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우리 동네 장인(匠人)

하인혜 시인 2023. 4. 2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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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 원장이 나에게 하는 말이다.

내 머리카락 뿌리가 어찌나 탄탄한지, 손맛이 좋아 으뜸으로 꼽았다는 것이다.

지난 몇 해는 갓 캐어낸 고구마를 나눠주기도 했다.

그녀가 빚어낸 또 다른 작품이라고 끄덕이며 나는 입엣말로 우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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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혜 시인

"손님이 1등이에요"

미용실 원장이 나에게 하는 말이다. 머리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뭐가 그런지 물었다. 내 머리카락 뿌리가 어찌나 탄탄한지, 손맛이 좋아 으뜸으로 꼽았다는 것이다. 감언이설이라도 좋았다. 고객의 모발을 섬세하게 다루는 손길과 안목이 미더워, 자연스레 그녀의 재바른 동선을 눈여겨 보아온 지 오래다.

미용실은 피아노 학원과 치과 등이 들어선 건물 1층으로, 샛길이 아파트 단지에 닿는 곳이다. 입구와 마주한 쪽문이 있어서 실내 공기는 늘 청정하다. 다양한 미용 도구를 부리며 만들어내는 헤어 스타일은 물론이거니와 주변의 것을 보살피며 살리는 그녀의 손끝에서는 또바기 푸근함이 묻어난다.

나는 그녀 손을 수금(手琴)이라 부른다. 열 손가락의 움직임이 빚어내는 악기라는 뜻으로 내가 만든 별명이다. 그 손길이 닿은 결과물은 예사롭지 않고 때로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관엽 식물을 비롯해 몇 종의 분재는 바르고 그윽한 수형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모서리 한 켠에 자리한 널찍한 수족관에는 하늘거리는 물풀 사이로 진귀한 형태와 고운 색채를 가진 열대어들이 헤엄치며 놀고 있으니, 모두 그녀가 보살핀 흔적이다.

쪽문을 열면 텃밭머리로 이어진다. 문기둥 옆에 놓여있는 호미가 눈에 띈다. 샛길 아래 자투리땅을 일궈 만든 오붓한 채마밭은 초록이 충만하다. 바람에 넌출거리는 깻잎이며, 흙내음 품고 오른 상추 대궁이 튼실하다. 곧추세운 지지대가 잡아준 풋고추도 싱그럽다. 붓질 자국이 채 마르지 않은 수채화 한 폭처럼 정겹다. 게다가 먹을 만치 솎아 가라니, 무농약 재배인지라 더욱 귀하다. 지난 몇 해는 갓 캐어낸 고구마를 나눠주기도 했다.

염색약을 개어 고객 머리에 바르던 손을 놓고, 헤어 드라이기 열기와 소음을 거둔 채 종종거렸을 지난 시간이 그려진다. 35년의 업이니, 어쩌면 복대기던 순간 어룽더룽한 마음밭을 고름질한 흔적인 듯하다. 생명을 보듬고 키워내는 수금 한 소절 변주처럼, 텃밭의 충일한 화음이 도타운 노래가 되어 귓가에 여운을 남긴다. 그녀가 빚어낸 또 다른 작품이라고 끄덕이며 나는 입엣말로 우물거린다. "당신을 1등 장인으로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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