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가짜뉴스' 때리기 전쟁 시작했다
야당 땐 "현행법으로 충분하다"더니 별도 대응계획 마련
방통위 팩트체크사업 비판하더니 문체부 통해 유사 사업
기준 모호한 '가짜뉴스', 비판적 언론에 대응 가능성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여당 인사들의 '가짜뉴스'(허위정보) 성토는 발언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각 부처와 대통령 직속 기구에서 허위정보 및 표현물 규제와 대응 계획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체부·방통위·행안부·국민통합위, 동시다발적 대응
윤석열 정부는 '가짜뉴스'(허위정보)와 포털 등에 대한 '규제 도입' '대응 시스템 구축' '자율규제 강화' 등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0일 <문체부, '악성정보 전염병' 가짜뉴스 퇴치 전면 강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 가짜뉴스 신고·상담센터 설치 △AI 가짜뉴스 감지시스템 개발 △ 정부 소통채널을 통한 정부대응 시스템 구축 등을 '가짜뉴스 퇴치' 과제로 제시했다.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산하 '팬덤과 민주주의 특별위원회'는 지난 7일 '가짜뉴스' 대응 방안으로 △가짜뉴스 피해구제 원스톱 대응 포털 구축 △개인 유튜버 등 미디어 플랫폼 사용자 언론중재 조정 대상에 추가 △가짜뉴스로 수익 창출을 방지하는 자율 공동 규제모델 구축 등을 제시했다.
방통위는 2023년 업무계획에 포털기사 배열노출 기준을 검증하는 알고리즘투명성위원회 법적 기구 설치 검토 및 추진과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 법제화 검토 및 추진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의 일환이다.
행정안전부는 공익사업 지원의 일환으로 보수언론단체 공정언론국민연대의 '공영방송 가짜뉴스 팩트체크 사업'에 3100만 원을 지원한다. 미디어스는 공정언론국민연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이사회 회의록에 '행정안전부 팩트체크 사업 실행안 심의' 안건을 처리한 사실을 보도했다.
팩트체크 사업 비판했던 여권, 유사 사업 부활
팩트체크 관련 사업은 문재인 정부 방송통신위원회의 팩트체크 사업(인터넷 환경의 신뢰도 기반 조성사업)과 유사하다. 문재인 정부 당시엔 국민의힘이 지속적으로 비판하며 예산을 대폭 삭감했고 그 여파로 2023년 사업이 폐지했는데, 유사한 사업을 다시 만드는 상황이다.
특히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 방통위가 민간 팩트체크기구 팩트체크넷 운영비를 지원해온 사실을 비판했다. 2021년 11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민의힘 의원들은 성명을 통해 “정권연장을 위한 도구 팩트체크넷에 국민혈세를 퍼부었다”며 예산 전액 삭감을 촉구했다. 행정안전부가 보수언론단체에 팩트체크 예산을 지원한 사업도 같은 비판이 가능하지만 여권에선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문체부가 제시한 'AI 가짜뉴스 감지시스템 개발' 사업은 인공지능 자동화 팩트체크를 시범 도입해 '가짜뉴스'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역시 방통위 팩트체크 사업의 일환으로 올해 예산이 부족해 폐지된 'AI활용 자동화 팩트체크 시스템' 사업과 판박이다.
방통위 패싱하고 문체부·언론재단이 허위정보 대응?
사업 추진 부처와 기구의 적절성에 논란이 있다. 윤석열 정부에선 문화체육관광부와 산하 기구인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언론재단은 신문법에 따라 언론진흥 사업과 관련 조사·연구·교육·연수 등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기구 성격에 맞지 않다. 언론재단은 '문체부 장관의 위탁' 사업을 할 수 있지만 주된 사업 분야가 아닌 데다 전례가 없는 사업을 추진해 논란이 불가피하다.
그동안 허위정보 관련 대응을 방통위가 전담했다는 점에서 방통위 '패싱'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전 정부에서 임명한 한상혁 방통위원장이 사퇴하지 않은 상황에서 문체부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언론재단 출신의 한 학계 인사는 “언론재단에 가짜뉴스를 신고하고 이를 상담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문체부와 언론재단은 언론 진흥을 위한 곳이지 규제가 담당하는 곳이 아니다”라며 “언론사가 생산한 뉴스 중 가짜뉴스는 어떻게 규정할 수 있나. 언론 자유를 훼손하고 위헌일 수밖에 없는 조치를 문체부와 언론재단 주도로 진행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문체부와 언론재단이 해야 할 조치는 불가능한 가짜뉴스 퇴치가 아니라, 고품질 저널리즘의 결과물인 좋은 뉴스가 많이 생산되고 많이 노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승현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는 “언론재단을 담당기관으로 지정한 건 문제가 있다”며 “방통위 산하 시청자미디어재단에서 진행한 팩트체크 사업은 예산을 깎고 문체부에서 유사 사업을 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시청자미디어재단 시스템이 오랜 기간 어려움을 겪다가 자리 잡으려고 하는 시점이었다”고 했다.
김동원 전국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은 “언론재단에 가짜뉴스 신고 상담센터를 설치하고 신고 내용을 유형화 및 아카이빙 한다는 계획은 명확한 목적이 없는 정책”이라며 “상담센터에 누적된 신고 내역 공개는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건수 공개와 같이 특정 언론사에 대한 선입견을 부추길 수 있다. 이러한 정책은 언론진흥재단 본연의 '진흥' 업무에 역행하는 사업”이라고 했다.
'가짜뉴스' 기준 모호… 과잉 대응 우려
정부가 추진 중인 규제는 오남용 소지가 크다. 우선, '무엇이 가짜뉴스인가'는 문재인 정부 때부터 논란이 됐다. 통상 언론보도가 아닌 의도를 갖고 만든 허위정보를 가리키는데 실제론 '정부에 부정적인 정보'와 '정부비판적 언론 보도'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지난 7일 팬덤특위는 '가짜뉴스' 사례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청담동 술자리' 등을 언급했다.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네이버'에 '가짜뉴스'가 방치됐다고 밝혔는데 이 역시 언론 보도를 겨냥한 대목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를 위한 허위정보 대응으로 보기 힘들다.
2018년 문재인 정부가 자율규제 중심의 허위정보 대책을 마련했을 땐 국민의힘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박성중 의원(현 국민의힘 과방위 간사)은 “가짜뉴스 문제는 현행법으로 처리 가능하다.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국무총리가 나서고, 정부가 나서서 반대 목소리를 누를 여지가 있다는 것”이라며 “국가가 나서지 말고 자율로 해야 한다”고 했다.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현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정부가 권력기관을 동원해 가짜뉴스를 판단하겠다는 초법적인 발상”이라며 “(가짜뉴스는) 현행법에 따라 처리하면 될 일”이라고 했다.
제평위·알고리즘위 법제화 '부적절' 지적
유튜버 언론중재 대상 추가엔 “기준 모호”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는 과잉 규제라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지난해 방통위는 '포털뉴스 신뢰·투명성 제고를 위한 협의체'를 통해 포털 뉴스제휴평가와 알고리즘위원회 법정기구화를 논의했다. 복수의 협의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부가 관련 규제를 하는 건 '과잉'이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따라서 정부가 포털에 '권고안'을 내는 정도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수준으로 논의는 마무리됐다.
김동원 실장은 “(포털 관련 사안은) 2022년 국회의 '언론미디어제도 개선특위'의 플랫폼 분과에서도 다루었던 의제이기도 하다. 여야합의도 하지 못했고 후속 대안도 내놓지 못했다”며 “알고리즘투명성위의 유효성은 특위에서도 부정적이었고, 상법에 의한 포털사업자와 언론사 간 거래관계 조정기구를 법적기구로 전환하는 것은 자율규제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조치”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 때 유사한 법안이 민주당에서 발의됐을 때 정부가 우려했던 전례도 있다. 2021년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뉴스포털이용자위원회가 포털에 알고리즘 구성요소 공개를 요구하고 시정요구 할 수 있다는 내용의 신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언론자유 침해 소지를 우려하며 “위원회를 독립적으로 설치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냈다.
유튜브 채널을 언론중재 조정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도 논란의 소지가 크다. 어떤 채널을 사실상 언론과 같은 역할을 하는 시사·보도 채널로 봐야 할지, 규모 측면에서 규제 대상 채널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지 모호하기 때문이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논의를 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규모에 따라 기준을 정하는 건 모호하다. 특히 유럽연합의 제도는 유튜버가 아닌 유튜브 플랫폼 사업자에 의무를 지우는 방식이다. 유튜버 개인에 대한 규제는 표현의 자유 침해가 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유승현 겸임교수는 “정부의 규제안은 전반적으로 국내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며 “포털에 대한 규제를 하면 실질적으로 (뉴스 사업을 하는) 구글과 유튜브 규제하기는 어렵다. 역차별 논란이 불거지고 규제 효과는 떨어질 것”이고 했다.
이와 관련 방통위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입장이 정리된 단계가 아니다”라며 “의견을 들어보는 단계이고 올해 2기 협의체를 구성해 다른 의견도 들어볼 예정”이라고 했다. 문체부 관계자 역시 “이제 협의 중이고, 세부적인 내용이 나온 단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검찰 수사로 대응, 심의 악용 우려도
새로운 규제나 제도를 만들지 않고 허위정보에 대응하는 방식도 현실화되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 검찰이 허위정보나 정부 비판적 정보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한동훈 장관은 청담동 술자리 의혹과 관련 12월 김의겸 의원과 더탐사 기자들, 성명불상 제보자를 형사 고소하고 10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5일엔 민주당 우상호, 장경태 의원이 김건희 여사의 연출 사진 의혹 등 주장을 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과거 보수정당 집권기 때처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신심의 제도 등이 적극 활용될 우려도 있다. 방통심의위 통신심의는 사회에 현저한 혼란을 줄 경우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 이 조항은 주관적 해석이 가능해 사실상 허위정보 대응 규제로 작동해왔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세월호 참사(378건), 메르스(11건), 북한 목함지뢰 도발 및 과거 연평도 포격도발 관련(69건), 사드배치(12건) 등을 다룬 게시글에 시정요구(삭제 및 차단 요청)를 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코로나19 관련 허위정보를 대거 삭제했는데 이 과정에서 영부인 관련 허위정보를 삭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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