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산업안전은 우문현답

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2023. 4. 2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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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오랜만에 중견 건설회사 안전관리책임자로 근무하는 대학 동기와 막걸리를 한잔했다. 노후 문제와 자식 결혼, 부모님 모시는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자연스레 직장 이야기로 이어졌다.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법)이 시행된 뒤 건설현장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건설공사 이윤이 공사 기간에 따라 좌우되다 보니 건설사는 공기단축에 혈안이다. 그러다 보니 안전관리책임자 지시 사항은 항상 뒷전이었고 공기단축의 최대의 걸림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지금은 임원 회의부터 안전관리책임자의 의견이 가장 우선시되고 작업 현장에서도 모두가 안전을 입에 달고 있는 분위기란다. 그간 형식적이고 서류 우선의 현장 위험성 평가 업무가 피드백이 동반되는 실질적이고 중요업무로 바뀌고, 기피 부서였던 안전 부서가 인기부서로 등극해 가장 핫한 부서로 바뀌었다고 한다. 올해 들어 사망사고자는 물론 중상자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은근히 자랑이다. 건설 현장 안전관리 전문가 20여 년 근무하면서 요즘처럼 자부심을 느낀 적은 없다고 한다.

지난해 말 US뉴스&월드리포트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평가에서 우리는 미국, 중국, 러시아, 독일, 영국의 뒤를 이어 6위였고 프랑스와 일본을 제쳤다. 우리의 GDP가 OECD 국가 중 상위권인 것은 알았지만, 전 세계가 한국의 영향력을 높이 평가하는 데 새삼 놀랐다. 오랜만에 국뽕(?)이 충만한 기분이었다. 근데 국뽕도 잠깐, 우리나라는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가 한해 828명에 달하고 OECD 38개국 중 34위 수준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있었다. 특히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수가 그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이 숫자는 영국의 1970년 독일과 일본의 1990년대 수준이라니 이건 아니다 싶다. 그런데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사망사고 원인은 추락, 끼임, 부딪힘 등 현장에서 기본적인 안전 수칙 준수만으로 예방 가능한 사고가 전체의 60%를 넘는다고 한다. 과거 10년간 사다리 사망사고 건수가 328건에 달하며 1.5에서 2미터 사이의 높이에서 추락사고가 가장 빈번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호조치, 작업절차 준수, 위험성 평가 실시, 보호구 착용 등 기본적인 관심과 노력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 왜일까. 그 답을 이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잘살아 보자는 국민적 염원 속에 생산제일이 강요된 고도압축성장과 원청 및 하청 간의 하방 수직계열화의 그늘이 있다. 2년 5개월의 공사 기간 중 7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부고속도로공사의 교훈이 잘 설명해 준다. 1차와 2차로 이어지는 하청구조 속에서 돈만 남고 안전관리는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중대법 시행 이후 올해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바탕으로 국격과 국민 수준에 맞는 산업안전정책을 전방위적으로 펼치고 있다. 중대법이 처벌과 감독 위주라면 로드맵은 기업과 근로자 자율과 참여 그리고 협력을 더 해 산업안전문화를 내재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 방법 중 잘만하면 가장 쉽고 효과가 큰 것이 TBM(Tool Box Meeting)다. TBM은 현장에서 작업 개시 전 작업자의 건강과 복장, 보호장구 점검, 작업의 내용과 각자의 임무 확인, 그리고 반드시 작업의 위험 요소 확인 및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예측하고 확인하는 활동이다. 보통 10분 이내의 시간으로 작업자 전원이 참가·토의·행동하는 것이 철칙이다. 어느 산업현장이든 위험 요소는 있기 마련이다. 특히 건설 현장은 더더욱 그러하다. 기업과 근로자가 자기규율을 원칙으로 현장 위험 요인을 정확히 평가해 TBM으로 위험을 예측하고 극복하자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모든 영역에서 초연결의 시대라 해도 산업안전만큼은 면대면의 TBM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산업재해는 오프라인에서 발생하고 산업안전은 위험 요인을 모두가 함께 확인하고 예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국가의 산업안전정책을 담당하는 고위공무원도 직접 현장을 방문하고 점검하고, 안전정책을 설명한다고 한다. 산업안전이라는 축구시합에 위험성평가라는 센터포워드가 TBM으로 슛을 많이 때리면 반드시 골은 들어간다고. 어느 선배 교수가 한 얘기가 기억난다. '우문현답', 즉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그래서 산업안전은 우문현답이다. 안전에 대한 기업 투자는 근로자에 대한 투자이며 가장 우선하는 복지이다. 그 투자에는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건축이라도 누군가의 죽음 위에 세워진 것이라면 이미 그것은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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