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뛴다’ 보여준 장애인 4명, 비장애인 1명의 이어달리기

김양희 2023. 4. 2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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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WeThe15 2023 KBS배 어울림픽 육상대회
25일 경기도 용인 미르스타디움 주경기장에서 열린 #WeThe15 2023 KBS배 어울림픽 육상대회 결승전에서 경북 팀 2주자인 임준범과 가이드러너 최성열이 3주자인 정준수에게 배턴을 넘기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가늘던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뚝 떨어진 기온(11도)에 한기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선수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탕’ 소리와 함께 배턴을 이어 받으며 힘껏 발을 놀리고 열심히 바퀴를 굴렸다. 대부분 한 팀 소속이었지만 ‘원팀’으로 뛴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하나가 되어 경계를 허물었다.

#WeThe15 2023 KBS배 어울림픽 육상대회가 펼쳐진 25일 경기도 용인 미르스타디움 주경기장. 각기 다른 장애를 가진 선수들이 우승이라는 목표를 위해 단단히 뭉쳤다. 일반적으로 장애인 대회가 유형별, 등급별로 나뉘어 치러지는 데 반해 이번 대회는 4(장애인)+1(비장애인)명이 함께 호흡해 800m를 완주하는 식으로 치러졌다. 4×200 혼성 릴레이 이벤트로, 처음 시도되는 대회였다.

25일 경기도 용인 미르스타디움 주경기장에서 열린 #WeThe15 2023 KBS배 어울림픽 육상대회 결승전에서 경북 팀 1주자 박세경이 힘차게 트랙을 돌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대회 제공
25일 경기도 용인 미르스타디움 주경기장에서 열린 #WeThe15 2023 KBS배 어울림픽 육상대회 결승전에서 경북 팀 마지막 주자 유병훈이 결승선을 통과한 뒤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이날 경기에서 1, 3주자는 뇌변병장애, 지체장애, 지적장애, 청각장애 선수들로 구성됐고 2주자는 시각장애 선수들이 맡았다. 시각장애 선수들은 모두 안대를 착용해 비장애인 가이드러너와 함께 뛰었다. 마지막 4주자는 휠체어 육상 선수가 담당했다. 각 팀에 여성 선수는 한 명씩 포함됐다. 대한장애인체육회는 지난 20일 장애인의 날을 계기로 장애 인식 개선 및 통합 사회 구축을 위해 방송사(KBS)와 협업해 이와 같은 이색 이벤트를 마련했다.

8개 팀이 참가해 3개 조로 나뉘어 예선을 치렀고 각 조 1위와 2위 팀 중 기록이 가장 좋은 팀이 결승에 올랐다. 예선 경기 때는 안타까운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예선 3조 부산 팀 1주자로 참가한 백광영이 부상 당한 다리로 처음부터 절뚝이면서 뛰었다. 대회 직전 연습을 하다가 다리를 접질렸는데 대체 선수가 없었다. 백광영은 절뚝거리면서도 200m를 완주하고 2주자에게 배턴을 넘겨 박수를 받았다. 국가대표 선수들로만 구성된 K팀이 예선 탈락하는 이변도 있었다.

결승전은 치열하게 펼쳐졌다. 지난해 브라질에서 열린 데플림픽(청각장애인올림픽) 남자육상 200m 은메달리스트 공혁준(KBS 팀)은 엄청난 스프린트 실력으로 관중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우승은 예선부터 찰떡 호흡을 보인 경상북도 팀(1분51초18)의 차지였다. 메달과 함께 우승 상금 1000만원을 받았는데 경북 3주자였던 정준수는 “지기 싫기도 했지만 상금 때문에라도 꼭 우승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25일 경기도 용인 미르스타디움 주경기장에서 열린 #WeThe15 2023 KBS배 어울림픽 육상대회에서 우승한 경북 육상팀.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경북 1주자였던 박세경은 “여러 선수와 뛰는 경험이 처음인데 굉장히 재미가 있었다. 뒷선수들을 믿고 실격만 당하지 말자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경북 마지막 주자였던 국가대표 휠체어 육상 선수 유병훈은 “방송까지 된다고 해서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즐겁게 즐겼는데 초대 대회 우승 타이틀도 얻게 돼 기쁘다”면서 “이번 대회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고, 새로운 자극도 됐다”고 밝혔다. 그는 7월 파리육상세계선수권과 9월 항저우아시안게임 출전을 앞두고 있다.

2등은 KBS 팀(1분55초85), 3등은 대전 팀(1분56초34)이었다. 2~3등 간 차이가 0.49초밖에 안 날 정도로 경기는 박빙이었다. KBS 연합 팀으로 참가한 휠체어 육상 국가대표 윤경찬은 “계주에서는 졌지만 개인전에서는 절대 안 지겠다”고 전의를 불태우기도 했다. 4위는 울산 팀(2분01초53).

25일 경기도 용인 미르스타디움 주경기장에서 열린 #WeThe15 2023 KBS배 어울림픽 육상대회 결승전에서 KBS 연합 팀의 2주자 선지원의 가이드러너로 뛴 가수 션이 3주자 공혁준에게 배턴을 넘기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특히 이번 대회는 비장애인이 시각장애 선수들의 가이드러너로 참가해 ‘어울림’의 의미를 더했다. 경북 2주자였던 임준범 은 실제 대학 육상 선수로 활약 중인 최성열과 합을 맞춰 200m를 함께 달렸다. 임준범은 “눈을 완전히 가리고 뛴 게 처음인데 최성열 덕에 부담 없이 뛰었다. 나에게 잘 맞춰줬다”고 했다. 최성열은 “가이드러너는 처음이라 특별한 경험이 됐다.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다시 하고 싶다”고 했다. KBS 팀 2주자 선지원의 가이드러너로는 특별히 가수 션이 참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안점호 경북 장애인체육회 육상 실업팀 감독은 “3, 4번 주자가 강해서 1, 2번 주자가 상대 팀과 20~30m 벌어져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선수들도 경기 진행 과정에서 마음을 편하게 가져갔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각자 유형이 다른 장애인이 함께할 기회가 없는데 이게 계기가 되어서 장애인육상이 활성화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용인/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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