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논점]“비대면 진료 없어지면 한밤중 아이가 아플 때 어떡하죠…”
서정보 논설위원 2023. 4. 26. 03:04
한시 허용 비대면 진료 제도화 논란
● 초진 vs 재진
하지만 비대면 진료를 초진과 재진 중 언제부터 허용할 것인지를 놓고는 갈등이 심각하다. 정부-의협의 비대면 진료 합의는 재진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현재 국회에 발의된 5개 법안 중 4개도 초진은 허용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비대면 진료 앱을 운영해온 스타트업 관련 업체들의 반발이 거세다. 스타트업 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산하 원격의료산업협의회(원산협)는 그동안 초진이 99%에 달하는데 재진만 허용하는 건 말이 안 되고 기업들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14일부터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자는 인터넷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김봉진 배달의민족 창업자, 박재욱 쏘카 대표, 이수진 야놀자 대표, 이승건 토스 대표, 이승재 오늘의집 대표 등 유명 스타트업 대표들이 잇따라 서명에 나섰다. 일주일 만에 10만 명을 넘었다. 이들은 비대면 진료가 정치권의 눈치 보기로 ‘제2의 타다’가 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3000만 건이 넘는 비대면 진료가 이뤄지면서 플랫폼 사고가 없었는데도 허가제를 실시하는 것은 지나친 규제”라고 말했다.
《코로나19 거리 두기로 인해 수십 년간 풀지 못했던 의료계의 숙제가 단번에 시행된 것이 있다. 바로 비대면 진료다. 정부는 2020년 2월 코로나19 위기경보 단계가 ‘심각’이 되자 유무선 전화나 화상통화를 이용한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지난해 12월 까지 3661만 건, 1379만 명을 상대로 비대면 진료가 이뤄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조만간 ‘코로나19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 상태’를 해제할 예정이다. 여기에 발맞춰 우리 정부가 코로나19 단계를 ‘심각’에서 ‘경계’ 이하로 낮추면 비대면 진료의 법적 근거가 사라진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추진 중이고, 국회에도 5개의 법안이 발의돼 있다. 하지만 비대면 진료의 초진 허용을 놓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 비대면 진료 자체는 허용
정부는 2월 대한의사협회와 의료현안 협의체에서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의 비대면 진료 제도화 추진에 합의했다. 이런 합의가 가능했던 것은 3년 가까운 비대면 진료의 성과가 썩 괜찮았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2020년 전화로 진료를 받은 환자 및 가족 50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77.8%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87.8%는 ‘재이용 의향이 있다’고 했다. 비대면 진료에 따른 심각한 의료 사고는 확인되지 않았다. 처방 과정에서 누락, 실수 등 5건만 정부에 보고됐다. 또 전체 진료 건수의 86.2%는 의원급 의료기관이 담당했다. 이를 근거로 찬성 측에서는 비대면 진료의 효용성과 안전성이 검증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는 2000년 시범사업을 처음 실시한 이래 역대 정부에서 대부분 추진했으나 의료계의 반대로 무산됐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뜻밖의 실험을 통해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몰려 동네의원 설 자리 없어진다” “심각한 의료 사고가 발생해 국민 건강을 해친다”는 기존 논리의 설득력이 약해졌다. 이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든 비대면 진료가 계속 허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국가 중 비대면 진료 자체를 금지한 국가는 우리나라 외에는 없다.
비대면 진료는 2000년 시범사업을 처음 실시한 이래 역대 정부에서 대부분 추진했으나 의료계의 반대로 무산됐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뜻밖의 실험을 통해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몰려 동네의원 설 자리 없어진다” “심각한 의료 사고가 발생해 국민 건강을 해친다”는 기존 논리의 설득력이 약해졌다. 이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든 비대면 진료가 계속 허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국가 중 비대면 진료 자체를 금지한 국가는 우리나라 외에는 없다.
● 초진 vs 재진
하지만 비대면 진료를 초진과 재진 중 언제부터 허용할 것인지를 놓고는 갈등이 심각하다. 정부-의협의 비대면 진료 합의는 재진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현재 국회에 발의된 5개 법안 중 4개도 초진은 허용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비대면 진료 앱을 운영해온 스타트업 관련 업체들의 반발이 거세다. 스타트업 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산하 원격의료산업협의회(원산협)는 그동안 초진이 99%에 달하는데 재진만 허용하는 건 말이 안 되고 기업들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14일부터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자는 인터넷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김봉진 배달의민족 창업자, 박재욱 쏘카 대표, 이수진 야놀자 대표, 이승건 토스 대표, 이승재 오늘의집 대표 등 유명 스타트업 대표들이 잇따라 서명에 나섰다. 일주일 만에 10만 명을 넘었다. 이들은 비대면 진료가 정치권의 눈치 보기로 ‘제2의 타다’가 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3000만 건이 넘는 비대면 진료가 이뤄지면서 플랫폼 사고가 없었는데도 허가제를 실시하는 것은 지나친 규제”라고 말했다.
반면 의료계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간 비대면 진료는 전화를 통한 문진이 80%를 차지했다. 의료계는 촉진 청진 등으로 환자의 상태를 체크할 수 없어 정확한 진단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주요 7개국(G7) 중 초진 비대면을 허용한 국가는 영국, 캐나다처럼 평소 의사를 대면하기 힘든 나라들이며 미국도 일부 공공의료 대상자에게 내년 말까지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비대면 진료에서 환자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초진 불가, 재진 환자 위주’ 방식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 의료산업 주도권 쟁탈전
서로 간에 진실 공방도 벌어지고 있다. 의료계는 원산협의 99% 초진 주장은 틀렸다고 한다. 의료계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인용해 코로나19 기간 비대면 초진은 18.5%, 재진은 81.5%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원산협은 이 자료에서 집계한 1832만 건 중 초·재진 구분이 불가능한 경우가 843만 건(46%)이나 된다고 주장했다. 비대면 의료 현장에선 초·재진 구분이 잘 안된다는 것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정확한 숫자는 18.5∼99% 사이에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는 ‘국민 건강’, 산업계는 ‘국민 편익’을 내세우지만 서로 물러설 수 없는 건 비대면 진료가 의료산업의 주도권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초진을 허용할 경우, 플랫폼이 환자들의 의료기관 선택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을 꺼린다. 환자가 비대면 의료기관을 검색할 때 플랫폼이 ‘가장 가까운 곳’ ‘가장 평가가 좋은 곳’ 등 조건을 달아 보여줄 수 있다.
또 ‘프리미엄 서비스’ 같은 이름으로 광고료를 낸 병·의원부터 소개할 가능성이 높다. 가맹 병·의원이 많아질수록 플랫폼의 시장 장악력도 커져 병·의원이 플랫폼에 종속될 수 있다. 반대로 재진만 허용할 경우 환자의 병·의원 선택은 대부분 ‘초진한 병·의원’으로 한정된다. 비대면 플랫폼으로선 확실한 수익 구조를 만들기 어려워진다.
● 다음 달 중단되면 환자 불편 예상
● 의료산업 주도권 쟁탈전
서로 간에 진실 공방도 벌어지고 있다. 의료계는 원산협의 99% 초진 주장은 틀렸다고 한다. 의료계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인용해 코로나19 기간 비대면 초진은 18.5%, 재진은 81.5%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원산협은 이 자료에서 집계한 1832만 건 중 초·재진 구분이 불가능한 경우가 843만 건(46%)이나 된다고 주장했다. 비대면 의료 현장에선 초·재진 구분이 잘 안된다는 것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정확한 숫자는 18.5∼99% 사이에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는 ‘국민 건강’, 산업계는 ‘국민 편익’을 내세우지만 서로 물러설 수 없는 건 비대면 진료가 의료산업의 주도권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초진을 허용할 경우, 플랫폼이 환자들의 의료기관 선택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을 꺼린다. 환자가 비대면 의료기관을 검색할 때 플랫폼이 ‘가장 가까운 곳’ ‘가장 평가가 좋은 곳’ 등 조건을 달아 보여줄 수 있다.
또 ‘프리미엄 서비스’ 같은 이름으로 광고료를 낸 병·의원부터 소개할 가능성이 높다. 가맹 병·의원이 많아질수록 플랫폼의 시장 장악력도 커져 병·의원이 플랫폼에 종속될 수 있다. 반대로 재진만 허용할 경우 환자의 병·의원 선택은 대부분 ‘초진한 병·의원’으로 한정된다. 비대면 플랫폼으로선 확실한 수익 구조를 만들기 어려워진다.
● 다음 달 중단되면 환자 불편 예상
당장 우려가 되는 건 초·재진 갈등으로 다음 달경 한시적 비대면 진료가 아무 후속 조치 없이 끝나는 것이다. 이로 인한 환자들의 불편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달 하순 ‘환자의 의료서비스 접근권 확대’ 차원에서 비대면 진료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지에 사는 환자, 중증장애인 같은 거동 불편자에게 비대면 진료를 가장 먼저 적용하고 나아가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자 등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고령화사회로 갈수록 비대면의 필요성이 높아지게 된다.
여기에 맞벌이 부부나 1인 가구 등 비대면 진료의 효용성과 편리함을 알게 된 환자들의 불만은 어떻게 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가을 900명을 상대로 온라인 조사를 한 결과 농어촌이나 중소도시보다 대도시 환자가, 30대 후반∼40대 초반 연령층이 비대면 진료를 더 활발히 이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인터넷 맘카페 등에서 비대면 진료 이용 후기를 보면 휴일 저녁에 아이의 감기 기운이 심해져도 응급실에 갈 수 없었는데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니 30분 만에 진료를 받았다는 식의 글이 적지 않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4일 국회에서 “의료법 개정이 늦어지면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라 격오지 거주자, 노인, 장애인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방향은 나오지 않았다.
● 초·재진 아닌 ‘질환’ 중심으로
현재 갈등의 근원인 초진, 재진 문제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해결의 출발점이란 지적이 나온다. 비대면 진료 허용 기준을 초·재진으로 하는 것보다는 병의 증상, 질환의 종류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하자는 것이다. 가벼운 열과 기침이 나는 감기나 작은 부위의 피부 발진 등은 초진을 허용해 편의성을 높일 수 있다. 특히 아이들이 심야나 한밤에 아플 경우 당번 병원들이 비대면으로 상태를 확인한 뒤, 대면이 필요한지 판단해 주면 무작정 소아과 응급실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 정기석 한림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는 “초진, 재진에 얽매이지 말고 비대면을 허용할 수 있는 초진, 허용해선 안 되는 재진 등 기준을 만들면 많은 부분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비대면 진료가 의료비의 증가로 이어져선 안 된다. 코로나19 기간엔 비대면 진료의 수가를 일반 진료의 130%로 인정해줬다. 의협은 향후 수가를 150∼200%로 올려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여기에 플랫폼도 끼어들면서 추가 비용이 나올 수 있다. 디지털화로 인한 비용 절감의 이점이 희석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어 건강보험 재정에 주름이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 비대면 진료 도입 시 오진으로 인한 법적 문제, 환자 본인 확인,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 등 다뤄야 할 사안이 적지 않다. 장기적으론 주치의 제도 도입을 통해 주치의에 의한 비대면 진료를 운영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여기에 맞벌이 부부나 1인 가구 등 비대면 진료의 효용성과 편리함을 알게 된 환자들의 불만은 어떻게 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가을 900명을 상대로 온라인 조사를 한 결과 농어촌이나 중소도시보다 대도시 환자가, 30대 후반∼40대 초반 연령층이 비대면 진료를 더 활발히 이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인터넷 맘카페 등에서 비대면 진료 이용 후기를 보면 휴일 저녁에 아이의 감기 기운이 심해져도 응급실에 갈 수 없었는데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니 30분 만에 진료를 받았다는 식의 글이 적지 않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4일 국회에서 “의료법 개정이 늦어지면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라 격오지 거주자, 노인, 장애인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방향은 나오지 않았다.
● 초·재진 아닌 ‘질환’ 중심으로
현재 갈등의 근원인 초진, 재진 문제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해결의 출발점이란 지적이 나온다. 비대면 진료 허용 기준을 초·재진으로 하는 것보다는 병의 증상, 질환의 종류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하자는 것이다. 가벼운 열과 기침이 나는 감기나 작은 부위의 피부 발진 등은 초진을 허용해 편의성을 높일 수 있다. 특히 아이들이 심야나 한밤에 아플 경우 당번 병원들이 비대면으로 상태를 확인한 뒤, 대면이 필요한지 판단해 주면 무작정 소아과 응급실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 정기석 한림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는 “초진, 재진에 얽매이지 말고 비대면을 허용할 수 있는 초진, 허용해선 안 되는 재진 등 기준을 만들면 많은 부분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비대면 진료가 의료비의 증가로 이어져선 안 된다. 코로나19 기간엔 비대면 진료의 수가를 일반 진료의 130%로 인정해줬다. 의협은 향후 수가를 150∼200%로 올려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여기에 플랫폼도 끼어들면서 추가 비용이 나올 수 있다. 디지털화로 인한 비용 절감의 이점이 희석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어 건강보험 재정에 주름이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 비대면 진료 도입 시 오진으로 인한 법적 문제, 환자 본인 확인,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 등 다뤄야 할 사안이 적지 않다. 장기적으론 주치의 제도 도입을 통해 주치의에 의한 비대면 진료를 운영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서정보 논설위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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