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가르치기 어렵지만 꼭 해야 하는 자녀교육 [박세환의 빡센경제]
아이들이 재테크를 배우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대부분의 학교에선 투자를 통해 목돈 만드는 법이나 지출계획을 통해 돈을 관리하는 법 등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부모가 일찍 나서서 자녀에게 경제교육을 해주고 싶지만 결코 쉽지 않다.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부모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경제교육이야말로 부모가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하기 힘든 것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필자가 10년 전 증권부 기자로 일할 때 일이다. 국내 한 자산운용사 대표와의 인터뷰 말미에 두 자녀를 둔 부모로서 자녀 경제교육법에 관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자산운용사 대표는 많은 부모가 자녀의 경제교육을 고민하고 있다며, 한 가지 방법을 알려줬다.
자녀에게 ‘100만원이 생긴다면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서를 작성해보게 하라는 것이었다. 한 번만 하는 게 아니라 1~3년에 한 번씩 하다 보면, 우리 아이의 돈에 대한 가치관과 경제관념, 미래에 대한 생각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이었다.
필자는 그해 두 자녀에게 ‘100만원이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큰아이는 A4용지에 지출목록을 진지하게 써내려 갔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둘째는 100만원을 진짜로 줄 거냐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두 아이 모두 아빠에게 얼마, 엄마에게 얼마를 줄 건지 맨 위에 적었다. 그동안 갖고 싶었던 것과 먹고 싶었던 것도 사겠다며, 1000~1만원 단위로 하나하나 빼곡히 써내려 갔다. 지출 단위가 작다 보니 A4용지 앞뒤를 다 채우고도 모자랐다. 둘째는 한 장 더 썼다.
두 해가 지나 똑같은 질문을 했을 때 중학교 2학년인 큰아이는 A4용지 절반이면 충분했다. 저축 60만원과 갖고 싶었던 지출항목 6~7가지로 정리했다. 둘째는 단위가 커졌을 뿐 지출항목으로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 고등학교 2학년이 된 큰아이에게서 큰 변화가 감지됐다. 큰아이가 쓴 것은 지출계획서라기보다는 투자계획서였다. 저축과 주식투자의 비중이 6대 4를 이뤘다. 중학교 2학년이던 둘째 역시 저축과 미래를 위한 계획서로 내용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는 대학생이 된 두 자녀가 직접 주식투자를 한다. 큰아이는 성장기업을 중심으로 안정적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한편 둘째는 경제이슈 테마를 활용한 투자를 하고 있다. 이제는 밥상머리에서 자신의 투자기업 정보를 부모와 함께 나누기도 한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I was born with a silver spoon in her mouth·부유한 집 태생을 이르는 표현)’는 영어 속담에서 유래한 ‘금수저’ ‘흙수저’. 부모의 재력이 자녀 성공의 필수조건이라는, 일명 ‘수저계급론’이 우리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끊어졌다고들 한다.
그렇다고 우리 자녀에게 언제까지 끊어진 사다리만을 탓하게 할 것인가. 그래서 필요한 게 경제교육이다. 현명한 경제교육은 새로운 ‘희망의 사다리’가 될 수 있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용돈을 스스로 관리하고 절약해 저축하는 습관을 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년이 돼서도 돈을 쓰임새에 맞게 지출하고 미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진짜 부자들은 자녀에 대한 가정교육 중 일찍부터 경제교육을 강조한다.
세계적인 부호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웨어(MS) 공동 창업자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의 공통점은 자녀가 어릴 적부터 용돈을 매개로 절약과 검소한 생활, 독립적인 경제관과 자립심을 키워나갈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게이츠는 자녀에게 매주 용돈을 1달러만 줬다. 대신 집안일을 할 때마다 추가로 용돈을 줬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용돈을 관리했던 버핏은 돈을 버는 것보다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알려줄 요량으로 자녀에게는 용돈을 넉넉하지 않게 준 것으로 유명하다. 10대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용돈관리장을 썼던 록펠러 역시 자녀에게 일할 때마다 용돈을 주고 스스로 관리하게 했다.
자녀에게 용돈을 주는 목적은 아이가 스스로 판단해 돈을 알맞게 쓰고, 나아가 소득과 지출의 균형을 이루는 소비습관을 계획하도록 유도하는 데에 있다. 돈을 쓸지 말지 선택하는 과정, 어디에 쓸지 계획하고 실행하며 바르게 썼는지 평가하는 모든 과정을 아이 스스로 하면서 자기주도적으로 경제관념을 키울 수 있다.
용돈교육은 가능하면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 경제교육에서 용돈을 정기적으로 받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갖는 돈에 대한 가치판단이 다르기 때문이다. 숫자에 대한 관념을 갖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1학년 때가 적합하지만 미취학시기라도 아이가 1000원 단위 개념을 알면 시작할 수 있다고 재테크전문가는 조언한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는 용돈액수보다 중요한 것이 그 돈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용돈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부모의 역할이다. 부모가 자녀와 함께 용돈교육을 시작하되, 처음 시작할 때 대화를 통해 한계를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 부모가 틈틈이 자녀의 용돈을 점검하면서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용돈을 어디에 얼마나 썼는지 물어보고 조언하면 좋다. 이때 자녀가 계획 없이 물건을 샀다고 무조건 잔소리하는 것은 금물이다. 혼내기에 앞서 왜 필요하다고 판단했는지, 사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용돈교육을 하면서 투자의 효능감을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 요즘은 초등학교 3학년만 돼도 주식이나 비트코인 투자에 흥미를 가진다. 직접 통장을 개설하고 하이브나 SM, JYP엔터테인먼트 등 엔터주에 직접 투자하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주의해야 할 점은 아이의 주식투자는 성인의 주식투자와는 다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단기 매매로 당장 이익을 얻으려 하지 말고, 10~20년 후 아이가 성인이 돼서도 건실한 기업을 찾고 그 미래 가치에 장기 투자한다는 관점에서 살펴야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이런저런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는 하나일 것이다. 성인이 돼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자율성과 창의력, 행동력, 자신감, 사고력 등 다양한 것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금융 등 경제관념이 중요하다.
조선일보가 지난 2021년 한국금융교육학회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 의뢰해 중·고교생 149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학생들이 금융지식을 얻는 주요 경로(복수 응답)에서 ‘부모’가 56%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어 ▷유튜브 39% ▷인터넷 사이트 38% ▷TV 38% ▷학교 20% ▷신문 17% ▷친구 7% ▷없다 14%였다.
이처럼 아이들이 금융 등 경제지식을 접하는 매개체가 학교보다는 집이고, 신문보다는 유튜브나 인터넷 사이트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경제교육은 부모가 선제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TV 뉴스를 보거나 신문을 같이 보면서 경제의 흐름을 스스로 파악하는 것이다. 경제·사회 현상에 관심을 두면서 자연스럽게 경제의 흐름이나 원칙에 대해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가족과 대화시간에 경제에 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을 같이 이야기하면서 사고력을 키우고 이를 통해 기업이 움직이는 구조, 부자들의 시스템 등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진짜 부자는 일반인과 달리 어린 자녀도 자연스럽게 투자를 경험하면서 경제와 금융을 이해할 수 있는 가정환경을 만들어준다는 점이 특징이다. 버핏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돈에 대해 좋은 습관을 갖게 된 것은 아버지가 그런 습관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버핏은 주식중개인이었던 아버지에게 주식투자를 배우고, 열한 살 때 처음 주식을 사기도 했다.
자녀의 용돈관리나 소비습관은 대개 부모를 따라간다. 부모가 소비지향적이면 자녀의 씀씀이도 크고, 부모가 절약을 실천하면 자녀도 소비에 적극적이지 않다. 부모가 착한 소비를 실천한다면 자녀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자녀의 용돈과 경제교육에 앞서 자신의 저축과 소비습관을 점검하는 것도 필요하다. 자녀의 용돈교육에 동참하기로 했다면 아이들 앞에서 안 보는 물건을 단호하게 정리하고 가정의 재정 현황을 자녀에게 알려주는 한편 가계부를 적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먼저다.
유대인의 자녀 경제교육법 중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낚는 법을 가르치라’는 말이 있다. 조지 소로스, 마크 저커버그 등 성공한 투자가나 사업가 중에는 유대인이 많다. 미국 인구에서 유대인의 비중은 2%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미국 국민 총소득의 15%에 달하는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어떻게 이런 막강한 힘을 기를 수 있었을까.
유대인은 열세 살 때 성인식을 치르는데 이때 많은 친척이 모여 성년축하금을 전달한다. 유대인들은 이 자금을 자녀가 직접 투자하게 해 이익을 보기도, 손실을 보기도 하면서 경제 경험을 쌓게 한다. 자연스레 성년이 될 때까지 약 7년간 돈에 대한 공부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우리는 자녀에게 물고기를 잡아줄 것인가, 아니면 낚는 법을 알려줄 것인가? ‘내 자녀에게 경제관념을 심어주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자녀에게 돈을 어떻게 현명하게 쓰는지 가르쳐주기보다 원하는 것을 사주면서 그저 돈으로 욕구를 충족시키는 습관만을 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면서 자녀에게 성인이 된 후 자립심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부모의 무책임한 욕심일 뿐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부자 부모를 둔 자녀는 평범한 부모를 둔 자녀보다 경제관념이 평균 10년이나 늦어진다고 한다. 부자 부모의 돈이 오히려 자녀에게 독이 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가 어린 시절에는 ‘넉넉한 부족함’을 줘야 한다. 성인이 된 이후엔 섣부른 지원보다는 자녀의 재정 상태에 대한 부모의 ‘절대적 무관심’이 필요하다.
당신의 자녀는 커서도 부모의 돈주머니 속에 안주하는 ‘캥거루족’이 될 수도 있고, 무조건 아끼기만 하는 ‘스크루지족’이 될 수도 있으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존경받는 부자’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당신의 자녀교육이다.
경제교육은 삶의 질을 바꿀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문제다. 자녀의 재정적 독립과 정신적 자립을 위해서 작은 것부터 교육하고, 충분히 연습시켜야 한다.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이 성인이 돼서도 노후 준비도 철저하게 할 수 있다.
greg@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노홍철도 당할 뻔…"주가조작 세력 수차례 유혹 모두 거절"
- '괴사성 췌장염' 개그맨 송필근 "30㎏ 감량하고 죽다 살아왔다"
- '음주운전 논란' 이루 '운전자 바꿔치기' 혐의로 기소…법정 선다
- “샤워장면 생중계” 중국 女인플루언서 ‘방송사고’ 발칵, 무슨 일?
- 임창정 "빚 60억 생겼다"…또 다른 연예인도 "주가조작 피해"
- 암투병 아내 숨지게 하고 자신은 극단적 선택…‘장기간 간병’
- 학폭 인정하면 軍 잘릴라…‘표예림 가해자’ 친구들 사과까지 막았나
- 女승무원 앞에서 ‘신체노출’ 20대男 정체, BTS 피처링 한 美 래퍼였다
- ‘40세’ 한혜진, 간절한 소망…“내년에 시집가게 해주세요”
- “한 마리 가격이 100만원!” 그래도 못 찾은 이 벌레, 참 흔했는데 [지구, 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