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만 보고 당신을 옥죄는 세상… 힘들어도 ‘진짜 너’를 잃지 마
“어우~ 이 연극 진짜 빡세.”
날 때부터 활짝 핀 목련처럼 화사했던 소녀 ‘트레미에르’(김소이·이지혜)의 농담에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2인극 ‘추남, 미녀’(연출 이대웅). 날 때부터 못생겼던 소년 ‘데오다’(김상보·백석광)는 또래 여자애들보다 새를 더 좋아하는 별난 성격이 매력적으로 보여, 차례로 교내 인기녀들의 고백을 받는 중이다. 상대 여배우는 쉼 없이 가발과 옷을 바꾸며 말투 성격 다 다른 소녀들의 고백 장면을 차례로 소화한다.
국내 팬도 많은 프랑스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의 같은 제목 소설을 연극으로 옮겼다. 무대 위 두 배우는 기본적으론 남자가 추남 ‘데오다’, 여자가 미녀 ‘트레미에르’. 하지만 연극이 진행되는 100분 동안 두 배우는 가족, 친척, 교사, 친구, 의사 등 각자 20명쯤 되는 인물들을 연기한다. 배우들이 천연덕스러운 변신을 거듭하는 동안 관객의 상상력은 무대 위 장면과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제3의 배우’가 된다. 귀엽고 따뜻한 소동극이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세상의 편견은 ‘트레미에르’와 ‘데오다’의 “탯줄을 자를 때부터” 올가미가 돼 둘의 성장기를 옥죈다. 세상에 만연한 악의(惡意)는 어린 아이들의 세계에도 존재한다. 별 뜻 없이 던지는 험담, 튀어보려 지어낸 거짓말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사람들은 아름다움과 추함, 여자와 남자, 예쁨과 똑똑함 같은 추상적 개념으로 끊임없이 비교하고 저울질한다. 아름답다는 것도 추하다는 것도 괴롭히고 놀려댈 이유가 된다. 노통브 소설의 특징인 ‘잔인한 유머’다.
하지만 연극은 고통과 아픔을 들여다보되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유머로 재치 있게 여과해 시종 경쾌하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따돌림당하던 ‘데오다’는 외로움을 사랑하게 되고, 험담과 거짓말로 이뤄진 인간들의 세계 대신 새들을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예쁘다는 이유로 질시와 날선 말에 시달리던 트레미에르는 누구보다 손녀를 잘 이해하는 할머니 덕에 아름다움의 본질을 알아보는 재능을 발견한다.
“아무리 상처 내려 해도 어차피 너는 자국이 남지 않는단다. 왜냐하면 너는 보석이니까. 너는 살게다, 트레미에르. 네겐 그럴 힘이 있어.” 여배우가 트레미에르의 할머니가 돼, 손녀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에 관해 노래하는 에피소드는 놓치지 말아야 할 명장면. 걸그룹 티티마 출신으로 밴드 라즈베리필드 보컬이기도 한 김소이 배우는 기타를 들고, ‘신의 아그네스’ 등 대형 무대에 서 온 이지혜 배우는 아코디언을 들고 직접 연주와 노래를 소화한다.
두 주인공은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났을까라는 불평 대신, 어떻게 진짜 나 자신을 잃지 않고 버틸 것인지 직접 답을 찾아간다. 추남 데오다는 척추 장애인이 될 뻔한 유전병을 극복하고 조류학자가 되고, 미녀 트레미에르는 보석의 떨리는 영혼을 알아보는 힘 덕에 보석 모델로 이름을 알린다. 절망하지 않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마침내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구처럼 친근하게 관객에게 말을 거는 듯한 연극. 소품 하나 허투루 배치되지 않은 꼼꼼한 무대, 조명과 미디어 영상을 활용해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연출도 장점이다.
추남 ‘데오다’에는 2020년 백상예술대상을 받은 대학로 대세 배우 백석광과 양정웅 연출의 극단 여행자 출신 중견 김상보가 더블 캐스팅됐다. 공연은 다음 달 2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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