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염수 방출, IAEA를 믿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그러니까 아주 거칠게 비유하자면 이런 상황이다. 옆집에 처치하기 곤란한 쓰레기가 발생했다. 인체에 매우 해롭고 위험한 쓰레기라서 당장 내다버리지 못하고 일단 그 집이 끌어안고 있었다. 이웃들은 잔뜩 경계했다. 그 집에서 나오는 물건들에 유해 성분이 묻어 있지 않은지, 몰래 쓰레기를 내다버리지는 않는지 감시했다. 그 집도 어쨌든 집을 복구하고 싶으니 열심히 청소를 했는데 그때 또 청소로 인한 폐기물이 잔뜩 발생했다. 더러워진 집 안을 씻어낸 물이 잔뜩 모였다. 그 또한 유해한 성분이 가득이라 바깥에 내다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가끔 밤에 몰래 내다버리다 이웃에 들킨 적도 있었다.
어느 날 그 집이 선언을 했다. 이대로 가다간 집 안이 오염수를 담은 통으로 가득 차게 생겼다며, 마을 강에 내다버리겠다는 것이다. 하루에 조금씩, 30년 동안, 꾸준히. 대신 정화 장치를 가동해서 유해 물질을 대부분 제거하겠다고, 수돗물을 잔뜩 섞어 희석까지 하니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다. 외부 검사기관을 불러서 객관적으로 안전성 검증도 받겠다고도 약속했다. 그 집이 선포한 방출 시기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다들 마을 강에서 잡은 물고기로 식사를 하고 아이들이 그곳에서 멱 감고 놀기도 하는 상황. 이웃들은 모두 혼란에 빠졌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이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 동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 처한 상황을 빗댄 이야기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이 다가오고 있다. 일본은 올봄이나 여름부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바다로 내보낼 계획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파손된 후쿠시마 원자로의 핵연료봉을 냉각시키는 과정에서 오염수가 대량 발생했다. 거기에 원자로 내부로 흘러 들어간 빗물과 지하수까지 더해진 상태다. 2023년 2월 기준 132만t, 대용량 탱크 1000여 개를 가득 채울 양이 모여 있다. 오염수를 바다로 내보내기 위한 1㎞짜리 해저터널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일본 정부는 내보낼 물을 ‘오염수’ 대신 ‘처리수(treated water)’라고 부른다. ALPS(Advanced Liquid Processing System)라는 정화 장치로 대부분의 방사성 핵종을 걸러내 ‘처리한’ 물이라는 뜻이다. 처리수는 바닷물에 또 한 번 희석해 방류하기 때문에 해양 생태계나 이웃 국가에 미치는 방사능 위험이 극히 미미하다고 주장한다. 인체 피폭선량 0.00003~0.00004mSv(밀리시버트)로 자연에서 인간이 1년 동안 받는 방사선량 2.1mSv의 5만~7만 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ALPS로도 걸러내지 못하는 삼중수소(트리튬) 또한 다량의 물(550배)과 섞어 배출 기준 6만Bq/L(리터당 베크렐)의 40분의 1인 1500Bq/L 이하로 비율을 낮추어 내보낼 거라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협력 또한 일본 측 주장의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일본은 2021년 4월 처리수(오염수) 해양 방류 계획을 발표하면서 IAEA에 그 계획과 이행 과정에 대한 안전성 검토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IAEA는 2021년 7월 일본의 요청을 수락하고 안전성을 검토하기 위한 국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TF는 지금까지 9차례 회의를 열고 2022년 2월과 11월, 2023년 1월 현지 조사를 벌였다. TF는 총 6회 중간 보고서를 내고 올해 안에 전체를 포괄하는 최종 보고서를 낼 계획이다. 지난 4월5일 TF의 네 번째 보고서가 나왔다.
‘신뢰할 만하다’는 국내 언론의 해석 오류
대다수 국내 언론은 이 4차 보고서를 통해 TF가 일본의 방류 계획을 “신뢰할 만하고 지속 가능하다”라고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보고서 원문을 살펴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TF는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이 보고서와 IAEA의 검토 아래 있는 다른 임무 보고서는 진행 보고서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며, IAEA의 검토가 계속 진행되는 동안에는 최종 결론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보고서 3쪽에 명시되어 있다.
“신뢰할 만하고 지속 가능한(reliable and sustainable)”이라는 표현은 TF가 검토하는 8개 주제 중 8번째인 ‘직업적 방사선 보호(Occupational radiation protection)’ 챕터에 단 한 번 나온다. 작업 현장에서 방사능에 노출되는 도쿄전력이나 계약업체 작업자들에 대한 피폭 보호 프로그램이 믿을 만하게 갖춰져 있다는 뜻이다. 방류수 자체의 안전성이나 방류 감시체계에 대한 신뢰와는 관련이 없다.
IAEA 4차 보고서를 통해 TF는 방류수에서 어떤 방사능을 어떻게 측정할지에 대해 도쿄전력이 세운 방법론이 “충분히 보수적이지만 현실적”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일본 측에서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도쿄전력의 환경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으며 그 프로그램이 ‘포괄적(comprehensive)’이라는 데에 동의했다.
다만 몇 가지를 지적했다. 훗날 언젠가는 그 위치에서 물고기를 잡고 해산물을 채집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방류 위치 북쪽 3㎞ 근해에서 잡은 해산물의 소비를 방사능 노출량 계산에 고려하지 않은 점, 유기결합 삼중수소(OBT, 삼중수소가 생물체 몸 안에 들어가 유기화합물과 결합할 때 생성되는 물질)의 형성 및 관련 선량의 불확실성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점 등이다. 특히 TF는 유기결합 삼중수소 이슈에 대해 “많은 이해 당사자의 관심 주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라며 일본 측에 추가 설명을 붙일 것을 제안했다. 생물체 내 유기결합 삼중수소의 위험성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과학적으로 정확히 규명된 바가 없다.
IAEA가 오염수 방류 계획의 정당성을 뒤집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일본이 세계에서 IAEA 분담금을 세 번째로 많이 내는 국가라 IAEA가 편향적일 수 있다’는 의혹은 과한 의심으로 치더라도, IAEA라는 기구의 설립 목적 자체가 핵의 평화로운 ‘사용’을 장려하고 원자력산업 발전을 ‘촉진’하는 일이다. 핵무기에 대해서는 강하게 규제하고 감시하지만, 원자력발전과 사고 처리에 대해서는 위험과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거나 최소화될 수 있도록 각 국가에 일종의 ‘컨설팅’과 ‘지원’을 제공해주는 역할이 더 크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일본이 오염수 해양 방출 계획을 발표하기도 전인 2020년 2월 이미 그 방안에 관해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국제 관례에도 부합한다”라며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물론 IAEA 검증의 과학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최소한의 장치는 있다. 이번 IAEA TF에는 한국,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베트남, 아르헨티나, 마셜제도 등 11개 국가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에서 참여하는 전문가는 김홍석 원자력안전기술원 책임연구원이다. 다만 각국 전문가들은 TF 참여 시 모든 정보를 IAEA 외부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비밀유지 계약에 서명했다. TF의 논의 과정과 결과는 IAEA에서 발간되는 보고서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본게임’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IAEA 검증의 한계는 명확하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배출되는 오염수와 관련된 모든 위험과 안전성을 판단하지 않는다. 검증 범위가 명확히 한정되어 있다. 일본의 오염수 방출 계획과 그 이행 과정이 IAEA 국제기준에 부합하는지 여부다. 판단의 근거는 대부분 일본 측이 제공하는 자료들이다. 오염수에 섞인 삼중수소가 장기적으로 해양생태계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ALPS가 30년 넘는 동안 한 번의 고장 없이 성능을 잘 유지할 수 있을지 등 일어날 만한 수많은 경우의 수에 대해 IAEA는 모두 검토하지 않는다.
게다가 ‘본게임’인 폐로(閉爐)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ALPS로 걸러내고 남은, 끈적이는 방사능 슬러시도 점점 늘어나 준비된 저장용량을 가득 채워가고 있다. 오염수를 내다버리는 게 정당화되고 나서 본격 유해 쓰레기 처리가 시작될 때 이웃들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IAEA의 이번 TF 4차 보고서 첫 장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후쿠시마 원전 기지의 포괄적인 해체 활동은 이번 임무와 IAEA의 전반적인 안전 검토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간주된다.” 표지 바로 뒷장에는 이런 말도 쓰여 있다. “이 보고서에 포함된 정보의 정확성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주의를 기울였지만 IAEA와 그 회원국은 이 보고서의 사용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결국 위험과 불확실성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일은 각 국가가 스스로 판단할 몫이다. 그 일은 과학인 동시에 정치다. 국제 정치뿐 아니라 국내 정치도 결부되어 있다. 현재 가장 강경하게 반대하는 국가는 중국과 러시아다. 지난 2월4일 중국 시진핑 주석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일본의 오염수 해양 방류 계획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태평양 섬나라들로 이루어진 태평양도서국포럼(PIF)은 지난 1월18일 헨리 푸나 사무총장 명의로 “모든 당사자가 안전하다는 걸 확인할 때까지 (오염수) 방출은 없어야 한다는 게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방일 당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 국민의 이해를 구해나가겠다”라는 등 오염수 방출 계획에 대해 긍정적으로 발언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다만 반대 입장은 표명하지 않고 “국민의 안전과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원칙 아래 최선의 노력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것”이라는 두루뭉술한 입장을 내고 있다. 야당과 시민단체 등은 정부가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 등 가능한 제재 방안도 검토하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본 측 계획을 사실상 지지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웃집에 발생한 유해 쓰레기 문제는 이제 마을 문제를 넘어서 우리 집안 문제가 되어버렸다.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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