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나랏빚, 법으로 막을 마지막 기회
최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정준칙 통과를 위해 “여론의 기적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전직 예산통 관료는 탄식을 했다고 한다. 재정준칙이 없어도 괜찮던 나라가 10년도 안 돼 재정준칙이 없으면 안 되는 나라가 됐으니 ‘기적’ 말고는 되돌릴 길이 있겠냐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건전 재정 덕분이었는데, 이제는 이를 기억하는 이도 없다고 한다.
처음 재정준칙이 논의된 건 2016년 4월 박근혜 정부 때부터다. 당시 재정 당국 내부에서는 ‘굳이 왜 필요한가’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한다. 이 전직 관료는 “수입을 미리 헤아리고 그에 맞춰 지출을 짜는 ‘양입제출(量入制出)’로 예산을 운용하는 나라에서 재정준칙은 불필요하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때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6% 수준이었다.
재정준칙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 건 문재인 정부를 경험하고서부터다. 600조원대 규모였던 국가채무가 임기 중 1000조원까지 불어났다. 국가채무비율은 50%를 넘겼다. 추가경정예산만 10번을 집행했다. 재난지원금도 살포했다. 재정준칙에 시큰둥하던 관료들도 이때부턴 국운이 걸린 문제로 여겼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3년 넘게 기재부를 이끈 홍남기 전 부총리도 재정준칙 필요성을 역설한 사람 중 하나였다.
절정은 작년 대통령 선거 직전에 했던 추경이었다. 2021년 말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한 달 만에 추경안이 국회에 올라왔다. 2020년 총선 직전에 했던 추경은 ‘코로나 추경’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작년 추경은 대선에서 표를 얻어보려는 여야의 정치적 계산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대선용 추경을 한 것은 나라가 갈 데까지 갔다는 신호다.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재정전문가들은 ‘예산의 정치화’가 임계점을 넘었다고 본다.
선거에는 장사가 없다. 재정을 쓰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이재명 후보뿐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시절에 소상공인 손실보상금을 1호 공약으로 내걸었고, 취임 직후 62조원의 추경을 집행했다. 재정 포퓰리즘이 뿌리를 내리면 정권교체로도 바로잡을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정치가 이러니 결국 남은 건 법밖에는 없다. 야당 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여당 의원들도 선거를 치러야 하기는 마찬가지다. 재정 아끼자는 법에 우호적이지 않다. 재정준칙은 국회에 제출된 지 30개월이 돼도 통과시키지 않던 여야 의원들이 예비타당성조사 문턱을 낮추는 법안 통과는 쉽게 합의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론만은 재정준칙 법제화를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론의 기적’이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어쩌면 이번이 재정으로 표팔이 하는 정치인을 몰아낼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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