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욕받이’ 나상호, K리그 대표 골잡이로
지난해 7월 27일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한일전. 한국이 일본에 0대3으로 패하자 비난은 공격수 나상호(27·FC서울)를 향했다. 패스 미스를 남발한 데다가 돌파도 번번이 막히며 대패의 희생양으로 지목된 것. 그는 이후 주눅이 들었던지 K리그로 돌아와서도 13경기 연속 무득점에 그치는 등 부진의 늪에 빠져들었다.
지난 24일 경기도 구리 GS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난 나상호는 “당시엔 내가 이겨내거나, 축구를 그만두거나 두 가지 방법밖에 생각나지 않았다”며 “사랑하는 축구를 그만둘 순 없었기에 이겨내고자 계속 노력하고 부딪친 결과 좋은 시간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2023시즌, 그는 K리그 대표 골잡이로 올라섰다. 5골로 울산 루빅손(30·스웨덴)과 함께 득점 공동 선두. 지난 22일 수원과 수퍼매치에선 4경기 연속 골을 터뜨리며 팀의 3대1 승리를 이끌었다.
비결을 묻자 “(황)의조 형 덕분”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당시 호흡을 맞추며 친해진 황의조(31)와 나상호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황의조가 서울 유니폼을 입으며 한솥밥을 먹게 됐다.
나상호는 홈경기 때마다 전날 황의조의 집에 가서 함께 잔 뒤 같이 아침을 먹고 경기장으로 출근한다. 그는 “의조 형과는 (연인이라면) 궁합도 안 보는 네 살 차이”라며 “서로 어떻게 움직이며 골을 넣을지 얘기를 나누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다 보니 그라운드에서 집중력이 올라갔다”고 말했다.
황의조와 나상호가 동시에 골을 넣은 지난 8일 대구전과 22일 수원전에선 공교롭게 동료 공격수인 팔로세비치(30·세르비아)도 득점에 성공했다. 나상호는 “앞 글자를 딴 ‘황나팔 트리오’라 불러달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상호는 올 시즌 고난도 슛을 연이어 꽂아넣고 있다. 지난달 울산전에선 기습적인 무회전 중거리 슛으로 득점을 올렸고, 15일 포항전에서는 슈팅 각이 잘 나오지 않는 페널티박스 바깥 왼쪽 측면에서 동료 머리를 향한 프리킥 대신 골키퍼 왼쪽 빈 공간을 직접 노리는 오른발 킥으로 상대 허를 찌르며 골망을 갈랐다.
축구에서 특정한 슈팅 위치와 상황에서 골이 들어갈 확률을 계산해 산출한 값을 기대득점(xG·Expected Goals)이라 한다. 나상호는 득점(5골)을 xG(1.71)로 나눈 값이 2.92로 이번 시즌 3골 이상 득점한 K리그 선수 중 가장 높다. 제한된 찬스에서 골을 만들어낸 결정력이 그만큼 뛰어났다는 의미다.
그는 “운도 따랐지만 자신감이 바탕이 됐다”고 했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이 전환점이 됐다. “실력도 없는데 벤투 감독 중용을 받는다”는 비판 속에 나상호는 우루과이와 조별리그 1차전에 오른쪽 미드필더로 선발 출장했다.
“월드컵이 주는 중압감에 휘말려 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난 어차피 그 정도 선수밖에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그라운드를 밟으니 정말 재밌겠다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신 있게 한번 해보자고 마음먹었죠.”
벤투 감독에게 수비적인 역할을 주문받은 나상호는 라이트백 김문환(28·전북)과 함께 리버풀 공격수 다르윈 누녜스(24)를 효과적으로 봉쇄하며 0대0 무승부에 기여했다. 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로 들어간 가나와 2차전(2대3 패)에선 후반 16분 중원에서 손흥민에게 정확하게 패스를 찔러줬고, 이는 김진수 크로스를 거쳐 조규성의 두 번째 헤더 골로 연결됐다. 그는 한국 16강행의 당당한 주역 중 하나였다.
나상호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또 다른 인물은 나폴리 공격수 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22·조지아). 친구인 김민재의 플레이를 지켜보기 위해 나폴리 경기를 자주 보다가 흐비차가 눈에 들어왔다.
“흐비차는 정말 과감히 드리블을 하는데 실패하는 장면도 많더라고요. 그래도 위축되지 않고 계속 시도해 결국 돌파를 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흐비차를 보면서 자신감의 중요성을 깨달았죠.”
카타르월드컵 활약으로 팬들의 마음을 돌려놓은 그는 올 시즌 많은 팬 앞에서 축구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서울은 올 시즌 홈 경기 평균 2만9000여 관중을 동원했다.
성적도 현재 3위(승점 16·5승1무2패)로 25일 인천을 1대0으로 꺾은 선두 울산(승점 22), 수원 삼성을 1대0으로 물리친 2위 포항(승점19)을 추격하고 있다. 지난 세 시즌 9-7-9위에서 올해 드디어 약진하는 분위기다.
나상호를 두고 슈팅과 패스, 드리블, 파워, 스피드, 수비력 등을 두루 갖춘 ‘육각형’ 선수란 평가가 나온다. 그는 “과분한 칭찬”이라면서도 “앞으로 육각형을 더욱 크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나상호는 “지난해 정말 힘든 과정을 이겨낸 만큼 더욱 단단해졌다”며 “남은 축구 인생이 더욱 기대가 된다”고 했다. 김민재(나폴리)·황희찬(울버햄프턴)·황인범(올림피아코스) 등 대표팀에서 함께하는 1996년생 친구들처럼 언젠가는 유럽 무대에 도전하고도 싶다.
그는 “당장은 서울 옛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 눈앞 목표”라며 “서울 팬들에게 꼭 K리그 우승컵을 안기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의 마지막 우승은 2016년이다.
구리=장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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