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역할 말고 변호사·킬러로… 50대 여배우, 뭘해도 먹힌다
김희애 ‘퀸메이커’ 女-女 대결
선거판에서 주체적 인물 열연
‘차정숙’ 엄정화 경단녀 성장기
전도연 로코물 찍고 액션까지
젊은 스타보다 완숙한 연기력
‘여성 서사 시대’ 공감 이끌어내
김희애(56), 엄정화(54), 전도연(50), 김서형(50). 최근 지상파, 케이블채널, 종합편성채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에서 두각을 보인 콘텐츠의 주인공들이다. 이에 대해 ‘여성 서사’가 늘었다는 평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50대 여배우’라는 점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주인공의 엄마’역에 들어설 나이대의 여배우들이 타이틀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의미 있는 변화다.
◇K-콘텐츠의 ‘황금세대’
전도연은 최근 JTBC 드라마 ‘일타 스캔들’을 마친 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50대 여배우의 로맨스’를 가능케 한 원동력을 묻자 “왜요? 안 돼요? 10년 뒤에도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는 1990년 데뷔 후 20대(접속)에도, 30대(너는 내 운명)에도, 40대(남과 여)에도 진한 로맨스를 연기했다. 40대 중반∼50대 초반 ‘아내의 자격’ ‘밀회’ ‘부부의 세계’로 이어지는 소위 ‘불륜 3부작’에서 주체적인 여성상을 보여준 김희애 역시 그의 CF 명대사처럼 무엇하나 ‘놓치지 않았다.’ 그런 연기파 배우들이 50대라는 이유로 갑자기 ‘주인공의 엄마’로 밀려나는 것이 오히려 난센스다.
이 같은 관례가 깨져나가는 것은 미디어 산업의 발달과 연관이 있다. 지상파 3사 중심이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배우들이 택할 작품 수가 부족했다. 선배들이 젊은 후배들에게 주인공 자리를 내주고 그들의 부모 역을 맡는 것이 일종의 선순환이었다. 여배우의 경우 주기가 더 빨랐다. 하지만 2000년대 케이블채널, 2010년대 종편채널, 2020년대 OTT 플랫폼이 등장하며 선택의 폭은 넓어졌다. 이야기가 다채로워졌고, 더 많은 배우가 필요해졌다.
현재 여러 작품의 주인공을 맡은 50대 여배우들은 대부분 20대이던 1990년대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TV 중심으로 터를 닦던 이들은 충무로의 급성장과 함께 스크린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제는 각종 케이블·종편채널과 OTT 시장을 종횡무진 누빈다. 플랫폼의 다변화에 따라 ‘시청률 중심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것도 호재다. 화제성을 좇아 인기는 높지만 숙련이 덜 된 아이돌 출신 배우들을 내세우는 대신 완숙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로 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여성 서사의 다변화
‘여성 서사’가 콘텐츠 성공을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다. 드라마 속 직업군의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는 수준이면 곤란하다. ‘왜 여성이어야 하는가’라는 당위를 설명해야 한다.
넷플릭스 ‘퀸 메이커’는 대기업 전략기획실 출신 이미지 메이킹의 귀재 황도희(김희애 분)가 ‘정의의 코뿔소’로 불리는 인권 변호사 오경숙(문소리 분)을 서울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았다. 통상 남성들의 전유물로 일컫는 선거판에 신념을 가진 여성과 지혜를 가진 여성이 뛰어들며 바뀌어나가는 지형도를 지켜보는 것은 꽤 흥미롭다. 이들과 대립하는 3선 국회의원 출신 후보자와 이 판을 흔들려는 재벌 회장 역시 여성으로 배치해 ‘여성 vs 여성’ 구도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엄정화 주연의 JTBC ‘닥터 차정숙’은 의대를 졸업한 후 20년째 주부로 살다가 가정의학과 레지던트 1년 차로 복귀한 여성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경력단절 여성의 고뇌를 유머로 푼 드라마의 시청률은 4.9%로 시작해 11.2%(4회)까지 치솟았다.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일타 스캔들’에서 반찬가게 사장님으로 분했던 전도연은 넷플릭스 ‘길복순’에서 심지어 A급 킬러였다.
이 외에도 24일 첫 방송된 채널A 드라마 ‘가면의 여왕’의 김선아(50)를 비롯해 하반기에 공개되는 넷플릭스 ‘마스크걸’의 고현정(52), tvN ‘마에스트라’의 이영애(52) 등이 ‘50대 기수론’의 배턴을 이어받는다. 이들은 각각 변호사, 인터넷 BJ, 지휘자 등 다양한 직업군을 맡아 이야기의 저변을 넓힌다.
‘퀸 메이커’를 연출한 오진석 감독은 “강한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남성이 주를 이뤄온 권력 세계에 정면으로 맞서 충돌하고 부딪히는 점이 새롭다”며 “전혀 다른 성격의 여성들이 충돌하고 연대하는 과정이 관전 포인트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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