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주면 신고한다"…동료 PC 해킹해 협박한 경찰 간부[그해 오늘]

40대 경위, 동료 30여명 대상 범행…실제 1천만원 뜯어내기도
"돈 안주면 사생활 신고한다"…피해 경찰관 신고로 경찰 적발
法 "죄질 불량하지만 합의 고려" 집유…경찰선 파면돼 쫓겨나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7년 4월 26일, 경기남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현직 경찰 간부인 경위 A씨(당시 43세)를 긴급체포했다.

18년 경력의 경찰관으로 경기도 한 경찰서 소속이었던 A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공갈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법 위반 등이었다.

동료 경찰관들의 컴퓨터에 악성프로그램을 심어 사생활을 캐낸 후 이를 이용해 협박해 실제 1000만원을 뜯어낸 혐의다.

A씨는 2016년 3월 자신의 사무실에서 ‘음악 파일 모임’이라며 동료 경찰관 B씨를 비롯해 30명이 넘는 동료들에게 악성프로그램이 첨부된 파일을 전송했다.

B씨 등 동료 경찰관들은 과거 함께 근무했던 A씨가 전송한 파일을 별다른 의심 없이 실행했고, 이들 컴퓨터엔 컴퓨터 화면을 실시간으로 그대로 훔쳐 보거나, 컴퍼터 내 파일에 접근할 수 있는 악성프로그램이 설치됐다.

“돈 안 주면 청문감사실 신고한다” 협박

A씨는 이 같은 수법으로 범행이 발각된 2017년 4월까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31명의 PC를 악성프로그램에 감염시켰다.

그는 설치한 악성프로그램을 이용해 동료 경찰들이 다른 경찰관들과 주고받은 메신저 대화 내용을 그림 파일로 수차례 저장했다.

A씨는 이 같은 수법으로 피해 경찰관 중 한 명이 동료 경찰관과 부적절한 관계라는 것을 알아낸 후, 청문감사실에 알릴 것처럼 협박해 돈을 뜯어냈다.

그는 2017년 3월 중순 과거 함께 근무했던 동료 경찰관에게 전화를 걸어 “네가 모텔 가는 것 봤다. 상대가 누군지도 안다. 사실대로 말하기 전에 1000만원을 준비하라”고 협박해, 당일 1000만원을 받아냈다.

돈을 뜯긴 피해 경찰관은 감찰 부서에 A씨의 구체적 협박 사실을 제보했고, 감찰 부서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4월 중순 사건에 대한 수사를 사이버수사대에 의뢰했다.

경기남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A씨에 대한 전방위적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첫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했던 A씨는 증거가 나오자 결국 혐의를 자백했다.

그는 경찰조사에서 “장난삼아 동료들에게 악성 코드를 보냈다. 실제 사생활과 관련된 무언가를 알게 돼 돈을 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피해 동료들 선처 탄원 때문에 실형 피해

긴급체포된 A씨는 결국 구속돼 검찰에 송치됐고, 검찰은 공갈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법 위반 등의 혐의로 A씨를 재판에 넘겼다. 경찰은 징계위원회를 열고 A씨를 파면했다.

1심은 “법과 질서를 수호해야 할 경찰관이 동료들의 컴퓨터에 악성프로그램을 유포해 메신저 대화내용을 열람했고 이를 이용해 피해자들을 공갈하기까지 하는 등 범행의 죄질이 불량하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도 “A씨가 반성하고 있고 피해자 중 20명과 합의가 됐거나 피해자들이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 더 이상 경찰관으로서 근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고 가족 등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한 점을 참작했다”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했다.

A씨가 항소를 포기한 가운데, 검찰은 “형이 너무 가볍다”며 항소했다. 하지만 2심도 “1심 형량이 합리적 범위 내에서 결정됐다”며 “형이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며 항소를 기각하고 1심 판단을 유지했다.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한광범 (totoro@edaily.co.kr)