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후의 팔팔구구] ‘삼천갑자 동방삭’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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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에 관해서 내려오는 명언들을 보면 대개 인생은 짧다는 말이 더 많다.
옛날 중국에 동방삭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삼천년을 살았고 삼천년 동안 기른 수염이 삼천자나 되었다고 한다.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인재를 구한다는 소식을 천하에 공포하자 제(齊)나라 사람 동방삭이 대나무 한짐에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글을 써서 무제에게 올렸다.
동방삭의 장수에 관한 전설적인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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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년 살면서 수염도 삼천자”
초등학교때 선생님 하신 설명
역사와도 속설과도 맞지 않아
일제강점기 한국문화말살교육
나처럼 교사도 피해자였던 것
수명에 관해서 내려오는 명언들을 보면 대개 인생은 짧다는 말이 더 많다. ‘사람이 얼마나 살아야 짧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보니 나만의 우스운 일화 하나가 기억났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돼 다시 우리 문화를 찾게 되었다. 일본인 교사들이 물러가고 한국인 교사들이 부임해 갑자기 한국문화를 가르치자니 애로가 많았을 것이다. 선생님들도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한국문화 말살 교육을 받았을 때니 이런 교육을 받지 않은 지금의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다를 것이다.
‘삼천갑자 동방삭(三千甲子 東方朔)’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설명을 붙인다. 처음 부임해온 선생님이 이 말을 놓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면서, 중국사람들은 국토가 넓어서 그런지 허풍도 심하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옛날 중국에 동방삭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삼천년을 살았고 삼천년 동안 기른 수염이 삼천자나 되었다고 한다. 상상하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선생님 말씀이니 굳게 믿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동양사를 배우면서 선생님에게 들은 설명은 다르다. 기억나는 것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인재를 구한다는 소식을 천하에 공포하자 제(齊)나라 사람 동방삭이 대나무 한짐에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글을 써서 무제에게 올렸다. 동방삭은 변론에 뛰어났으며 해학과 재치로 무제의 총애를 받았다.
속설에 따르면 동방삭은 서왕모(西王母)의 복숭아를 훔쳐 먹었기 때문에 죽지 않고 장수했다고 해 ‘삼천갑자 동방삭’이라고 불렀다. 이 이야기는 <한서(漢書)>의 ‘동방삭전(東方朔傳)’에 나온다. 삼천갑자는 60갑자가 3000번이므로 18만년이 된다. <산해경(山海經)>에서는 서왕모가 서방 곤륜산(崑崙山, 옥산·玉山)에 사는, 사람 얼굴에 호랑이의 이빨(虎齒), 표범의 꼬리(豹尾)를 가진 신인(神人)이라고 나와 있다. 민간에서는 불사의 약을 지닌 선녀라고 전해진다. 서왕모에 관한 이야기는 한대(漢代)에 이르러 민간에 널리 퍼졌다.
동방삭의 장수에 관한 전설적인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알려졌다. 저승사자가 실수로 동방삭을 염라대왕 앞에 끌고 갔다. 잘못 데리고 온 것을 안 염라대왕은 저승사자에게 빨리 데려다주라고 호통을 쳤다. 동박삭은 자신의 수명이 궁금해서 염라대왕에게 물었다. 그런데 염라대왕이 보여준 명부를 보니 수명이 고작 일갑자(一甲子)였다. 동방삭은 몰래 붓으로 획을 더 그어 삼천갑자로 고쳤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염라대왕이 동방삭을 다시 잡아 오라고 사자를 보냈지만, 그때마다 동방삭은 저승사자를 피해 도망 다녔다.
수소문 끝에 동방삭이 조선 땅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저승사자는 동방삭을 잡을 수 있는 꾀를 생각해내고 강가에 앉아서 숯을 씻었다. 동방삭이 지나가다가 그 광경을 보고 물었다. “도대체 왜 숯을 강물에 씻는 거요?” “숯이 검어서 내 옷을 더럽히기에 희게 만들려고 빠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동방삭은 배꼽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삼천갑자를 살았지만 숯을 강물에 빠는 놈은 생전 처음 보네.” 이렇게 해서 동방삭은 저승사자에게 잡혀가게 되었다. 당시 저승사자가 숯을 빤 곳이 바로 탄천(炭川)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동방삭은 기원전 154년부터 기원전 93년까지 62년을 살다가 병사했다. 동방삭이 겨우 예순두살을 살았는데 삼천년을 살았다고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우습다. 나는 이 생각을 하면 담임선생님이 무식해서가 아니라 나와 똑같은 한국문화 말살 교육을 철저히 받았기 때문에 그런 잘못된 해석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근후 이화여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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