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할머니가 전 재산을 임영웅에게 주신대
“할머니가 전 재산을 임영웅에게 주고 싶어 하신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나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세계적인 인지도는 비교불가지만 실제 수입은 BTS를 능가한다거나, A급 예능인들의 행사 출연료를 뛰어넘어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천상계라는 소문들이 나도는 이 트로트 신성의 인기가 상상을 초월해서다. 그의 콘서트 티켓 예매는 피가 튀는 전쟁터 수준이라 ‘피켓팅’으로 불린다.
그만큼은 아니라도 최근 많은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장·노년층의 아이돌로 부상했다. 내 주위에도 병약하시던 어머님이 파릇파릇한 소년 가수의 열혈팬이 되신 후 삶에 활기를 찾으셨다거나, 그들의 노래를 듣는 취침 습관으로 불면증이 치료가 되었다거나 하는 ‘기적의 간증’들이 속출 중이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위인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퇴계로, 율곡로 같은 특정인 이름을 붙인 길도 등장하고, 생가 방문 성지 순례도 이어진다.
시들어가던 신파가요 장르의 눈부신 부활에 반응들이 다양하지만, 사회를 들여다보면 자연스러운 현상 같기도 하다. 감성도 흥도 여전한데 주류 문화에서 점차 소외되어 가는 장·노년층들의 몸과 마음이 머물 곳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너무 현란하고 세련된 아이돌 문화는 부담스럽고, 동세대 가수들은 편안하지만 함께 늙어가는 동지일 뿐이다. 익숙한 가락으로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싱그러운 에너지와 위화감 없는 소탈한 애교로 기운을 북돋는 젊은 예능인들이 반갑고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유사한 맥락의 다른 “덕질”에 비하면 건강한 취미라고도 할 수 있다.
또래 지인들에게 종종 듣는 고민 중 하나는, “떴다방”이나 “홍보관”이라 불리는 뜨내기 집단에 정기적으로 지갑을 털리는 부모님들 얘기다. 정체 모를 건강식품이나 조악한 물건들을 고가에 구매해 쟁여 두는 어르신들이 안타깝지만, 속사정 또한 이해가 간다. 정겨운 대화는커녕 얼굴 보기도 힘든 자식들보다 훨씬 살가운 청년들이 웃음과 오락거리를 제공해 주는 시간들이 행복하고 고마워서, 알면서도 속아주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5000원짜리를 50만원에 판매하는 백배 이윤의 사기행각은 퉁명스러운 가족들이 주지 못하는 백배의 다정함으로 상쇄된다. 청년 트로트 가수 팬이건 떴다방 호갱님이건 기저에 깔린 정서는 유사해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젊고 밝고 친절한 이들에게 끌린다는 점이다.
지난겨울 엄마를 모시고 온천 스파월드에 갔었다. 시설도 온천도 훌륭했고 조식도 호텔급이어서 노인들이 무척 좋아하실 만한 곳이었지만, 보이는 것은 젊은이들과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생각해보니 성인이 되고 가정을 가진 이들의 효도란 몇 시간 함께하는 가족 식사나 돈으로 해결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부모와 함께 교감하며 긴 시간을 보내기엔 자녀들의 삶도 늘 분주하다. 노인 학교나 돌봄기관 등은 증가했지만, 대개 학습·교육 위주일 뿐 정서적인 스킨십이 깊고 활발한 곳은 찾기 어렵다. 100세 시대의 모호한 고령 세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적절히 할 것이 없고,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보인다.
비혼이 일상이 되고 출생률은 세계 최하위이며, 자녀의 돌봄은 기대할 수 없는 초고령사회. 청년은 고되고 버거우며 노년은 소외되고 짐이 되는, 서로 마음 둘 곳 없고 어깨 기댈 공동체도 사라진 사회를 상상한다. 천문학적 자산을 가진 연예인 외엔 평생 모은 재산을 나누고픈 존재가 없는 외로운 말년이나, 가짜 미소와 친절로 쌈짓돈을 갈취하는 이들에게 마음 주고 의지하는 노년의 삶이 되지 않도록. 점차 심화되는 빈부 격차만큼이나 가진 노인과 못 가진 노인, 준비된 노년과 소외된 노년의 격차도 커져가는 고령화 사회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고민과 준비가 절실한 시점이다.
박선화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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