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양심, 판단 사이의 거리[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2023. 4. 2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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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성격이 안 맞아서 헤어진다고 합니다. 너무 차이가 나는 성격끼리는 같이 지내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로 맞춰 주려고 애쓰고 노력하면 헤어질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요? 그런데 사람의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성격은 태어나서 성장하면서 생긴, 쉽게 안 보이지만 큰 돌과 같이 마음에 굳게 자리 잡고 있으면서 자극을 받으면 불쑥 모습을 드러냅니다. 성격은 나 자신과 내 환경의 모든 것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고착된 방식을 말합니다. 환경에는 다른 사람이나 물건, 경험하는 상황이나 현상이 모두 포함됩니다. 나와 세상을 보는 내 방식이 내 성격입니다.

성격은 말과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그 사람의 성격을 내가 알려면 그 사람이 말하는 내용과 방식을 살피고 비언어적으로 표현되는 몸짓, 표정을 관찰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성격은 정말 다양하고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기도 합니다.

성격과 치즈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치즈도 성격만큼이나 맛, 냄새, 촉감, 모양에 특색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스위스 특산품인 스위스 치즈는 겉모양이 독특합니다. 구멍들이 여기저기 나 있습니다. 치즈를 만드는 발효, 숙성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면서 구멍들이 송송 생기는 겁니다.

성격 기능 중에서 양심의 기능은 사회적 관계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정신분석에서는 양심을 초자아라고 부릅니다. 초자아에 스위스 치즈처럼 구멍이 나 있으면 초자아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겁니다. 구멍이 하나도 아니고 여럿이면 더욱 그러합니다. 구멍 난 초자아는 구멍 난 악기처럼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세상 돌아가는 광경을 보면 구멍이 송송 난 초자아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습니다. 일상에서도 흔히 양심에 구멍이 났다고 이야기합니다. 초자아가 아무리 커도 구멍이 나 있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이 정당하다고 대놓고 강변합니다. 학술적으로 분류하면 ‘얼굴이 두꺼운’ 자기애적 성격입니다. 남들의 비판에 쉽게 동요하지 않습니다. ‘얼굴이 얇은’ 자기애의 경우는 비판에 민감해서 침묵을 지킵니다. 입을 다물고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침묵 역시 자신 스스로와, 외부 세계와 풀어나가는 내적 대화입니다. 강하게 변명하는 행위와 입을 다무는 행위를 상황에 따라 번갈아 하기도 합니다.

자아 기능에 구멍이 나면 현실을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자기가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문제에 대처하는 힘이 약해집니다. 너무 바쁘게 살면 자신을 성찰할 시간과 정신적 여유가 확보되지 않아 객관적 현실과 주관적 판단이 어긋납니다. 다른 사람들과 다투면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경우는 자아 기능을 제대로 유지하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입니다. 초조함과 불안이 판단력을 크게 흔들어 대기 때문입니다.

초자아나 자아에 생기는 구멍들과 달리 욕망은 오히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팽창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과도한 욕망이라는 ‘감옥’에 사로잡히면 판단력이 떨어집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쫓다가는 탈옥에 실패한 죄수처럼 더 깊은 곳에 다시 갇힙니다. 미래의 불확실성과 실패 후 따를 좌절감의 무게를 벗어나려고 하다가 생긴 일입니다.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현실이 있는 그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을 자신이 바라보는 이미지를 ‘자아상(自我像)’이라고 합니다. 자아상이 과대하게 팽창되고 보기 좋게 포장되면 자신을 보는 안목이 흐려집니다. 실체보다 훨씬 훌륭하고 힘이 있는 존재로 착각합니다. 그런 착각은 다른 사람이 쓰면 매우 옳지 않아 비난할 행위를 자신은 해도 된다고 합리화하는 태도로 연결됩니다. ‘내로남불’의 기저에는 이런 심리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과대하게 팽창되어 포장된 자아상은 성이 나면 배를 불룩하게 내미는 복어처럼 남들의 비판에 격렬하게 반응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그러면서 가해자인 자신을 피해자로 둔갑하는 재주도 부립니다. 자신이 저지른 짓을 남의 잘못으로 바꾸어 뒤집으려 합니다.

잘못을 범하는 사람들은 여기저기 많지만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인물들의 경우 개인의 일탈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회 전체를 소란스럽고 불안정하게 만듭니다. 긍정적 에너지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고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에너지에 사회가 휩싸입니다. 이미 미세먼지로 흐려진 세상이 더 혼탁해지면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애매하게 고통을 받습니다.

세속적인 가치인 돈과 권력의 현실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으로서, 사회적 존재로서도 욕망과 양심과 현실 판단 사이의 균형을 잘 잡으려는 노력이 개인을 위해서도, 편안한 세상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남의 돈을 넘보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얻으려 한다면 욕망에 너무 가까워지고, 양심에서 너무 멀어지며, 현실 판단력을 잃어버려서 내 인생이 꼬이고 남들의 인생도 피곤해집니다. 결국 내 성격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욕망, 양심, 판단 사이의 거리를 잘 지키고 유지하는 ‘등거리 외교’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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