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기본법 무색해진 尹정부 미디어위원회
위촉위원 성별 60% 편중 안 되는데…총리직속 위원회 93%, 국민통합위 특위 75% 남성
미디어산업발전위 "할 만한 분 없어 배려 못해" 미디어특위 "양성평등 실현되도록 하겠다"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윤석열 정부의 미디어정책 관련 위원회들이 특정 성별에 편중돼선 안 된다는 양성평등기본법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보수 성향, 교수 중심의 위원 구성이 더해져 현 정부가 미디어 산업·정책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 정부의 미디어정책 종합발전전략을 세울 범정부 위원회로는 17일 출범한 국무총리 직속 '미디어·콘텐츠산업 융합발전위원회'(미디어산업발전위원회)가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성낙인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공동위원장을 맡은 위원회는 당연직인 관계부처장 5명, 위촉직인 전문가 민간위원 15명 등 20명으로 구성됐다.
20명 위원 중에서 여성인 이문행 수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를 제외한 19명이 남성이다. 한덕수 총리와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등 당연직은 전부 남성이다. 민간위원은 미디어학계 4명 중 3명, 미디어산업계 5명 전원, 미디어기술계 2명 전원, 법·제도 분야 3명 전원과 공동위원장 등 14명이 남성이다. 전체 위원의 95%, 위촉직 민간위원의 93.3%가 남성으로 채워진 것이다.
같은날 대통령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산하로 출범한 '국민통합과 미디어특별위원회'도 성별 편중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포털·허위정보 대응을 강조하는 특위는 국회의원 출신인 최명길 위원장(국민통합위원)을 비롯해 13명으로 구성됐다. 남성 위원이 10명, 여성 위원이 3명이다. 최 위원장과 학계 7명 중 5명, 언론계 3명 중 2명, 법조계 2명이 남성으로 이는 전체 위원회의 76.8%, 위촉 위원의 75%에 해당한다.
두 위원회는 모두 국가·지방자치단체 위원회에서 특정 성별이 위촉직 위원의 60%를 초과해선 안 된다는 양성평등기본법 제21조에 위배된다. 여성가족부장관은 이 조항을 근거로 관련 위원회의 성별 참여현황을 공표하고 개선을 권고해왔다. '특정 성별의 전문인력 부족 등 부득이한 사유'가 있으면 실무위원회 등 의결을 거칠 수 있다는 예외 단서가 있지만 미디어 분야의 비남성 인력이 부족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통령 및 국무총리 소속위원회 구성에 대한 시행령(행정기관 소속위원회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4조도 '성별, 지역별, 직능별 위원이 균형 있게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미디어산업발전위 93%, 국민통합미디어특위 75% 이상이 남성이라는 비율은, 2014년 관련 조항(당시 여성발전기본법)이 도입된 이래 성비 개선이 이뤄져온 추세에 정면으로 반한다. 지난 3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중앙행정기관 위원회 위촉직 위원의 남성 비중은 13년 전인 2010년 77%, 특정 성별 초과금지 조항이 마련된 2014년 68.3%, 계도 기간이 종료된 2017년 59.8%로 꾸준히 줄었다. 2010년 22.3%에 불과했던 여성참여율은 2017년 이후 40%를 넘었고, 지난해 말 기준 41.4% 수준이다.
'공공부문 성별대표성 제고'는 올해 1월 여성가족부가 밝힌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의 대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여성가족부는 당시 관련 계획을 수립해 정부위원회를 비롯한 공공분야 내 성별 참여가 균형 있게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역대 정부가 '여성대표성 제고'라 표현해온 것을 '성별대표성 제고'로 바꾸고, 구체적 로드맵을 내놓지 않았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이를 주요 과제로 제시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미디어산업발전위원회과 국민통합미디어특위는 이미 보수 성향 내지 교수 중심으로 구성돼 다양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미디어산업발전위 민간위원 15명 중 10명, 국민통합미디어특위 10명 중 7명이 교수다. 미디어특위 법조계 인사들은 여권 유관 이력이 있다. 나아가 현행법을 어기면서 최소한의 성별 균형도 갖추지 않은 위원회 구성에 우려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엘림 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25일 “위법한 위원회 구성이다. 법이 정한 예외에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며 “지방자치단체가 구성하는 위원회도 성별균형기준 10분의6을 고려해 위원 구성을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미디어분야에 여성 전문가가 없다는 것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며 “윤석열 정부의 낮은 성인지의식, 성평등의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우려가 된다”고 했다.
황연주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사무국장은 “성별균형 보장은 인적구성 다양성을 보장하는 시작점이다. 여성만이 아니라 청년,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 집단 등 소수집단 참여를 견인할 수 있는 장치”라며 “위원회를 더 다양하게 구성하려는 노력 없이 정부가 원하는 인사들로 꾸려진 위원회가 미디어 혁신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했다. 그는 이어 “위원회 인적 구성을 봤을 때 미디어나 포털,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회적 소수자 편견이나 혐오가 재확산되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지 따져 물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정치 논리가 미디어의 기본적 가치보다 우선된 영향이 있을 것이고, 남성 중심의 정치 현실이 반영된 결과일 수 있고, 산업 논리가 주로 지배하면서 사회문화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것들이 후순위로 밀린 결과라고 본다”며 “이런 인적 구성이 정부가 미디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관련 위원회 측은 여성 전문가 위촉에 한계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총리 직속 미디어산업발전위 지원단 관계자는 “관련 전문가를 미디어 콘텐츠 업계나 학계에서 열심히 물색했고 여성 위원들을 찾아봤는데 마땅히 하실 만한 분이 없어서, 노력은 했는데 크게 배려를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현업에 작가 등 여성 인력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런 분들이 현안 정책에 대해 의견을 제시해줄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고 했다. 타 위원회 대비 성별 편중이 심하다는 지적에는 “상설위원회의 경우에는 열심히 배려를 한다”며 “양성평등기본법도 있지만 여성가족부 쪽과 협의를 해서 보완할 것이 있으면 보완하겠다”고 답했다. 현 미디어산업발전위원 임기는 1년이다.
국민통합위 국민통합미디어특위 측은 “여성 위원들이 공교롭게 참여를 못하겠다고 하신 분들이 많았다”며 “전문 분야를 찾아서 더 위촉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는 7월 정책 제안 발표를 예정한 상황에서 추가 위촉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느냐고 묻자 이 관계자는 “다루려고 하는 분야별로 관계 기관의 진행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면서 “양성평등이 더 실현될 수 있도록 여성 위원들 위주로 연락을 드리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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