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주택에 근저당권 설정”… 전세사기 ‘시한폭탄’ 대전, 터질 것이 터졌다
은행 대출 받아 무리하게 건축
전세보증보험 가입도 어려워... 피해자들 ‘발동동’
지난 24일 오후 3시 대전 동구 가양동의 한 다가구주택. 2년전 지어져 깔끔한 외관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속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자동차가 있어야 할 주차장에는 ‘유치권 행사중’이라는 문구의 플래카드만 걸려있었고, 그 앞에는 입주민들이 버린 쓰레기가 가득했다. 현관 유리는 깨져 있었고, 우편함에 방치된 고지서들 위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해당 다가구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직장인 임모(30)씨는 “집주인으로부터 대금을 지급 받지 못한 건축사무소가 지난 2021년 7월부터 유치권을 행사하면서 현관과 주차장 사용이 금지됐다”고 밝혔다. 집주인이 무리하게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건물을 세우면서 건축사무소에 대금을 지급하지 못했고, 은행에도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한 상황이다. 이에 대전지법은 지난해 6월 해당 건물에 대해 임의경매개시결정을 내렸다.
임씨는 “집주인과 여전히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건물에 근저당이 67%가 잡혀있었지만, 당시 전세 매물도 없었고, ‘대전 지역 원룸에는 대부분 근저당이 설정돼 있다’는 공인중개사의 설득에 계약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경매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사를 가면 돈을 돌려받지 못할까 봐 은행에 대출 연장 신청을 하고 계속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최근 서구 도마동, 괴정동을 중심으로 대전 전역에서 전세 사기 피해 신고가 빗발치고 있다. 특히 인근에 ‘직장인 원룸촌’이 몰려있는 가양동에서도 피해 사례가 등장했다. 이곳은 대전복합터미널과 대전IC가 있어 출퇴근이 용이하다.
◇전세사기 취약한 다가구주택 밀집… 근저당까지 잡혀 ‘피해 막심’
조선비즈 취재에 따르면 대전 지역 피해자들의 대부분이 2030세대다. 대전은 전국에서 1인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전의 1인 가구는 24만1000가구로, 전체 가구(64만가구) 중 37.6%를 차지하고 있다. 전국 평균 비율(33.4%)보다 4%가량 높다. 대전의 1인가구 중 29세 이하가 차지하는 비율은 31.1%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30%대를 기록했다.
‘원룸’으로 불리는 다가구주택의 비율도 높다. 건축행정시스템의 시도별 건축물현황에 따르면 2022년 대전 소재의 주거용 건축물 9만894동 중 3만466동이 다가구주택이었다. 다가구주택의 비율은 33.5%로,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국에서 다가구주택 비율이 30%를 넘는 곳은 대전과 대구(30.7%)뿐이었다.
다가구주택은 전세사기에 취약하다. 다가구주택은 1개동 주택 바닥면적 합이 660㎡를 초과하지 않고 4개 층 이하인 건물을 말하며, 단독주택으로 분류된다. 다가구주택 등 단독주택은 각 구획을 분리해 소유하거나 매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건물 전체 단위로만 매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소유주 혼자 토지를 매입해 건물을 올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소유주는 은행에서 많은 금액의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은행이 건물이나 토지에 대해 근저당을 잡는 경우가 많다.
대전의 공인중개사들은 지역 내 대부분의 다가구주택에는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8년부터 부동산 붐이 불고 전세 수요가 폭증하자, 많은 투자자들이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저리로 빌려 무분별하게 다가구주택을 지었다. 가양동에서 공인중개사를 운영하고 있는 주모(74)씨는 “이 지역 신축 다가구주택은 건설 당시 적게는 7억원에서 많게는 10억원까지 대출을 받아 은행에 근저당권이 잡혀있다”며 “당장 전세 수요가 높다는 이유로 빚을 내서 건물을 무분별하게 지은 부작용이다. 터질 것이 터졌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년부터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자 전세가와 전세수요가 떨어지고, 대출 금리가 폭등하면서 이자 부담이 커졌다. 여기에 대전 전체 연립·다세대 평균 전세가율이 100.7%를 기록하며 역전세 현상까지 겹치자 집주인이 줄줄이 파산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세입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경매에 가도 돈 받기 힘들어… “다가구주택도 개별 등기해야”
문제는 세입자들이 돈을 돌려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집주인이 세입자 입주 전에 은행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면 근저당권을 설정한 금융기관이 1순위로 돈을 받는 것이다. 인천 미추홀구에서 발생한 ‘건축왕’ 남모씨의 사례와 비슷하다.
가양동에 거주하는 또 다른 피해자 송씨는 지난 2021년 6월 전셋값 9500만원에 원룸을 구해 살고 있었지만, 얼마 전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 하루아침에 쫓겨날 위기에 처해있다. 송씨는 지난해 11월 대전지법으로부터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단독주택(다가구주택)이 경매에 넘어갔으니 배당 요구 신청을 하라는 등기를 받았다. 당시 건물주는 “금방 끝난다”며 송씨를 안심시켰지만, 결국 건물은 지난 3월 15일 경매에 넘어갔다.
낙찰인은 송씨에게 4월 21일까지 방을 빼라고 통보했다.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송씨는 졸지에 갈 곳이 없어진 것이다. 은행에서 전액 대출해 전세를 구한 송씨는 본가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전세대출을 일시불로 상환해야 하기 때문에 또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송씨는 “현재 무단으로 방을 점거해서 살고 있는 사람 취급을 받고 있다. 법적으로 보호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국가에서 저리로 대출을 해준다고 했는데, 이 또한 다른 전셋집을 구해야 받을 수 있다. 전세 사기 피해자에게 다른 전세를 구하라고 하는 셈”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대전 등 지방 도시는 수도권보다 상대적으로 피해 회복을 위한 여건이 부족한 상황이다. 부동산 관련 정보가 부족해 피해자들끼리 구성하는 커뮤니티도 활성화되지 못했고, 피해자지원센터도 독립적으로 마련되는 것이 아니라 시청의 한 부서에서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 어렵다.
다가구주택 거주자가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기도 쉽지 않다. 보증보험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전세보증금과 선순위채권을 더한 금액이 주택가격 이내여야 하는데, 다가구주택은 애초에 주택 가격이 높지 않다는 점에서다.
보증한도는 주택가격에서 선순위채권 등을 빼야 하는데, 다가구주택은 여기에 선순위 전세보증금도 더해야 한다. 선순위 전세보증금은 다른 호실에 거주하는 세입자(확정일자가 빠른 사람들)의 보증금을 의미한다. 즉 전세로 들어가려는 집에 잡혀있는 빚과, 먼저 전세 계약을 한 세입자의 보증금 합이 보증한도를 넘어서면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다가구주택은 각 호실마다 임대를 놓기 때문에 신축이 아닌 이상 선수위 보증금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선순위채권이 주택가격의 60% 이내여야 한다는 조건도 있다.
서원석 중앙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방은 주택 가격이 요동 칠 경우에 가장 먼저 피해를 본다. 특히 다가구주택의 경우에는 아파트보다 상대적으로 가격 방어도 되지 않아, 전세사기 등 주택시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 지방 다가구주택의 피해가 클 것”이라며 “전세사기가 발생했을 때 각 호실별로 방어권이 생기도록 다가구주택도 개별 등기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대전 서부경찰서는 지난달 말 서구 도마동과 괴정동에 거주하는 전세사기 의심 피해자 20여명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고소장을 접수했다. 현재까지 신고된 피해 규모는 20여억원이지만, 중구 문창동과 동구 가양동 등 대전 전 지역에서 피해 신고가 빗발치고 있어 50억원 이상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대전시는 전세피해지원창구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창구를 통해 임차인 5명이 피해확인서를 받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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