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방의 힘 보여준 수단 구출작전… 기시다 “도와준 한국에 감사”

김은중 기자 2023. 4. 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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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대통령 국빈 방미] 수단 교민 28명 서울공항 도착
이종섭 국방부 장관(왼족)이 25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수단 교민 구출을 위한 작전에 참가한 군인들을 격려하고 있다. /뉴스1

“어려울 때 누가 나를 진정으로 도와주는 진짜 친구인지가 확인됐다.”(외교부 당국자)

내전이 격화한 북아프리카 수단에서 철수한 우리 국민 28명이 탑승한 공군 수송기 ‘시그너스(KC-330)’가 25일 오후 3시 서울 성남공항에 도착했다. 지난 15일 내전이 발발한 지 약 열흘 만에 고국으로 무사 귀환한 것이다. 재외국민 보호 ‘약속’을 뜻하는 ‘프로미스(promise) 작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후, 우리 정부는 미국·아랍에미리트(UAE)·사우디아라비아·튀르키예 등 우방국들에 공을 돌렸다. 이번 작전이 “우방 외교의 결과물이었다”는 것이다. 자국민 철수에 한국의 도움을 받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트위터에서 “한국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내전 발발 후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것이라 판단, 공관 철수를 일찌감치 결정했다. 현지 대사관과 외교 당국뿐 아니라 대통령실·국가정보원 등이 나서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정보를 수집했다고 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보 획득 과정에서 미국의 정보 기관이 적극적으로 협조했다”며 “한미 동맹이 아주 크게 기여했다”고 했다. 이후 21일 박진 장관과 압둘라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외교·국제협력부 장관 통화에서 UAE 측이 우리 측에 육로 탈출을 제안했다. 외교부는 “UAE와 현지 세력 간의 좋은 관계, 우리 측에 공유한 정보 수준과 준비 정도 등을 감안해 함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내전에서 UAE는 ‘제3국 교민 철수 안전 보장’을 위한 협상을 중재했을 정도로 정부군과 반군 모두에 영향력이 상당했다. 정부는 가장 먼저 자국 국민들을 육로로 탈출시킨 사우디 측에도 가능성을 집중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민들은 수도 하르툼에 있는 우리 대사관에서 포트수단 국제공항까지 우회로로 약 1174㎞를 9시간 동안 달렸다. 남궁환 수단 대사는 “UAE 공관이 제공한 차량 덕분에 우리가 포트수단으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고 했다. 특히 박진 장관과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아부다비 행정청장이 ‘핫라인’을 구축해 실시간으로 소통했다. 칼둔 청장은 “당신의 국민들이 우리 국민들”이라며 “가능한 모든 차원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외교부는 “형제의 나라인 UAE와의 우정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고 했다. 이와 함께 튀르키예도 “올해 2월 대지진 발생 때 한국이 긴급구호대를 파견한 것을 기억한다”며 조력을 제공했는데, 외교부 관계자는 “우리가 하는 만큼 돌아온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 /뉴스1

철수 작전이 시작된 23일 일본인 5명이 우리가 제공한 차량을 타고 대사관에 모여 포트수단까지 함께 이동할 수 있었다. 기시다 총리는 수단 탈출 소식이 알려진 직후인 24일 한국에 감사의 뜻을 밝힌 데 이어 25일에도 기자들과 만나 “일본인 대피 과정에 한국과 UAE, 유엔의 협력이 있었다.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했다.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무상도 박 장관과 소셜미디어(SNS)로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사의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거꾸로 우리가 어려운 상황이었더라도 일본이 도와줬을 것”이라며 “이번 과정이 한일 관계가 또 한번 공고화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한일은 코로나가 기승을 부렸던 2020년에도 합작해 양국 국민들을 아프리카 국가에서 무사히 귀국시킨 경험이 있다.

우리 대사관은 이번 내전의 최대 격전지 중 하나인 공항과 대통령궁으로부터 불과 2~3㎞ 떨어져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회의 도중 총소리가 들려 대사가 뛰어나가 확인해야 할 정도로 급박한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특히 내전 발발 초기 반경 25㎞ 9개 지역에 대사관 직원과 가족, 교민들이 산재해 있어 초기에 인원이 집결하는 데 상당 시간이 소요된 것으로 전해졌다. “차량이 움직이면 표적이 될 수 있으니 직원 대부분이 숙소에서 나오지 못하고 3일을 꼬박 보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현지 행정직원이 쓰러지자 남궁 대사가 직접 방탄차량의 선탑자로 나서 대사관 밖에 있던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고 한다.

대사관 내 식량과 식수 등 비축분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이후 단수(斷水)까지 됐는데, 주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버텼다고 한다. 시장에 모친, 자녀와 고립됐던 공사참사관은 이탈리아의 한 비정부기구(NGO) 보호소에 머물며 현지 미국·영국·일본 공관 등과 소통하며 정보를 취합해 본부에 보고했다. 외교부는 이를 토대로 철수를 결정했고, 라마단 종료를 기념하는 명절인 ‘이드 알피트르’(21~23일) 기간을 ‘디데이’로 설정해 철수 작전을 전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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