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내 새끼[편집실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향해 폭발물을 던진 24세 청년의 범행 동기 중 하나로 ‘정치 세습’을 지목한 언론 보도가 나왔습니다.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4월 19일자로 용의자가 SNS에 올린 “기시다 총리도 세습 3세”, “서민은 입후보할 수 없고, 민주주의는 붕괴한다” 등의 글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습니다. 전후 A급 전범으로 몰렸다가 훗날 총리까지 지낸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라는 배경을 발판 삼아 두 번이나 수상을 지낸 아베 신조 전 총리를 비롯해 지난해 10월 총리 비서관으로 파격 발탁된 기시다 총리의 장남 쇼타로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정치 대물림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한국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에 입문한 의원이 여럿 있습니다. 지난 총선 때는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아들이 지역구 세습 논란에 휩싸였지요. 출발선부터 다르다며 공정과 상식을 외치는 기류가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대를 잇는 ‘정치 가문’의 등장은 한국에서도 앞으로 일본처럼 더 빈번해질 공산이 큽니다.
정치만 그런가요. 사회 각 부문에서 ‘가업’을 이어받는 풍토가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부의 세습이고 신분의 대물림입니다. 예전에는 “너는 다르게 살아라”면서 자식들을 밀어냈지만, 지금은 모두 품에 끌어안고선 어떻게든 물려주려고 혈안이 돼 있습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막히고 성장이 정체된 사회의 단면입니다. 자수성가를 꿈꾸며 벌판을 누비던 2세들도 현실을 깨닫고는 돌아와 부모의 재력이나 인맥에 기대는 사례를 많이 봅니다. ‘벼락출세’를 해놓고도 겸손은커녕 자신의 능력인 양 강변하는 2세들의 ‘뻔뻔한’ 행태도 자주 대중의 입길에 오르내립니다.
각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스타의 자녀들이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 브라운관을 장식하는 게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스타들의 ‘평범한’ 일상을 엿본다는 순기능도 있었지만, “누구는 부모 잘 만나 저렇게 쉽게 전파를 타고…”라는 식의 비아냥이 따라붙기도 했습니다. 대리-과장-상무-부사장 식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는 ‘금수저’들도 부러움을 넘어 위화감을 부추기는 요인들입니다. 이런 현상이 누적되면 사회 전체가 멍이 들고 맙니다.
얼마전, 인구소멸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한 방송프로그램을 보다가 정신이 번쩍 든 대목이 있었습니다. 출생률이 낮아질수록 사회는 점점 더 양극화된다는군요. 과거보다 적은 수의 자녀에게 부모의 자산을 몰아주다 보니 있는 집 자식과 없는 집 자식 간에 부의 편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이런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을까요. 이웃 일본을 보며 혀를 끌끌 차면서도 정작 우리는 너도나도 ‘내 새끼’만 챙기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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