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살로네 델 모빌레와 부산
3년 만에 다시 방문한 이탈리아 밀라노는 공항이며 기차역이며 할 것 없이 넘치는 인파로 가득했다. 모두에게 힘겨웠던 팬데믹은 곳곳에 부착돼 있던 낡은 스티커 알림들로 그 흔적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장시간 비행으로 나처럼 엉망이 된 캐리어를 끌고 택시를 탔다. 기사는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를 보러 왔느냐고 묻는다. 어떻게 알았는지 되물었더니 이 시기에 오는 외국인은 대부분 박람회 때문에 오는 분들이라고 한다.
밀라노는 이탈리아 경제중심도시이자 패션과 디자인의 세계적인 트렌드를 선도하는 문화 예술 경제의 도시다. 디자인에 관련된 거의 모든 종류의 전시와 쇼룸이 열리는 밀라노 디자인위크, 올해는 4월 셋째 주에 열려 밀라노 도시 전체가 디자인으로 물들었다. 사람도, 공간도, 시간도 모두 디자인을 입었다. 그중 중심이 되는 행사는 살로네 델 모빌레로, 1961년 이탈리아 목재가구협회의 후원으로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산업화는 밀라노를 중심으로 하는 북부지역을 기반으로 했고 지금까지도 이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경제산업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살로네 델 모빌레는 가구뿐만 아니라 조명 가전 식기 인테리어 액세서리 등 공간에 관련된 거의 모든 아이템이 전시되는 세계 최대의 박람회로, 올해는 전 세계에서 1400여 개의 업체가 참여했다. 살로네 델 모빌레는 60년이 넘는 역사의 축적으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모두 최대, 최고를 인정받는 세계적인 행사다.
첫날 박람회장 입구의 인산인해는 장관이었다. 세계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장소였고 다양한 인종과 언어가 뒤섞여 박람회장 들어가기도 전에 사람 구경이 더 재미있다고 동행한 지인은 즐거워했다. 행사장에서 만난 이라크에서 온 호텔 매니저는 새로운 호텔 인테리어를 위해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가구박람회 하나로 3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거주하는 도시가 이렇게 들썩이다니.
단지 살로네 델 모빌레만이 아닌 ‘푸오리살로네(Fuorisalone·밀라노 도시 곳곳에서 펼쳐지는 자율적인 디자인 관련 행사)’라는 디자인 전시는 도시의 여러 장소에서 더욱 다양한 컨템포러리 디자인을 선보인다. 기존 상업매장을 갖고 있는 대형 브랜드들은 이 기간 밀라노 디자인위크에 동참하면서 인테리어에 관한 자신들만의 디자인 설치와 디스플레이를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며 서로 경쟁한다.
밀라노 명품거리가 패션과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변신하며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의 이름을 내걸고 디자인 가구와 테이블 세팅들로 협업의 성과를 자랑한다. 대규모 명품 브랜드 매장들의 새로운 변신도 흥미로웠지만 시내 곳곳 크고 작은 공간들 속 다양한 디자인 상품의 전시는 더욱 놀라웠다.
젊은 디자이너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전시가 불가능할 것 같은 공간도 실내·실외 가릴 것 없이 창조적인 아이디어의 물결이었다. 폐차고, 폐창고, 걷다 보면 나타나는 작은 공원 등 빈 공간을 활용한 실내·실외의 가구아이템들로 넘쳐났다. 팬데믹 이후 정상적으로 다시 봄 시즌에 개막한 2023년 밀라노 디자인위크에는 총 2500여 개의 업체가 참여했다고 한다.
푸오리살로네 가이드북 지도에 기재된 장소는 350여 개소, 밀라노 디자인위크의 짧은 나의 일정이 안타까울 뿐이었고 이곳저곳으로 발길을 옮기며 도시를 걷는 시간 동안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은 이런 박람회 몇 개만으로도 밀라노는 도시경제가 윤택하게 돌아가고 지역소멸이라는 단어는 여기에서는 쓰지 않겠지라는 것이었다. 물론 밀라노는 이탈리아의 경제수도이고 국제도시다. 부산도 인구 300만 명이 넘는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고 국제항구도시다. 그런데 뭔가 이 씁쓸함은 단순한 비교를 할 수는 없다고 스스로 위로해 보지만 많은 부분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2030년 엑스포를 준비하고 기대하는 부산인데….
국제적 대형 행사인 박람회를 유치하려는 모든 지역은 이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목표와 욕망을 갖고 있다. 평소 요금의 몇 배나 되는 숙박비가 아깝지 않고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과 환대로 충분한 욕망과 만족을 갖게 되는 방문객이라면 그들은 이 지역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해가 갈수록 방문의 횟수는 늘어날 것이다. 박람회의 문화와 역사는 쌓아가는 것이지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