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밥상] 씹을수록 쌉싸래한 명품 조연 ‘모멀조베기’…친정엄마 손맛 그립네

서지민 2023. 4. 26.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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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향토음식 '모멀조베기'는 음식 이름이 생소하지만 뜻을 풀어보면 어렵지 않다.

모멀은 메밀, 조베기는 수제비를 뜻하는 제주 사투리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어느새 쉰살을 훌쩍 넘긴 한 토박이는 모멀조베기를 이렇게 기억한다.

60∼70대 '제주 할망'들은 모멀조베기 대신 '메밀 꿀물'을 마시기도 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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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밥상] (28) 제주 ‘모멀조베기’
제주지역 대표 산후조리 음식
미역·무 함께 끓인 맑은국에
숟가락으로 메밀반죽 떠 넣어
요즘은 들깨탕·육개장과 궁합
쫀득함 없지만 메밀향 존재감
제주 서귀포에 있는 ‘소낭밭 해장국’ 식당은 모멀조베기를 넣고 끓인 고사리 육개장을 선보인다. 서귀포=현진 기자

제주 향토음식 ‘모멀조베기’는 음식 이름이 생소하지만 뜻을 풀어보면 어렵지 않다. 모멀은 메밀, 조베기는 수제비를 뜻하는 제주 사투리다. 순하고 부드러운 메밀수제비 반죽은 미역국·들깨탕·육개장 어디에 넣어도 잘 어울리는 명품 조연이다.

“제주에선 아기를 낳으면 꼭 친정엄마가 모멀조베기를 해 먹였지. 나처럼 50∼60대 나이 되는 사람이면 많이들 가지고 있는 추억일 거야.”

제주에서 나고 자라 어느새 쉰살을 훌쩍 넘긴 한 토박이는 모멀조베기를 이렇게 기억한다. 요즘도 제주에 있는 산후조리원에선 출산 직후 산모에게 일주일 동안 모멀조베기를 제공한다. 메밀은 제주에서 흔히 쓰는 재료로 특히 출산을 막 끝낸 산모에게 더없이 좋은 건강식품이다. 메밀 속 핵심 성분인 루틴이 모세혈관을 강화해줘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고 부기 빼는 데 탁월하다. 60∼70대 ‘제주 할망’들은 모멀조베기 대신 ‘메밀 꿀물’을 마시기도 했을 정도다. 따뜻한 물에 메밀가루를 풀어 꿀을 타 마시며 기력을 보충했다.

모멀조베기 만드는 재료는 간단하다. 메밀가루·미역·무만 있으면 된다. 물에 숭덩숭덩 크게 썬 무를 넣고 소금으로만 간을 한다. 제주산 미역은 다른 곳에서 난 것보다 부드러워 미리 기름에 볶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너무 오래 삶으면 식감이 흐물흐물해지니 물이 팔팔 끓은 다음 넣어도 된다. 메밀 반죽은 찰기가 없어 손으로 뜯어 수제비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메밀가루에 3배 조금 넘는 양의 물을 넣고 갠 다음 숟가락으로 조심조심 떠서 끓는 물에 넣으면 된다. 반죽이 숟가락을 타고 국물로 미끄러지듯 들어간다. 메밀은 ‘품에 잠깐 안고 있다가 먹어도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빨리 익는다.

다만 요즘은 제주에서 모멀조베기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옛 음식을 찾는 이가 차츰 줄자 전문점들이 문을 닫아서다. 또 전통 방식 그대로 맑은국으로 나오는 형태는 토박이들이 집에서 향수를 불러일으킬 때나 먹는다. 식당에선 젊은 세대를 겨냥해 들깨탕에 모멀조베기를 추가하거나 고사리 육개장에 넣어 내놓는다.

제주 서귀포시 회수동에 있는 ‘소낭밭 해장국’에선 육개장에 든 모멀조베기를 맛볼 수 있다. 형태를 알아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푹 익힌 고사리 사이사이 회색빛 도는 모멀조베기가 고개를 내민다. 후후 불어 한입 깨물어보니 부드럽게 숭덩 잘려 나간다.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수제비의 쫀득함은 없다. 대신 씹을수록 쌉싸래한 메밀향이 난다. 국물에서도 메밀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메밀가루를 아낌없이 풀어 걸쭉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얼큰한 국물을 들이켜면 속이 뜨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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