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120] 끝이 좋으면 다 좋아

차현진 예금보험공사 이사 2023. 4. 2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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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인기 작곡가 유희열의 표절 시비로 음악계가 한참 시끄러웠다. 본인이 사과문을 발표하고 방송에서 하차한 뒤에도 여진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말했지만, 한국 사회는 모방보다 표절에 초점을 맞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위대한 예술은 모방에서 시작된다. 피카소는 벨라스케스를 모방하던 끝에 추상화를 탄생시켰고, 김정희는 해서체를 흉내 내다가 추사체를 만들었다. 괴테는 민간설화를 재구성해 ‘파우스트’를 썼고, 셰익스피어는 고대 로마 시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수많은 작품에 변형했다. 모두 표절 언저리에 있다.

셰익스피어가 모방한 작품 중에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도 있다. 흑사병을 피해서 성당에 모인 남녀 열 명이 각자 하루에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 열흘 동안 총 100가지 이야기를 완성한다. 그 첫 번째는 고리대금업자 이야기다. 당시에는 이자 수취가 불법이었다. 돈이 돈을 낳는 일은 조물주의 생명 창조에 도전하는 신성모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이자 수취가 합법화된 것은 1515년 피에타법, 즉 ‘가난한 사람을 위한 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가난한 사람들은 돈을 빌려서라도 일해야 굶어 죽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대금업이 합법화됐다. 그때 법정 최고 금리는 연 5%였다.

흑사병을 배경으로 한 데카메론은 대체로 음울하지만, 밝은 이야기도 있다. 세 번째 날 아홉 번째 이야기는, 여자가 남자에게 먼저 사랑을 고백해서 결혼하는 이야기다. 셰익스피어는 그 이야기를 표절 또는 모방해서 ‘끝이 좋으면 다 좋아’라는 희곡을 썼다.

1564년 4월 26일 셰익스피어가 탄생했다. 그가 남긴 많은 작품을 표절로 볼 것인지, 창작으로 볼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무덤 속의 셰익스피어는 “끝이 좋으면 다 좋아”라고 하겠지만, 살아있는 유희열은 자기 작품에 대해서 그렇게 웃어넘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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