다는 평가다.
외부적인 문제로 인해 캐롯이 다음 시즌에도 정상적으로 리그에 참여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산적해있는 경제적인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않고 있으며 무수한 루머만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부분과는 별개로 현재 선수단만 그대로 유지된다면 다음 시즌에는 올시즌 이상의 성적도 기대되는 것이 사실이다.
정규시즌에서 캐롯 특공대를 이끌었던 대장은 저격수 전성현(32‧188.6cm)이었다. 안양 KGC시절부터 리그 최고의 3점 슈터로 급부상했던 그는 캐롯으로 둥지를 옮기고나서는 한단계 높은 수준의 퍼포먼스를 뽐냈다. 50경기에서 평균 17.62득점(전체 7위, 국내 2위), 2.62어시스트, 1.94리바운드, 1.06스틸을 기록했다. 장기인 3점슛은 경기당 3.42개를 성공시켰으며 성공률 역시 37.50%에 달했다.
달팽이관 이상에 따른 돌발성 난청으로 인해 후반기 페이스가 급락하지 않았다면 더 나은 성적도 가능했을 것이 분명하다. 정규시즌 MVP 역시 중반기까지는 전성현이 가장 유력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자신에게 온통 수비가 집중된 상황에서 역대급 3점 퍼레이드를 이어나갔다는 점이다.
모든 상대팀이 대놓고 자신을 막는 상황에서도 더블팀, 트리플팀을 뚫고 터프샷을 던질 때가 많았다는 점에서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어지간히 3점슛을 잘 던져도 소환되지않던 문경은, 조성원이 계속해서 언급됐던 이유다. 한때 외국인선수 포함 득점 2위까지 치고올라간 적도 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프로 2년차 이정현(23‧187cm)이 날았다. 이정현은 정규리그 52경기에서 평균 15.02득점, 4.23어시스트, 2.60리바운드, 1.69스틸을 기록하며 ‘될성싶은 떡잎’임을 기대하게했다. 전성현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던 플레이오프에서는 제대로 날았다. 김감독은 ‘전성현이 없어도 이정현이 있다’며 무한신뢰를 드러냈고 이정현은 거기에 제대로 화답했다.
정상적인 전력이 아닌 캐롯의 플레이오프 전술은 단순했다. 이정현과 외국인선수 디드릭 로슨(25‧201cm)에게 대부분의 공격이 집중되는 가운데 남은 선수들은 수비 등 궂은 일에 집중하면서 외곽에서 찬스가 나면 3점슛을 던졌다. 특별할 것 없는 수였지만 6강전에서 현대모비스는 알면서도 당했다. KGC 또한 단단히 준비했음에도 한경기를 내준 바 있다.
팀 성적으로 인해 갈렸을뿐 플레이오프 모드 이정현은 SK 김선형 못지않았다. 틈만나면 돌파를 시도하며 수비를 찢었고 자신과 사이즈가 비슷한 선수와 매치업이 되면 탄탄한 몸을 앞세운 포스트업으로 밀어붙였다. 조금의 빈틈만 보이면 망설이지않고 미드레인지, 3점슛을 꽃아넣었으며 그 과정에서 동료들에게 질좋은 패스까지 뿌려주었다. ‘양동근, 김선형의 뒤를 이을 듀얼가드가 탄생했다’는 말이 나오고있는 이유다.
올시즌 돋보였던 외국인선수로는 KGC ‘플라잉 스팸맨’ 오마리 스펠맨(25‧206cm)과 SK ‘잠실 워니’ 자밀 워니(29‧199cm)를 필두로 LG ‘이집트왕자’ 아셈 마레이(30‧206cm), 현대모비스 ‘울산 헐크’ 게이지 프림(23‧205cm) 등이 있다. 그러한 가운데 로슨 또한 그들에 못지않은 활약을 펼쳤다.
캐릭터 자체가 조용하고 플레이의 화려함도 상대적으로 덜한 관계로 덜 부각되었을 뿐 캐롯 4강 돌풍의 주역으로 빼어난 경기력을 보이며 ‘소리없이 강하다’는 극찬을 받은 바 있다. 정규시즌 51경기에서 평균 18.73득점(전체 3위), 3.31어시스트, 9.53리바운드, 1.24스틸, 1.08블록슛을 기록했으며 플레이오프에서는 이정현과 함께 강력한 원투펀치로 펄펄 날았다.
플레이오프에서의 대활약을 지켜본 팬들 사이에서 ‘로슨이 저정도였나? 워니, 스펠맨, 마레이 부럽지않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로슨은 꾸준함과 폭발력을 겸비한 득점 머신이다. 기본적으로 슈팅력이 안정된 선수인지라 한번 불붙으면 내외곽을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상대 진영을 폭격한다.
특히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가 골밑을 뚫어내는 돌파가 위력적이다.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파고 들어가 삽시간에 수비진을 벗겨내는 것을 비롯 순간적인 스핀무브를 통해 상대의 타이밍을 뺏어버린다. 거기에 더해 속공시 함께 달려주며 받아먹는 능력 또한 탁월하다. 특유의 순발력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골밑에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매치업 상대가 자신보다 작거나 힘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포스트업을 시도하며 수비의 균열을 유도한다. 속공, 지공 상황에서 모두 위력적인 공격수라고 할 수 있다. 공격 옵션이 다양한 선수답게 상대팀에서 돌파에만 신경 쓴다 싶으면 미들슛, 3점슛 등을 통해 좁아진 공간을 다시 넓혀버린다.
로슨의 최대 강점은 득점력 좋은 에이스 유형이면서도 적당히 이타적이다는 사실이다. 득점을 특기로 하는 상당수 선수들 중에는 수비에 막혔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공격을 시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리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욕심을 내다보니 상대 수비에 막혀 역습을 당하기 일쑤다. 로슨은 다르다. 득점을 즐기는 타입인 것은 맞지만 동료들에게 찬스가 나면 미련 없이 공을 빼준다.
BQ가 좋은 선수로 평가받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로슨의 패싱게임은 상당한 수준이다. 포인트 포워드라 불리는 선수들처럼 코트 전체를 넓게 보며 지휘관 역할까지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평균 이상으로 시야가 넓다. 특히 자신이 공격을 가져가면서도 동료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시야가 좋은지라 킥아웃패스는 물론 근거리에서 살짝살짝 빼주는 패스가 매우 날카롭다.
화려함보다는 쉽게 쉽게 내준다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부분은 플레이오프에서 캐롯이 극단적인 스몰볼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정현이 성능좋은 경주용 자동차라면 로슨은 관제탑같은 역할을 해줬다. 로슨이 이정현과 원투펀치를 가동시켜나가는 가운데 김강선(36‧190cm), 한호빈(31‧180cm)은 외곽에서 지원군으로, 김진유(28‧188cm)는 수비 등 궂은 일에서 몸을 사리지않는 허슬을 보여주며 복병 캐롯이 완성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 캐롯의 가장 고민거리는 팀 존속여부 및 그 바탕에 깔린 경제적인 문제다. 만약 캐롯이 외부적인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다면 경기력적인 부분에서는 올시즌 이상도 가능할 것이다는 평가다. 전성현은 정규시즌 중반까지 캐롯은 물론 리그를 대표하는 강력한 에이스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이정현이 완벽하게 눈을 떴다. 이제는 누가 더 낫다라고 판단하기 어려울만큼 둘다 높은 레벨로 스텝업한지라 최고 수준의 토종 원투펀치가 가능해졌다. 거기에 재계약여부를 지켜봐야겠지만 로슨은 누구보다도 안정적인 기량을 갖추고있는 외국인선수이며 캐롯시스템과도 잘맞는다. 1옵션급 기량을 가진 셋이 풀전력으로 펼쳐보일 다음시즌 캐롯의 화력쇼가 기대되는 이유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유용우 기자, 문복주 기자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