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석면 피해, 개인이 아닌 사회적 책임이다

기자 2023. 4. 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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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충청남도에서 5명의 환자가 한꺼번에 대학병원 진료실을 찾았다. 20년 전에 채광을 멈춘 석면광산 인근의 집에서 한평생 함께 살았던 가족이었다. 이들은 기침과 가슴 통증을 달고 살았고 호흡곤란까지 심했다. 진단 결과 석면 분진을 계속 흡입해 발생하는 석면폐증이었다. 가족 중 일부는 실제로 광산에서 일하지도 않았음에도, 폐 세포에 염증이 발생하고 폐가 딱딱해지는 섬유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명준표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교수

이처럼 석면 채광이 멈춘 후에도 석면질환은 현재진행형이다. 석면은 1급 발암물질로 밝혀지기 전까지 신이 준 불멸의 물질로 알려졌다. 과거 건축물 내장재, 지붕, 자동차 부품 등 다양하게 사용됐다. 하지만 20세기 중반부터 석면은 심각한 질환을 유발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진폐증으로 알려진 석면폐증이 가장 대표적인 질환이다.

석면은 장기간 체내에 머무르면서 체내 섬유 모양의 석면 결절을 형성해 호흡기계 만성염증을 유발한다. 이러한 석면 결절은 폐섬유증, 폐암, 악성중피종을 발생시킬 수 있다. 치료가 어렵고 치명적이다. 특히 석면 노출 정도가 적어도 걸릴 수 있는 악성중피종은 악성종양으로, 진단 후 1년 이내 대부분 사망한다.

석면에 노출된 사람들은 폐암 발생 위험이 일반인에 비해 3~5배 이상 높고, 흡연자가 석면에 노출될 경우엔 50배 이상 높다. 문제는 한 번 흡입된 석면은 체내에서 제거가 어려워 만성질환으로 발전하며, 치료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환경부는 이러한 질병을 관리하기 위해 2010년 ‘석면피해구제법’을 제정했다. 이후 2011년부터 환경 노출에 의한 석면 건강피해자 구제를 위해 ‘석면피해구제기금’을 설치·운영하고 있다. 과거에는 석면의 건강영향을 모른 채 사용했기 때문에 ‘공유책임 원칙’하에 정부·지자체·산업계가 공동으로 책임지고 비용을 분담하도록 했다.

초기에는 인식 부족으로 석면질환에 대한 피해구제 신청이 미미했다. 기금 과다 축적이라는 지적이 일자, 환경부는 기업분담금을 인하했다. 아울러 찾아가는 석면피해구제 대상자 발굴 사업, 병원 중심 석면질환 발굴사업을 수행하는 등 적극적인 피해자 발굴 사업을 수행했다. 그 결과 매년 석면피해구제제도 인정자가 늘어 2022년의 경우 11년 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2011년 459명 → 2022년 1019명, 인정자 누계 6743명, 출처: 환경산업기술원). 당연히 구제급여(기금) 지급액도 매년 늘었다. 2011년도 21억7000만원에서 2022년 270억7000만원으로 증가(지급액 누계: 1456억6000만원, 출처: 환경산업기술원)했다.

석면 피해는 광산 주변만이 아니라 공장, 건축 현장, 학교, 지하철 등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석면 노출에 따른 질환 잠복기는 20~30년이다. 한국은 2009년 석면 사용이 금지돼 2045년에 피해자가 최대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채광을 멈춘 광산에서, 그것도 광산에서 일한 적 없는 주민들에게도 폐질환이 발견되었으며, 아직도 전국 초·중·고등학교 절반 정도에는 석면이 남아 있다.

그러나 석면피해구제기금은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있다. 환경부는 당장 내년이면 기금이 145억원 부족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면피해구제기금은 석면피해 공유책임의 원칙에 따라 산업계 분담금 및 중앙정부·지자체의 출연금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부는 출연금을 충분히 확보하고, 기업분담금 인상의 불가피성을 기업들에 충분히 설명하고 협의해야 한다. 조속한 기금 확보로 피해자들의 질환 악화를 예방하고 그들이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한다.

명준표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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