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일상이 기적…다시 놓칠 수 없어요"[이스타, 다시 날다㊤]

금준혁 기자 2023. 4. 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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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 위기 딛고 3년만에 운항 재개…한달 간 무사히 하늘길 책임져
직원들 얼굴에 설렘과 긴장감…"최고의 서비스는 '안전'에 대한 믿음"
이스타항공 ZE220편이 운항에 앞서 정비를 받고 있다. 2023.4.19/뉴스1 ⓒ News1 금준혁 기자

(서울·제주=뉴스1) 금준혁 기자 = 지난 19일 오전 김포공항 이스타항공 사무실은 수능을 앞둔 고사장처럼 긴장감이 흘렀다. 국토교통부의 운항자격 심사관은 이날 송형기 부기장의 '심사비행'인 제주행 ZE213편 이륙을 앞두고 이뤄진 이스타항공의 비행 전 업무브리핑을 참관하며 매서운 눈초리로 '3년만의 비행'에 이상이 없는지를 살폈다.

송 부기장은 한달 전인 3월26일, 이스타항공의 3년만의 첫 운항이었던 ZE205편에서는 심사비행을 완료하지 못해 조종석 대신 '승객'으로 가족과 함께 객실 좌석에 탑승했었다. 그에겐 이날이 3년만의 완전한 복귀 무대였다. 첫 운항 당시 조종간을 잡았던 조준범 기장이 이날 송 부기장과 함께 조종석을 책임졌다.

이날 심사비행은 송 부기장의 조종사 자격 유지를 위한 재자격 훈련의 마지막 단계다. 중요한 시험날, 입버릇처럼 내뱉는 "긴장된다"는 말과 달리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항공사 직원들이 가장 무서워한다는 심사관마저 이스타항공 직원들에게는 '드디어 일상이 돌아왔다'는 증거였던 때문이다.

송 부기장은 "모든 게 기적 같다"고 했다. 언제든 파산한다 해도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닐 정도였던 이스타항공이 날개를 다시 폈다. 비상탈출 훈련을 통과하고 항공운항증명(AOC)을 재발급받으며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던 것이 불과 두달 전이다. 이제 재운항도 한달을 맞았다. 다행스럽게도 '아무 일도 없이' 하늘길을 바삐 오가고 있다.

박정인 객실승무원이 제주공항에 착륙해 승객들에 인사를 하고 있다. 2023.4.19/뉴스1 ⓒ News1 금준혁 기자

송 부기장뿐만이 아니었다. 마주친 모든 이스타항공 사람들은 아직도 이 모든 운항 과정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상기된 표정이었다. 박태민 안전관리팀 부장은 함께 일하고 있는 정비사들을 일일이 가리키며 "이스타항공이 힘들어도 남아 있던 사람들"이라며 "다시 태어나는 마음, 새로운 이스타항공을 만드는 마음으로 의기투합하고 있다"고 했다.

제주공항에 착륙해 승객들을 보내던 박정인 객실승무원은 "3년간 쉬다가 비행한 만큼 첫 손님이 탈 때도 감격스러웠는데 지금도 처음처럼 설렌다"며 "공항에 오는 게 너무 좋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이날 ZE213편에는 오지혜 사무장과 최지현·하지현 승무원, 김포로 돌아오는 ZE220편에는 김병주 기장, 김종선 부기장과 남궁수 사무장, 박숙연·양민주·우창완 승무원이 안전을 책임졌다.

객실을 채웠던 왁자지껄한 학생들, 한 손은 아빠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젤리를 입에 넣던 아이, 셀카를 찍던 외국인, 부풀어오른 배를 부여잡고 자리를 찾던 임신부 승객까지. 이스타항공이 다시 누군가의 삶에 스며들기까지 너무나도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이스타항공 조종사들이 운항에 앞서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2023.4.19/뉴스1 ⓒ News1 금준혁 기자

수요일 오전임에도 이스타를 찾은 승객이 가득했다. 김포에서 제주를 향한 ZE213편의 탑승률은 98%, 제주에서 김포로 올라오는 ZE220편은 만원이었다.

마치 신입사원들처럼 모든 과정을 '처음 해보듯' 세심하게 준비했던 이스타항공 직원들은 "몸이 기억하더라"고 말했다. 새롭게 운항을 시작한 한달 전과 달리 운항, 객실, 정비 등 각 부서에서 손발이 맞고 나아가 다른 부서와의 호흡이 맞아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타항공이 별다른 시행착오 없이 순항하고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그래도 재운항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긴장을 놓지 않는다. 어렵게 되찾은 일상을 다시 잃어버리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다. 특히 최근에는 공항에서 안전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며 항공사들의 긴장감도 높아진 상태다.

이스타항공은 국토부에서 AOC 재발급 조건으로 내건 현장 안전관리사 배치를 의무 기간이 끝난 후에도 유지할 계획이다. 선임 조종사, 객실 승무원 등이 직책을 맡아 비행에 앞서 안전보안사항을 체크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운항부문 안전관리사를 맡고 있는 라대영 기장은 "눈물부터 났다. 하루하루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크게 와닿았다"며 "이스타가 손님한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서비스는 안전에 대한 믿음"이라고 강조했다. 객실부문 안전관리사인 강현애 사무장도 "현장에서 어려움이 없도록 든든하게 지원하는 (안전관리사의) 임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이어진 경영난에 더해 2019년 일본 불매 운동,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치면서 결국 전 노선 운항을 중단한 게 3년 전인 2020년 3월이었다. 파산의 위기 속에 새 주인을 찾으려는 끈질긴 노력 끝에 올해 초 사모펀드 VIG파트너스에 인수돼 재운항의 희망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때마침 마스크를 벗은 시민들이 일상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스타항공도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트랩을 오르는 승객들을 맞는다. 승객을 향해 한명도 빠짐없이 손을 흔든다.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은 일상이다.

이스타항공 정비사들이 승객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2023.4.19/뉴스1 ⓒ News1 금준혁 기자

rma1921k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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