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우리 안의 차별의 언어
경복궁 음식점서 마주친 중년들
‘짱깨’ ‘똥남아’ 등 언급하며 대화
비하·멸시적인 언어·인식 버려야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잡히면 잘 풀릴 것이라 생각했다. 올봄엔 우울감은 밀려나고, 싱그러움이 가득할 줄 알았다.
개인적으로도 4월은 힘든 달이다. 4월이면 어김없이 알레르기 때문에 눈물 콧물을 흘리고, 재채기를 수도 없이 한다. 몇 해 전 미국 근무 시절 몸 안으로 들어온 계절 통과 의식이다. 올해는 여기에다가 면역 기능이 약해져 더 고생하고 있다.
그래도 주말엔 틀어박혀 있을 처지가 아니다. 지난 주말 비염과 코막힘에 효능이 있다는 스프레이 처방을 하고, 고난도의 개인 방역을 한 뒤 시내에 나갔다. 목적은 하나였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다는 후배 기자의 보고를 직접 현장에서 확인해보고 싶었다. 관광객이 ‘정말’ 증가한 게 눈에 띄었다. 한복을 입은 외국인도 이전에 비해 많이 늘어난 것으로 보였다. 한복 착용 관광객은 5대 궁궐 등에 무료 입장할 수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경복궁에서 시작해 공예박물관, 창덕궁을 살펴본 뒤, 청계천을 가로질러 명동까지 걸어가 보았다. 간헐적으로 데시벨 높은 소음 공해도 전해졌지만, 대세는 되지 못했다. 관광객과 상춘객의 거대한 흐름까지 잠재우지는 못했다. 서울의 봄을 만끽하려는 관광객의 표정과 행동에서는 한없는 행복감이 느껴졌다. 싱그러움도 묻어났다. 내가 느끼지 못했던 싱그러움을 느끼는 모습에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콧물과 눈물을 참고 행한 주말 서울 보행의 가치는 충분했던 셈이다.
보지 말았어야 할 장면은 그 뒤에 접했다. 이번에는 명동에서 행로를 바꿔 한국은행을 옆에 둔 뒤, 서울광장, 광화문광장을 거쳐 거쳐 경복궁역 인근 음식점으로 걸어가던 참이었다. 마침 등산을 끝내고 지인들과 낮술을 한 듯한 어느 중년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왜 이리 많이들 오는 것이야. 요즘엔 ‘짱깨’보다 ‘똥남아’ 애들이 더 많은 것 같아.” “그러게 말이야. 지들 피부와 옷은 한복을 소화하기 힘든데 좋은가 봐.” 중국인에 비해 동남아 출신 관광객이 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비아냥도 아니고, 일상적으로 하는 대화로 들렸다. 듣지 말아야 할 이야기였다. 대화를 듣지 않았다면 ‘나이 든 중년의 동창들이 좋은 모임을 하고 있구나’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들은 월요일엔 번듯한 복장으로 출근해 전문가다운 식견으로 업무에 복귀할 수도 있을 것이다. ‘K관광’의 시대에 두려움이 문득 엄습해 왔다. 혹시 외국인 관광객이 조금이라도 대화 내용을 알아들을까 해서다. 한국을 알기 위한 그들의 노력을 폄훼하는 차별적인 언어 구사는 잘못된 것이다.
잘못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단일 민족의 신화를 떠받들던 옛 교육의 결과인지, 한국의 빠른 성장에서 비롯된 인접국에 대한 우월감 때문인지는 모른다. 우리는 제국주의의 만행을 규탄하고, 해외에서 동포가 받는 차별에 분노한다. 그런데 곧잘 특정 외국인이나 집단을 가리켜 개슬람(이슬람), 흑형(흑인) 등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온라인에서 감자(강원도), 멍청도(충청도), 과메기(경상도), 홍어(전라도), 한남충(한국 남자), 김치녀(한국 여자) 등의 비하와 폭력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잘못은 정쟁만 일삼은 정치꾼의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차별적이고 멸시적인 지칭은 ‘끼리끼리 문화’를 공고화하는 또 다른 사회적 재난이다. 단적으로 깡통전세를 방치하거나 대응하지 못한 정치권을 비판하는 이들이라면 차별의 언어를 구사해서는 안 된다. 차별의 언어 표출에 작용한 차별적 인식은 버려야 한다. 이러한 인식 전환은 우리 사회의 사회적 재난 방지를 위한 힘이 될 것이다.
박종현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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