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마애불을 찾아서
돌에서 피어나는 미소가 어찌 이다지도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할 수 있을까?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을 대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1300년의 세월이 지나도 온화한 그 미소로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우리를 맞아준다.
마애불은 대체로 산속 깊은 곳이나 깎아지른 절벽에 자리하고 있다. 마주하기 쉽지는 않지만, 막상 대면하는 순간 그 거대한 규모에 압도당하고 만다. 정과 망치만으로 그 큰 마애불을 어떻게 조성했을까 신비롭기만 하다. 마애불이 서산처럼 모두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운 좋게 솜씨 좋은 조각장을 만나 고운 미소와 섬세한 옷매무새를 갖춘 마애불로 태어나거나 때로는 투박하고 서툴더라도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을 닮은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국립전주박물관에 근무할 때 전북 마애불 조사를 했다. 눈 쌓인 지리산 정령치 마애불을 찾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질 뻔한 일도 있었다. 안내 표지판도 길도 없었던 순창 석산리 마애불을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해 질 녘이 돼서야 찾았을 때 기쁨에 넘쳐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고요한 깊은 산속, 갑작스러운 나의 괴성을 듣고서 그 마애불은 참으로 오랜만의 인기척에 화들짝 놀랐을 터이다.
경주 남산 삼릉계곡이나 탑골, 안동 제비원의 마애불처럼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에 조성된 마애불은 자주 만날 수 있지만, 월출산 구정봉 마애불, 구례 사성암 마애불, 완주 수만리 마애불처럼 산속 깊은 곳의 마애불은 크게 마음을 먹어야만 그 자태를 볼 수 있다. 이 깊은 산속 바위에 누구를 위해 무엇을 바라며 이렇게 마애불을 조성했을까 수없이 되뇌었지만,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했다. 아마도 거대한 바위에 의지해 발원하고픈 소박한 믿음 때문이 아닐까.
우리 산하 곳곳에 있는 수백개의 마애불은 눈비를 맞으면서도 오래된 염원을 품은 채 오늘도 그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 어딘가에는 아직도 “날 좀 찾아줘” 하고 고개를 쑥 내밀고 벅수 같은 왕방울 눈을 굴리며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인연이 닿아 나처럼 탄성을 지르며 만나게 될 또 다른 마애불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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