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기후변화영향평가 ‘무용지물’…반년간 평가 협의 2건뿐
‘온실가스 다배출’ 공장·공항 빠져
국가의 주요 계획이나 대규모 개발사업의 기후변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기후변화영향평가 제도’가 시행된 지 반년이 넘었지만, 현재까지 평가 협의가 진행 중인 것은 2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대규모 공항 건설 사업과 온실가스 다배출 공장 등이 적용 대상에서 빠지면서, 기후변화영향평가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겨레>가 2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윤건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을 통해 입수한 자료를 보면, 환경부가 지난해 9월25일 기후변화영향평가 제도를 시행한 이후, 협의 실적이 전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통상적으로 평가 협의 완료까지 6개월 정도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해 협의가 진행 중인 건을 살펴보니, 산림청의 ‘제2차 산림복지진흥계획’과 경남 창녕군의 관리계획 등 고작 2건에 그쳤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관련 용역 계약을 체결한 뒤 준비 단계에 있는 사업이 10여건이 있다”며 “앞으로 협의 진행 건수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영향평가는 국가의 주요 계획이나 대규모 개발사업의 기후변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해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위기 적응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로, 공항과 항만 등 국가 주요 시설을 비롯해 산업단지와 공장 등 산업의 말단에서 국가가 제시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탄소중립계획)을 실현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대상 사업자는 탄소중립계획상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맞춰 해당 사업의 감축 목표와 부문별 감축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온실가스 다배출’ 공장엔 적용 안되는 기후변화영향평가
기후변화영향평가 실적이 이처럼 미흡한 건, 애초 평가 적용 대상을 너무 좁게 잡는 등 제도 설계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영향평가는 △에너지 개발 △산업단지 조성 △공항 건설 등을 포함한 10개 분야에 적용된다. 하지만 석유화학 공장을 비롯해 철강, 시멘트 공장 같은 온실가스 다배출 시설은 아예 기후변화영향평가 대상에서 빠져 있다. 현행 규정은 50만㎡ 이상의 산업단지에 있을 경우에만 이들 시설을 기후변화영향평가 대상으로 삼고 있다. 에너지·환경 싱크탱크 넥스트의 정세록 선임연구원은 “2020년 1월부터 2022년 5월까지 진행된 환경영향평가 사업 중 해당 기준을 충족하는 사례는 전체 산업단지 협의 86건 중 35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런 제도적 허점 탓에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하는 ‘샤힌 프로젝트’ 역시 기후변화영향평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의 투자로 유명해진 샤힌 프로젝트는 9조2580억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의 스팀 크래커(플라스틱 재료 생산 시설)와 부대시설을 짓는 에쓰오일의 석유화학 공장 증설 계획이다. 나프타를 고온에서 열분해하기 때문에 온실가스가 많이 나온다. ‘산업계 봐주기’ 논란을 빚었던 ‘탄소중립계획’이 발표될 때까지만 해도 이 프로젝트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공개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이동주 의원(민주당)의 거듭된 질의에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연간 330만t이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줄여준 산업부문 온실가스 배출량(810만t)의 40%에 가까운 수준이다.
샤힌 프로젝트의 경우, 2015년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해 2017년과 2019년, 2022년 세차례 변경 협의를 마쳤는데 당시 환경부는 변경 협의(동의)를 내주면서도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지적은 이뤄지지 않았다.
유예 기간 덕분에 평가 피한 가덕도·제주 제2공항
가덕도 신공항과 제주 제2공항도 기후변화영향평가를 피한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부가 기후변화영향평가 제도 도입 당시 공항·항만 개발 등을 자동으로 평가 대상으로 분류하면서도 공항 건설 사업에 대해선 1년 유예 기간을 부여한 데 따른 것이다.
사업자는 각각 전략환경영향평가와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기후변화영향평가서를 제출해야 하지만, 공항 사업자인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30일 가덕도 신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함으로써 기후변화영향평가를 면제받은 걸로 확인됐다. 제주 신공항도 기후변화영향평가서 제출 없이 전략환경영향평가 협의를 지난달 6일 완료했다.
넥스트는 ‘기후변화영향평가 도입을 위한 제안’ 보고서에서 기존 환경영향평가에서 나타났던 문제점이 기후변화영향평가에도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세록 선임연구원은 “기존 환경영향평가의 온실가스 평가 항목이 그러했듯 현행 기후변화영향평가는 단순히 관련 법령, 국가 및 지자체의 감축 목표를 나열하는 데 그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현재 2050년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만 기재하면 되는데 그때까지 각 사업의 누적 배출량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국가 탄소중립계획과의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개선책을 제안했다.
윤건영 의원은 “시행 반년이 넘었는데도 협의 완료 실적이 전무한 것을 봐선 환경부가 의지를 가졌는지 의문”이라며 “제도 보완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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