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규제 완화…서울과 지방을 구분 안한 것은 정책 실패
☞ ②/③ 편에서 계속
조세 정책 전문가 출신인 김종옥 국회 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장은 한국 부동산 시장이 세계경기 침체, 금리 인상, 높은 가계부채 등 3가지 국내외 리스크(불확실성) 요인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이러한 불확실성에 잘 대응하고 있을까? 질문을 이어갔다.
정부 대응, 아쉬운 점 많아
—현 정부는 부동산 시장 리스크에 적절히 대응하고 있다고 보나?
“대체로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아쉬운 점도 많다.”
—적절히 대응하고 있는 부분은?
“경제 정책의 측면에서 보면, 일관성 있게 시장 기능을 중시하려는 태도는 바람직하다고 본다. 재정 정책, 부동산 정책, 금리 정책에서 각 소관 부처의 권한과 기능을 많이 인정해 주는 것 같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해 온 정책을 보면 대체로 지난 정부와 반대로 가는 데에 주력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정부의 정책이 너무 정치 이념화 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말은 모순이다. 전 정부 정책을 이념적이라고 전제하고, 정책을 180도 바꾼다는 정책 노선 또한 그 자체가 이념적 아닌가?
정책에는 이념이 없을 수 없다. 다만 정도의 문제이다. 전 정권에게 화풀이 하듯이 모든 정책을 바꾸면 안된다. 현 정부의 부동산 조세 정책은 그런 양상이다.”
화풀이 정책의 부작용
—부작용은?
“현 정부가 이런 식으로 정책을 써나간다면 정권이 바뀌면 다시 현 정권의 정책을 180도 뒤바꿀 것이다. 그러면 또 혼란이 찾아오고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이렇게 일을 하니,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현상이 생긴다. 현 정부의 말을 듣고 정책을 폈다가 정권이 바뀌면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대신 공무원을 그만 두고 민간으로 탈출하려고 한다.”
—정부가 바뀌면 당연히 정책도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정권이 바뀌더라도 가능하면 정책은 일관성이 있는 것이 좋다. 바꿀 경우에도 아주 세부적으로 효과를 따져서 국민들에게 이익이 되는지 살펴서 해야 한다.
전 정부에서 시행한 정책은 잘못이라는 전제를 갖고 출발하니, 전 정부의 모든 정책이 틀린 것이 된다. 그러면 전 정부는 국민을 위한 정책을 전혀 시행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 때 국민이나 지금 국민이나 모두 같은 국민 아닌가? 그러니 정책 판단이나 변경의 잣대를 전 정부에 대한 심판보다는 국민에게 이익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관점에 맞춰야 한다.”
세금부담 완화는 바람직
대화가 추상적이고 이념적으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현안이나 사례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 그래서 현 정부의 구체적인 세제 정책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현 정부가 전반적으로 취하고 있는 부동산 세제 완화 정책은 바람직한가?
“조세 제도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납세 순응성이다. 납세자들이 부담하기 어려운 세금 정책은 완화시키는 것이 맞는다. 과도한 세금 규제를 푸는 정책 방향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세금은 국가 세수 확보 뿐 아니라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기능도 깆고 있는데, 이것까지 상실하면 안된다.”
—납세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세금 제도의 사례를 든다면?
“다주택자의 종부세 과세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집을 2채 이상 가졌다고 해서 무조건 높은 세금을 매기면 안된다.
예를 들어 10억원짜리 집 3채를 갖고 있으면 30억원 상당의 주택을 소유한 사람이다. 이 사람이 50억원짜리 주택 1채를 보유한 사람보다 더 높은 세율을 적용받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불공평한 일이다. 주택 수를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주택 가격을 합쳐서 과세하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수도권-지방 동시 규제완화는 잘못
—정부의 대책 중에서 소득 불평등 완화 기능을 상실한 사례를 든다면?
“수도권과 지방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부동산 세제, 금융 규제를 완화한 조치는 잘못이라고 본다. 또 종부세 부담을 대폭 완화한 조치가 자산 불평등을 해소하는데 기여했는지 여부도 두고봐야 한다.”
—수도권과 지방의 세금과 금융 규제를 동시에 완화한 조치의 부작용은?
“부동산 시장 자금이 수도권으로 몰려들면서 서울과 지방간의 부동산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다. 정책이 정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도권 규제는 묶어 놓고, 지방에는 돈이 풀리도록 해야하지 않았을까? 그래야 돈이 지방으로 가면서 지방 소멸도 느려지지 않겠나? 지금 지방 소멸은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종부세 부담 완화 조치는 어떤 부작용을 갖고 왔나?
“2주택자에 대해 종부세와 양도세 중과를 없앤 조치는 기본적으로 방향이 맞는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후속 대책이 치밀하지 못했다. 이 조치로 서울 사람들은 서울에 ‘똘똘한 두채’를 가질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서울에 한채, 지방에 한채 갖고 있던 2주택자들이 지방 주택을 버리고 서울에서 집을 사고 있다.
그러니 지방에서 미분양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대구, 울산, 경북 등 지방의 미분양 아파트가 급증한 것도 이러한 정책 실패가 한 요인이라고 본다.”
정책 실패 미스터리
—정책 당국자들은 전문가이므로 이런 부작용을 쉽게 예상했을 텐데, 왜 이런 정책 실패가 나왔나?
“너무나 기본적인 일인데,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가 모르는 사연이 배경에 있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다.”
—종부세를 완화해 보유세 부담이 줄어든 상황에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완화 조치를 시행하면서 중과 완화 조치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시장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또 정부의 정책을 시장 참여자들이 제대로 믿지 않는 탓도 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완화 조치는 2024년 5월에 시한이 만료되면 끝날까? 아니면 연장될까?
“당연히 연장될 것이라고 본다. 현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완화 조치를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본다.”
들쭉날쭉 정책
—정부가 종부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 과세 표준 산정 때 적용되는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2021년 95%에서 2022년 60%로 대폭 낮췄다. 이런 일회성 조치를 어떻게 평가하나?
“정부가 이렇게 기준을 멋대로 정하니 그 기준 변경에 대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종부세로 걷은 돈은 지자체에 교부금으로 지급하는데, 올해 지자체들의 요구 수준에 맞추기 위해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80% 혹은 90%로 정할 것이다. 정부의 기준이 매우 자의적인 셈이다.”
김 실장이 이 대목에서 ‘상위 2% 종부세’ 방안을 다시 꺼냈다.
“정부가 과세 표준을 수시로 변경하면 정책의 신뢰성이 많이 떨어진다. 이런 논란을 막으려면 내가 앞에서 이야기한 ‘상위 2% 종부세’ 방안을 도입하고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정책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때에도 정책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지 않았나?
“등록임대사업자에게 종부세와 양도세 혜택을 주다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입장을 바꿔 혜택을 없앤 적이 있다. 이렇게 정부가 정책 일관성을 상실하니, 윤석열 정부에서 등록임대사업자를 다시 활성화시키려고 해도 국민들이 긴가민가 하며 정부를 의심하고 있다.”
—전세가 안정을 위해서 민간의 등록임대사업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정책은 올바른가?
“임대업자는 전세와 대출을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를 한다. 그러다가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전세금을 갚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긴다.
과거에는 정책 당국자들이 임대사업자에게 세금 혜택을 줄 때, 세금 혜택을 노리고 이러한 갭투자를 하는 부작용을 예상하지 못했다. 이러한 갭투자의 부작용만 없다면 임대사업자에게 양도세와 종부세 혜택을 주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래야 민간의 임대사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장기보유특별공제 보완해야
—다주택자 종부세 부담 완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완화 등 윤석열 정부의 다주택 보유 촉진 정책은 향후 자산불평등을 심각하게 악화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보완 방안은?
“세금 부담 완화로 수도권의 ‘똘똘한 2채’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이 문제점을 보완하려면 1가구 1주택자의 장기보유특별공제 제도의 기산점을 변경해야 한다.”
—어떻게?
“현재 1주택을 10년간 보유한 후에 양도하는 경우 양도차익의 80%를 공제해 주는 장기보유특별공제 제도가 있다. 10년간의 보유기간을 기산하는 시점을 해당 주택을 취득한 시점으로 잡고 있다. 예컨대 최초 5년간 1주택을 보유하던 중 다른 주택을 취득해 2년간 2주택자가 되었다가, 그 주택을 처분한 후에 다시 5년간 보유하고 난 뒤 처분하는 경우 1주택 보유기간이 10년이 되어 양도차익의 80%를 공제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1주택자가 다주택 투기를 하더라도 벌칙이 없어 불공평하다. 1주택자가 다주택을 취득하는 경우 기존의 1주택 보유기간은 소멸되는 것으로 하고, 다주택을 모두 처분하고 난 뒤 최종 1주택이 되는 시점부터 장기보유 기간을 다시 기산하면 투기를 줄일 수 있다.”
—효과가 어느 정도일까?
“1주택자가 다주택 투기를 하는 경우 기존의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다주택자가 되기 쉽지 않다. 2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양도세 부담을 대폭 완화해 일부 부동산 투기가 예상되므로 이 방안을 다시 논의해 볼만도 하다.”
대출규제 완화는 충분
—부동산 대출 규제는 충분히 풀었나?
“충분히 풀었다고 본다. 상환원리금을 소득의 일정 비율 이하로 제한하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만 남아 있는데, 가계부채 문제 때문에 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금리가 올라서 가계부채가 문제가 되고 있지만, DSR 규제는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금융위원회가 대출 규제를 왕창 푸는 바람에 부동산 거품을 제거할 수 있는 호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있다.
“그런 측면이 있다고 본다. 정책 효과 측정을 제대로 한 것인지 의문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는 2027년까지 270만호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실현 가능한가?
“달성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해 거래가 안 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분양 물량을 쏟아낼 수 있을까? 정부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장이 공급을 늘리는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부동산 개발 자금 조달이 어려워 공사 자체도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아파트 재건축 허용 이야기 때문에 서울 부동산 가격이 다시 오르고 있다. 집값을 안정시킨 상태에서 공급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은 없나?
“거기까지는 생각을 안해 봤다.”
—서울 강남 3구와 용산구의 토지거래허가 제도는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나? 아니면 풀어야 하나?
“언젠가는 풀어야 한다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시점이 적절하다고 본다.”
집값 안정 방향은?
시계가 오후 6시를 넘어간다. 서쪽 창에 맞은편 국회도서관 건물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김 실장은 인터뷰 내내 조세 정책 전문가로서의 경륜을 보여줬다. 일반적인 이론을 나열하기 보다는, 정책 입안의 구체적인 맥락, 관련 인물, 사후 효과에 대해 명확히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 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조세 정책에 대해서도 자신의 일관된 잣대로 공과를 평가했다. 일반인들은 듣기 어려운 조세 정책 당국자의 문제의식, 정책 입안 과정에서의 고민과 결단이 인터뷰 내내 드러났다.
이제 인터뷰를 끝낼 시간이다. 마지막 질문으로 김 실장이 생각하는 장기적인 부동산 안정화 방향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새로 도입할 필요가 있는 조세 정책을 골랐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집값이 어느 정도로 안정되어야 하나?
“대학 졸업 후 정상적으로 취직을 한 사람이 10~15년 정도 생활도 하고 저축도 하면 서울에서 집을 하나 살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취직을 하면서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이 10~15년 동안 대출을 모두 갚을 수 있는 수준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직장을 가진 젊은이들이 서울에서 집을 다 가질 수 있고, 저출산 문제도 많이 해결될 것이다.”
—1가구 1주택에 대한 세제 혜택이 ‘고가의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을 낳으면서 전국적으로 집값을 끌어 올리고 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가주택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을 적정 수준으로 올리고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를 많이 내게 해야 한다. 집은 필수재이므로 1가구 1주택자에게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제공하는 방안은 옳다고 본다.
그러므로 고가주택이라도 1주택자의 경우에는 혜택을 주지 않을 수는 없지만, 세금 부담을 더 높여 세금 혜택의 폭을 다소 줄이는 조치는 필요하다. 그래야 서울 강남의 ‘똘똘한 1채’ 선호 현상이 전국적으로 집값을 끌어 올리고 청년층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여소야대…험난한 입법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상당 부분이 입법이 필요한 사항들이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이러한 법 개정이 잘 진행될까?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예컨대 정부가 작년 12월부터 다주택자 취득세를 완화해 소급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분양가 상한제 주택의 실거주 의무도 폐지한다고 했다. 단기보유 분양권의 양도세율도 내린다고 했다. 모두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인데, 아직 국회에서 논의도 안되고 있다. 그래서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을 가중시켜 국민들의 불안감이 심하다.
정부가 이런 발표를 할 때에는 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복안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이런 법안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현재 부동산 시장의 최대 리스크 요인은 정치상황이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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