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노트' 배우들, 폭발적인 성량 뽐내다…'키라' 맹신 등 생각할 거리도 '풍성' [김기자의 문화이야기]
김문영 2023. 4. 2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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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데스노트'가 2015년 초연, 2017년 재연 이후 새 프로덕션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키라' 맹신 등, 관람객에게 던지는 질문들 뮤지컬 '데스노트'는 만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극 속에서 던지는 질문들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대중은 라이토의 실체를 모르면서도 라이토는 정의로운 존재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키라'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이며 맹신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키라' 맹신 현상은 뮤지컬 '데스노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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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둔 성량 뽐내는 명배우들의 '강약 조절' 눈길
LED 스크린이 몰입감 높여…큰 전자 음향은 아쉬워
조연들도 절절하게 노래…관객들 마음 울려
뮤지컬 '데스노트'가 2015년 초연, 2017년 재연 이후 새 프로덕션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지난해 코로나19 속에도 전 회차, 전석 매진 기록을 세우고 올해 앙코르 공연으로 돌아온 것인데요. 이 뮤지컬의 인기 요인이라고 한다면 원작 만화를 기반으로 한 흥미로운 스토리와 탄탄한 배우 라인업,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뮤지컬 넘버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2017년 '데스노트'를 관람한 이후 6년 만에 지난 23일 재관람한 리뷰를 작성합니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만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극 속에서 던지는 질문들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첫 곡이 바로 '정의는 어디에?'일 만큼 이 뮤지컬은 정의가 무엇인지 집중하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현행법이 오히려 가해자나 범죄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세상에 정의는 없다고 학생인 주인공 라이토가 주장하죠.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물 '더글로리'를 통해 학교폭력에 대한 미비한 처벌이 주목받았고, 드라마 '모범택시'를 통해 버닝썬 사태와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도 재조명됐습니다. 댓글창에는 재범죄율을 높일 정도로 법의 처벌 수위가 상당히 낮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드라마의 작가들은 현실 속에서 답답함을 느낄 시청자들을 위해 카타르시스를 줄 소재로 '사적 복수'를 사용했습니다. 힘이 약한 피해자가 스스로, 또는 이 피해자의 대리인이 직접 처벌에 나서기로 하는 것입니다.
뮤지컬 '데스노트'의 주인공 라이토도 범죄자 처단에 직접 나섭니다. 라이토가 이름을 적으면 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책에 중범죄자들의 이름을 기입하기 시작한 건데, 기이하게 사망 숫자가 늘어나자 라이토를 쫓는 사람들 역시 생겨나죠.
이때부터 모순이 생깁니다. 라이토가 라이토를 쫓으려는 사람을 없애려고 시도하면서, 정의가 무엇인지 모호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라이토가 정의(justice)가 무엇인지 정의(define)하는 순간부터 정의(justice)는 모호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실체를 알 수 없는 라이토가 정의로운 존재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키라'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이며 맹신합니다.
'키라'가 인간인 이상, '키라'는 무조건적인 맹신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때문에 '키라'를 무조건적으로 수호하는 행위는 합리적인 행위로 해석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키라' 맹신 현상은 뮤지컬 '데스노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 우리 정치, 사회, 종교 분야에서 자신과 다른 무리는 '선'과 '악'으로 분리해 이분법적으로 보는 경향이 큰 집단이 다수 포착됐던 만큼, 뮤지컬 '데스노트'에서 '키라'를 찬양하며 외치는 합창이 1부에서 3번 울려퍼지는 동안 관객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공연 시작 전 여러 개의 LED 시계가 각자 째깍째깍 돌아갑니다. 1부가 끝난 뒤 휴식 시간에도 계속 돌아갑니다.
이는 라이토가 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든, 쓰지 않든, 지금 이 시각에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각자의 시계를 의미할 겁니다.
극 속에서 라이토는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며 삽니다. 하지만, 같은 극 속의 사신(죽음의 신)은 죽음은 시점에 있어 의미가 없고 평등한 것이라 말합니다. 끝없이 돌아가는 무대 위 LED 시계는 이러한 극 속에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다수 담아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대 위 LED 장치는 배우들이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도, 무대 위에서 아이돌 가수로서 연기를 할 때와 테니스 대결을 할 때에도 여러 장면에서 끊임 없는 '무대 위 변주'를 보여주는 장치로써 훌륭하게 작용했습니다.
지난 2017년 공연 때보다 무대 퍼포먼스 면에서 화려해진 부분을 꼽자면 이러한 LED 장치를 활용한 일부 변용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번 무대의 무대·조명·영상·소품·디자인 디렉터를 오필영이, 연출은 김동연이 맡았습니다.
다만, 배경 음악이 전반적으로 샤롯데씨어터 안에 매우 크게 울려퍼져 배우들이 작게 읊조릴 때 부분 부분 소리가 안 들렸다는 점은 이번 무대의 단점으로 보입니다. 배우들이 폭발적인 성량을 낼 때도 온전히 그 소리를 즐기지 못할 만큼 음향 장비의 소리가 컸습니다.
음악감독 김문정이 명성대로 실수 하나 없이 긴 호흡의 무대를 완벽하게 이끌었지만, 씨어터 내부에 울려퍼진 전자 음향의 큰 음량은 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명배우들의 연기는 '역시'였습니다.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면 서러울 정도로 '괴물 성량'을 자랑하며, 쉬지 않고 뮤지컬 공연을 하지만 탄탄한 황금빛 목소리를 들려주는 홍광호는 이번에도 라이토를 맡아 큰 음향 속에서도 밀리지 않고 노랫 소리를 전했습니다.
다만, 홍광호의 이러한 목소리마저 무대 초반 읊조리며 말할 때는 일부 소리가 묻혀, 음향 장비에 대한 아쉬움을 더하게 했습니다.
무대 위의 홍광호는 뮤지컬 '데스노트'의 대표 솔로곡 중 하나인 '데스노트'를 부를 때는 녹음 버젼의 곡보다 일부러 여러 번 강하게 긁는 목소리를 냈는데요. 홍광호의 팬으로서 녹음 버젼의 곡을 기대했다면 다소 달라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곡들에서 홍광호 특유의 단단한 발성에서 생겨나는 곧은 소리, 그리고 특유의 미성을 다시 들려줘 팬들의 기대를 채워주는 모습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2017년 관람한 라이토와 엘의 조합은 배우 홍광호와 김준수였습니다. 이번에도 김준수는 엘을 열연합니다. 지난 2017년 김준수는 솔로 곡과 듀엣 곡 모두에서 라이토의 정체를 파악하려는 엘의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돋보이게 했습니다.
김준수의 경우, 유튜브에서 일본인 배우가 '게임의 시작(The game begins)'을 노래한 모습과 김준수가 같은 곡을 노래한 모습을 비교한 팬 영상이 조회수 67만 회를 얻었을 만큼 한국 관객들 사이에서 엘 연기로도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번에도 홍광호와 김준수 조합은 티켓 오픈 뒤 일찌감치 전석 매진됐습니다.
라이토를 연기한 고은성과 엘을 연기한 김성철 역시 자타공인 노래 실력이 뛰어난 국내 뮤지컬 배우입니다.
고은성은 TV프로그램 '팬텀싱어'로 존재감을 알린 뒤 다수의 뮤지컬에서 활약하고 있고, 프랑스 곡을 우리나라 뮤지컬 배우 중 드물게 원어민과 똑같은 발음으로 노래할 정도로 열정적인 연습 벌레입니다. 라이토로도 무르익은 연기를 보여줄지 주목됩니다.
엘을 연기한 김성철은 넘버 '게임의 시작'에서 강약을 주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이나, 이 곡의 초반부는 매우 약하게 부르다보니 '시작할까'라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 다른 버젼의 엘에 비해 엘이 다소 자신 없어 보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자아냈습니다.
하지만, 이후 곡들에서는 폭발하듯 아껴둔 성량을 내보이며 라이토와 대적하는 엘로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냈습니다. 평소 말하는 말투도 흡입력이 있는 만큼 김성철은 마치 엘인 듯 내내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한편, 무대 인사를 마친 뒤 홍광호가 김성철을 들어올려 함께 얼싸안고 빙글빙글 돌았고, 후련한 마음에 기뻐하는 둘의 모습을 보여 관객들은 모두 즐겁게 마음껏 웃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다른 배우들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렘을 연기한 장은아는 넘버 '어리석은 사랑'에서 미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절절한 노래를 불러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냈습니다.
허스키한 목소리와 함께 가사 전체를 통째로 소화하는 것을 넘어 렘 자체가 된 듯한 노래를 불렀기 때문인데요. 순수한 미사를 지켜주고 싶어 자신을 버리더라도 미사는 구하고 싶어 하는 렘의 마음이 관객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끔 했습니다.
라이토의 여동생을 연기한 박현선도 숨은 실력자였습니다. 박현선은 맑고 청아하면서도 전달력도 좋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친오빠를 믿는 여동생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해냈습니다.
새롭게 합류한 류크 역 장지후도 돋보였습니다. 장지후의 큰 키, 죽은 자를 위한 신인 사신을 표현하는 몸짓, 눈빛까지 모두가 류크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과를 맛있게 먹는 표현도 역대 다른 류크보다 더 잘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라이토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사관을 맡은 배우들(이호진, 권상석, 맹원태, 김대식, 정회윤)과 라이토의 아버지 역인 김용수의 연기도 호평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지만,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애쓰고 고뇌하는 모습이 연기 속에 잘 담긴 것인데, 역할에 걸맞게 연기하면서도 안정적인 노래 실력을 보여줘 뮤지컬 '데스노트'의 격이 과거보다 한층 더 올라가는 것을 느끼게 해준 배우들이었습니다.
[ 김문영 기자 kim.moonyoung@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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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 스크린이 몰입감 높여…큰 전자 음향은 아쉬워
조연들도 절절하게 노래…관객들 마음 울려
뮤지컬 '데스노트'가 2015년 초연, 2017년 재연 이후 새 프로덕션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지난해 코로나19 속에도 전 회차, 전석 매진 기록을 세우고 올해 앙코르 공연으로 돌아온 것인데요. 이 뮤지컬의 인기 요인이라고 한다면 원작 만화를 기반으로 한 흥미로운 스토리와 탄탄한 배우 라인업,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뮤지컬 넘버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2017년 '데스노트'를 관람한 이후 6년 만에 지난 23일 재관람한 리뷰를 작성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키라' 맹신 등, 관람객에게 던지는 질문들
뮤지컬 '데스노트'는 만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극 속에서 던지는 질문들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첫 곡이 바로 '정의는 어디에?'일 만큼 이 뮤지컬은 정의가 무엇인지 집중하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현행법이 오히려 가해자나 범죄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세상에 정의는 없다고 학생인 주인공 라이토가 주장하죠.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물 '더글로리'를 통해 학교폭력에 대한 미비한 처벌이 주목받았고, 드라마 '모범택시'를 통해 버닝썬 사태와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도 재조명됐습니다. 댓글창에는 재범죄율을 높일 정도로 법의 처벌 수위가 상당히 낮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드라마의 작가들은 현실 속에서 답답함을 느낄 시청자들을 위해 카타르시스를 줄 소재로 '사적 복수'를 사용했습니다. 힘이 약한 피해자가 스스로, 또는 이 피해자의 대리인이 직접 처벌에 나서기로 하는 것입니다.
뮤지컬 '데스노트'의 주인공 라이토도 범죄자 처단에 직접 나섭니다. 라이토가 이름을 적으면 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책에 중범죄자들의 이름을 기입하기 시작한 건데, 기이하게 사망 숫자가 늘어나자 라이토를 쫓는 사람들 역시 생겨나죠.
이때부터 모순이 생깁니다. 라이토가 라이토를 쫓으려는 사람을 없애려고 시도하면서, 정의가 무엇인지 모호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라이토가 정의(justice)가 무엇인지 정의(define)하는 순간부터 정의(justice)는 모호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실체를 알 수 없는 라이토가 정의로운 존재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키라'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이며 맹신합니다.
'키라'가 인간인 이상, '키라'는 무조건적인 맹신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때문에 '키라'를 무조건적으로 수호하는 행위는 합리적인 행위로 해석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키라' 맹신 현상은 뮤지컬 '데스노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 우리 정치, 사회, 종교 분야에서 자신과 다른 무리는 '선'과 '악'으로 분리해 이분법적으로 보는 경향이 큰 집단이 다수 포착됐던 만큼, 뮤지컬 '데스노트'에서 '키라'를 찬양하며 외치는 합창이 1부에서 3번 울려퍼지는 동안 관객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각자의 시간' 나타내는 LED 스크린…음향은 아쉬워
공연 시작 전 여러 개의 LED 시계가 각자 째깍째깍 돌아갑니다. 1부가 끝난 뒤 휴식 시간에도 계속 돌아갑니다.
이는 라이토가 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든, 쓰지 않든, 지금 이 시각에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각자의 시계를 의미할 겁니다.
극 속에서 라이토는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며 삽니다. 하지만, 같은 극 속의 사신(죽음의 신)은 죽음은 시점에 있어 의미가 없고 평등한 것이라 말합니다. 끝없이 돌아가는 무대 위 LED 시계는 이러한 극 속에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다수 담아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대 위 LED 장치는 배우들이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도, 무대 위에서 아이돌 가수로서 연기를 할 때와 테니스 대결을 할 때에도 여러 장면에서 끊임 없는 '무대 위 변주'를 보여주는 장치로써 훌륭하게 작용했습니다.
지난 2017년 공연 때보다 무대 퍼포먼스 면에서 화려해진 부분을 꼽자면 이러한 LED 장치를 활용한 일부 변용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번 무대의 무대·조명·영상·소품·디자인 디렉터를 오필영이, 연출은 김동연이 맡았습니다.
다만, 배경 음악이 전반적으로 샤롯데씨어터 안에 매우 크게 울려퍼져 배우들이 작게 읊조릴 때 부분 부분 소리가 안 들렸다는 점은 이번 무대의 단점으로 보입니다. 배우들이 폭발적인 성량을 낼 때도 온전히 그 소리를 즐기지 못할 만큼 음향 장비의 소리가 컸습니다.
음악감독 김문정이 명성대로 실수 하나 없이 긴 호흡의 무대를 완벽하게 이끌었지만, 씨어터 내부에 울려퍼진 전자 음향의 큰 음량은 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역시'는 역시'…홍광호 '괴물 성량', 김성철의 연기력 돋보여
명배우들의 연기는 '역시'였습니다.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면 서러울 정도로 '괴물 성량'을 자랑하며, 쉬지 않고 뮤지컬 공연을 하지만 탄탄한 황금빛 목소리를 들려주는 홍광호는 이번에도 라이토를 맡아 큰 음향 속에서도 밀리지 않고 노랫 소리를 전했습니다.
다만, 홍광호의 이러한 목소리마저 무대 초반 읊조리며 말할 때는 일부 소리가 묻혀, 음향 장비에 대한 아쉬움을 더하게 했습니다.
무대 위의 홍광호는 뮤지컬 '데스노트'의 대표 솔로곡 중 하나인 '데스노트'를 부를 때는 녹음 버젼의 곡보다 일부러 여러 번 강하게 긁는 목소리를 냈는데요. 홍광호의 팬으로서 녹음 버젼의 곡을 기대했다면 다소 달라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곡들에서 홍광호 특유의 단단한 발성에서 생겨나는 곧은 소리, 그리고 특유의 미성을 다시 들려줘 팬들의 기대를 채워주는 모습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2017년 관람한 라이토와 엘의 조합은 배우 홍광호와 김준수였습니다. 이번에도 김준수는 엘을 열연합니다. 지난 2017년 김준수는 솔로 곡과 듀엣 곡 모두에서 라이토의 정체를 파악하려는 엘의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돋보이게 했습니다.
김준수의 경우, 유튜브에서 일본인 배우가 '게임의 시작(The game begins)'을 노래한 모습과 김준수가 같은 곡을 노래한 모습을 비교한 팬 영상이 조회수 67만 회를 얻었을 만큼 한국 관객들 사이에서 엘 연기로도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번에도 홍광호와 김준수 조합은 티켓 오픈 뒤 일찌감치 전석 매진됐습니다.
라이토를 연기한 고은성과 엘을 연기한 김성철 역시 자타공인 노래 실력이 뛰어난 국내 뮤지컬 배우입니다.
고은성은 TV프로그램 '팬텀싱어'로 존재감을 알린 뒤 다수의 뮤지컬에서 활약하고 있고, 프랑스 곡을 우리나라 뮤지컬 배우 중 드물게 원어민과 똑같은 발음으로 노래할 정도로 열정적인 연습 벌레입니다. 라이토로도 무르익은 연기를 보여줄지 주목됩니다.
엘을 연기한 김성철은 넘버 '게임의 시작'에서 강약을 주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이나, 이 곡의 초반부는 매우 약하게 부르다보니 '시작할까'라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 다른 버젼의 엘에 비해 엘이 다소 자신 없어 보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자아냈습니다.
하지만, 이후 곡들에서는 폭발하듯 아껴둔 성량을 내보이며 라이토와 대적하는 엘로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냈습니다. 평소 말하는 말투도 흡입력이 있는 만큼 김성철은 마치 엘인 듯 내내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한편, 무대 인사를 마친 뒤 홍광호가 김성철을 들어올려 함께 얼싸안고 빙글빙글 돌았고, 후련한 마음에 기뻐하는 둘의 모습을 보여 관객들은 모두 즐겁게 마음껏 웃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장은아·박현선·수사관들의 절절한 노래 가슴 울려
다른 배우들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렘을 연기한 장은아는 넘버 '어리석은 사랑'에서 미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절절한 노래를 불러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냈습니다.
허스키한 목소리와 함께 가사 전체를 통째로 소화하는 것을 넘어 렘 자체가 된 듯한 노래를 불렀기 때문인데요. 순수한 미사를 지켜주고 싶어 자신을 버리더라도 미사는 구하고 싶어 하는 렘의 마음이 관객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끔 했습니다.
라이토의 여동생을 연기한 박현선도 숨은 실력자였습니다. 박현선은 맑고 청아하면서도 전달력도 좋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친오빠를 믿는 여동생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해냈습니다.
새롭게 합류한 류크 역 장지후도 돋보였습니다. 장지후의 큰 키, 죽은 자를 위한 신인 사신을 표현하는 몸짓, 눈빛까지 모두가 류크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과를 맛있게 먹는 표현도 역대 다른 류크보다 더 잘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라이토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사관을 맡은 배우들(이호진, 권상석, 맹원태, 김대식, 정회윤)과 라이토의 아버지 역인 김용수의 연기도 호평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지만,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애쓰고 고뇌하는 모습이 연기 속에 잘 담긴 것인데, 역할에 걸맞게 연기하면서도 안정적인 노래 실력을 보여줘 뮤지컬 '데스노트'의 격이 과거보다 한층 더 올라가는 것을 느끼게 해준 배우들이었습니다.
[ 김문영 기자 kim.moonyoung@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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