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묶인 中企] 해외로 가라면서 현지 금융지원은 ‘막막’
신보, 해외보증 부활에도… 현지사무소 1곳뿐
해외법인은 정책자금 못받아… “지원 늘려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고민이 많아졌다. 무역업 특성상 물건 매입에 들어가는 비용이 큰데, 현지에서 자금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A씨는 “국내 중소기업은 신용보증기금 등 기관을 통해 다양한 금융지원을 받지만, 해외에 설립한 법인은 조건이 까다롭다”면서 “업력이 짧은 기업일수록 문턱이 높아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내 중소기업의 중동 진출을 독려하고 있지만, 정작 현지에 거점을 둔 기업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지 법인에 대한 금융지원의 문턱이 높기 때문인데,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을 촉진하려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 수은·산은, 中企 여신 비중 15~30% 안팎
26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수출입은행과 신용보증기금, 산업은행 등을 통해 해외에 법인을 설립한 국내 기업에 금융지원을 제공한다. 금융기관은 모기업에 자금을 빌려주고 이를 현지법인에 대여할 수 있도록 하거나, 현지법인에 직접 사업자금 등을 빌려준다.
그러나 정책금융의 혜택은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주로 몰려있다.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의 경우 전체 여신에서 중소기업에 제공하는 금액은 절반이 채 안된다. 수출입은행은 지난 2021년 중소기업 지원 목표치로 11조5000억원을 제시했는데, 이는 전체 여신 예상액의 15.9% 수준이었다. 산업은행도 중소기업에 빌려주는 자금이 매년 30% 안팎에 불과하다.
담보능력이 미약한 중소기업의 채무를 보증해주는 방식으로 자금조달을 돕는 신용보증기금도 해외진출을 안정적으로 지원하지는 못했다. 신보는 1985년 해외진출기업에 대한 보증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뉴욕과 도쿄, 프랑크푸르트, 방콕 등에 해외사무소를 개소했다. 그러나 외환위기(IMF)가 터지면서 보증수요가 감소하자 2007년 보증지원 사업을 없애고 해외사무소도 폐쇄했다.
보증 수요가 증가한 2018년 신보는 이 제도를 다시 부활했고, 보증 실적도 지난해 2187억원으로 늘리는 등 사업 규모를 키웠다. 그러나 현지 기업을 밀착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해외사무소는 2년 후인 2020년에야 베트남에 첫 거점이 마련된 것이 전부다. 중동 등 정부가 중소기업의 해외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지역에는 해외사무소가 없다.
정부의 정책자금도 무용지물이다. 현행법에선 중소기업을 ‘영리사업을 목적으로 우리나라에 소재하면서 우리나라에 세금 등을 납부하는 기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한국인이 해외에 설립한 법인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뜻이다. 모기업을 통해 정부의 정책자금을 받아 해외법인에 융통하는 방법도 있지만, 해외법인의 매출이 더 클 경우 평가점수가 낮아져 정부자금을 받기가 쉽지 않다.
A씨는 “현지 법인의 매출이 더 커서 정책자금을 지원받기가 쉽지 않았고, 현지 은행의 문턱은 더더욱 높았다”면서 “결국 돈을 빌리지 못해 보유한 자금의 회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했다”고 했다.
◇ 중소기업 해외진출 느는데… “정책금융 지원범위 넓혀야”
현행 금융지원제도가 중소기업의 현지 법인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금을 필요로하는 기업들은 늘어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작년 4분기 개인과 기업·비영리단체가 설립한 해외법인 626곳 중 중소기업이 설립한 법인은 364곳으로, 전체의 58.1%에 달한다. 이 비중은 전년 동기 55.2%보다 소폭 증가했다.
정부도 중소기업의 해외진출을 독려하고 있어 이 비중은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의 UAE 순방 당시 중소·중견기업 69개사가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했으며, 현지 기업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사례도 여럿 나왔다. 지난달에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사우디아라비아와 협약을 맺으면서 국내 중소기업의 중동 진출 여건은 더욱 개선됐다.
전문가들은 금융지원을 통해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2016년 전문학술지 ‘중소기업금융연구’에 등재된 ‘중소기업의 해외 직접투자 현황과 정책적 시사점’(이병희) 논문은 “해외 직접투자에 나서는 중소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간 격차가 확대되는 추세”라면서 “중소기업의 해외진출 확대를 통한 경쟁력 강화는 글로벌 트렌드”라고 지적했다.
선진국에서는 중소기업의 해외진출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은 일본정책금융공고가 채무보증을 통해 해외 현지투자법인이 현지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하는 ‘스탠바이 크레디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대만에서는 해외에 진출한 기업을 위한 별도의 신용보증기금을 조성하고 화교기업에 금융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 1~3월 무역적자가 작년 연간 적자의 50%를 상회하는 등 수출이 큰 문제로 부각되면서 정부대책의 필요성이 커졌다”면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서라도 자금지원을 늘려야 한다. 국내기업으로 한정된 중소기업기본법을 개정해 정책자금 지원 범위를 넓히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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