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내 땅 가져가 개발하더니 4년 뒤 보상 규모는 반 토막"

김동욱 2023. 4. 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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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대토 보상' 제도의 그림자
국가사업에 땅 수용 당한 원주민 
땅으로 보상 신청, 3, 4년 하세월 
곳곳서 대토 보상 꺼리는 분위기 확산
2018년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된 경기 고양시 장항지구 조감도. LH 제공

경기 고양시에 사는 김모(65)씨는 2018년 12월 부친에게 물려받은 인근 장항동 토지 1,121㎡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넘겼다. 해당 지역이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돼 인근 지역 땅이 전부 국가에 강제 수용됐기 때문이다. 당시 LH가 제시한 보상금은 4억4,700만 원이었다.

김씨는 고민 끝에 LH가 추후 조성한 땅으로 대신 받는 '대토 보상'을 선택했다. LH가 적극 권유하기도 했고, 새로 조성된 땅을 받는 게 노후에 더 도움이 될 걸로 봤기 때문이다. 기대는 빗나갔다. 길어야 2년 정도로 예상했던 대토 공급은 4년이 훌쩍 지난 최근에서야 이뤄졌다. 더 황당한 건 대토 공급가격이었다. 김씨가 점찍은 업무용지의 3.3㎡당 공급가격은 3,160만 원으로 4년 전 LH가 제시한 추정가격(3.3㎡ 1,710만 원)보다 85%나 높았다. 김씨는 "공급가격이 폭등한 탓에 실제로 보상받을 수 있는 땅이 반 토막 났다"며 "이럴 줄 알았다면 대토 보상은 고려도 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공공택지개발이 진행 중인 수도권 신도시 곳곳에서 대토 보상을 둘러싼 원주민의 불만이 쏟아지면서 아예 대토 보상 신청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로 인해 토지 수용 보상기간이 길어지고, 그만큼 공공택지개발 사업도 늦어지면서 50만 가구 공공주택 공급을 약속한 현 정부의 역점 사업도 차질을 빚을 거란 우려가 커진다.


정부도 장려하는 대토 보상

대토 보상은 정부의 공익사업으로 땅을 수용당한 지주에게 현금 대신 추후 지구 내 다른 토지를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제도다. 소유 중인 땅을 넘기고 새로운 땅을 넘겨받는 구조로, 보통 현금보상금만큼 땅을 받는다.

정부도 대토 보상을 적극 장려한다. 공공택지개발 사업의 보상 규모는 수십조 원에 이를 만큼 막대해, 현금 보상 위주로 이뤄지면 그 자금이 인근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집값·땅값 상승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인근 지역으로 막대한 현금이 유입되는 걸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바로 대토 보상이다.

더구나 현금 보상은 보상금 규모를 두고 땅주인과 이견이 첨예하다 보니 보상 기간이 오래 걸리지만 대토 보상은 반대다. 미래 기대수익이 있는 만큼 땅주인들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수월하다.


4년 4개월 만에 새 땅 공급…가격은 85%↑

그래픽=박구원 기자

하지만 최근 들어 대토 보상 인기가 급락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새 토지를 받기까지 예상보다 시간이 한참 걸리는 데다 공급가격이 애초 제시한 추정가를 크게 웃돌아 기대수익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정가로 대토 보상을 유도할 땐 언제고 뒤늦게 뒤통수를 쳤다"는 뒷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본보가 최근 5년 동안 이뤄진 LH 대토 보상 현황을 살펴봤더니 실제 이런 추세가 두드러졌다. LH는 2018년 12월 경기 고양장항 공공주택지구에 수용된 토지주를 상대로 대토 보상 신청을 받았다. 당시 LH가 제시한 상업용지 추정가격은 3.3㎡당 2,020만 원, 업무용지는 1,710만 원이었다. LH는 4년 4개월 만인 이달 초 대토 공급 공지를 냈다. 여기에 제시된 공급가격은 상업용지가 3.3㎡당 3,540만 원, 업무용지는 3,160만 원이었다. 상승률이 각각 75%와 85%에 이른다. 이는 인근 공시가 상승률(평균 22%)의 세 배를 훌쩍 넘는다.

지난해 말 2년 10개월 만에 대토 공급이 이뤄진 경기 성남복정 지구도 마찬가지다. 대토 보상 신청을 받은 2020년 3월 당시엔 공동주택용지 추정가격이 3.3㎡당 2,660만 원, 업무용지는 2,600만 원이었다. 하지만 실제 공급가격은 각각 31%와 62% 오른 3.3㎡당 3,480만 원과 4,210만 원이었다. 공동주택용지는 대토 신청자들이 포기하면서 일반에 공급됐다. 경기 성남금토지구는 3년 4개월 만에 최근 대토 공급 공지를 냈는데 이곳 역시 지주들의 반발이 극심하다. 2020년 2월 제시한 상업용지 추정가는 3.3㎡당 3,950만 원이었는데 최근 공급가격은 이보다 27% 높은 3.3㎡당 5,000만 원으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토지주들은 LH가 토지사용 가능시기를 늦추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가령 고양장항의 경우 4년 4개월 만에 토지공급이 이뤄졌는데 업무용지의 토지사용 가능시기는 2024년 12월 31일부터다. 성남금토는 2025년 4월부터 이용할 수 있다. 토지 개발까지 대략 7, 8년이 걸리는 셈이다.


지주들 "경기 침체에도 30% 인상이 합당?" 반발

수도권 공공주택지구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LH는 이에 대해 "추정가격은 말 그대로 추정치이고 추후 공급시점에 공급가격이 확정됨을 사전에 안내하고 있다"며 "공급가격 역시 임의로 정하는 게 아니라 감정평가 법인이 평가한 가격을 토대로 한다"고 설명했다. 2018년부터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만큼 감정가도 뛰었다는 얘기다.

땅주인들은 반발한다. 공급가격을 올린다 해도 예측 가능 범위 안에 있어야 하는데 한 번에 30% 넘게 올리는 건 이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한 토지주는 "지난해 초부터 부동산 경기가 꺾였는데 대토 감정가는 수직상승했다"며 "이런데도 아무런 설명도 없이 받으면 받고 말면 말라는 LH 태도에 화가 난다"고 토로했다. 토지주가 대토 보상을 포기하면 애초 받기로 한 현금에 3년 만기 국고채 금리(1~2%)를 붙여 돌려받는다. LH로선 대토 보상 지주들의 보상금을 연 1~2% 금리로 오랜 기간 사용한 셈이라 손해 볼 게 없다.

업계에선 앞으로 대토 신청률이 급감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실제 2018년 10월 수서역세권 사업 때만 해도 대토 보상 신청률이 51%에 달했는데, 2021년 보상을 개시한 경기 하남교산, 과천 공동주택지구의 대토 보상 신청률은 10% 남짓으로 파악된다.

한 건설사 고위관계자는 "부동산 경기도 꺾인 데다 대토 공급도 한참 늦어 현재 공공택지개발이 진행 중인 경기 고양창릉, 안양매곡, 수원당수지구 등의 원주민들도 대부분이 대토 보상을 꺼리는 분위기"라며 "정부가 50만 공공분양을 내걸었는데 당장 보상 업무부터 난항을 겪을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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